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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시차 적응 같은 것

김연수 여행 에세이 <Travel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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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2곳을 한데 놓고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가능하다.

여행이란 시차 적응 같은 것

 

김연수ⓒ이천희.jpg

PHOTOGRAPH : KRIS DAVIDSON

 

짧은 시간 안에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를 여행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해서 리무진을 타고 서울 시내에 들어가노라면, 푸른 하늘이며 도로변의 풍경이 깨끗하다는 느낌이든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리타공항으로 들어가 기차를 타고 가노라면, 마찬가지의 기분이다. 일본의 집과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 이건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말하자면 시차 같은 것이다.


 최근 어느 일본인 여성에게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는 게 무섭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예전에 중국 동부 항구도시 옌타이(烟台)에서 서부 사막 도시 카스(喀什)까지 직접 자동차를 몰고 가던 중 하필이면 퇴근길에 시안(西安)에 들어서게 된 적이 있다. 무섭다기보다는, 오른쪽의 오토바이와 자전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한참 웃더니 한국사람이 정신이 없을 정도면 자기는 기절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게 이렇게 상대적이다.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이처럼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민이 많은 저개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게 참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럽 여행 뒤에 바라보는 한국은 전생에 나쁜 일을 하다가 죽은 이들이 오는 곳 같기도 하다. 당연히 한국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한국은 그저 한국이다. 여행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2곳을 한데 놓고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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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 LEE CHUN-HEE

 

 중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정신이 하나도 없긴 했지만, 멋진 경험이기도 했다. 사실 중국은 여행자가 렌터카로 여행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 한국에서 발급 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는 제네바협약가입국에서만 운전할 수 있는데, 현재 중국은 아시아 15개 가입국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지에서 다시 면허증을 따야 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관공서 일을 보는 것이고, 첫 번째로 어려운 일은 외국에서 관공서 일을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중국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는 그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나와 같이 여행한 이들이 한국의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리라.


그간 여러 나라에서 운전을 해봤다. 가장 편안한 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박찬호 선수는 LA 다저스에 입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스트레스가 쌓이면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까지 가서 혼자 달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크루즈 기능이 있는 렌터카로 모하비까지 가보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의 일직선 도로에서는 모든 차가 규정 속도에 맞춰 크루즈 운행을 하니 운전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고속도로도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그와 비슷했다. 실제로 나는 여러 차례 크루즈 운행을 했다. 시안까지는 그럭저럭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허시쩌우랑(河西走廊)이 시작되면 산에 수목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모하비 사막보다 훨씬 더 멋진 드라이브가 펼쳐진다. 그러다가 화염산이 있는 협곡을 따라 운전하면, 이보다 더 멋진 드라이브 코스는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다른 면도 많다. 중국에서는 사전에 허가 받은 날짜에 허가 받은 구간만 주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갑자기 일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 위를 지나다가 “야, 여기 경치가 죽이는구나!”라고 말하고 나서 예정에도 없이 하룻밤 묵고 가는 식의 일은 있을 수 없다. 거기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지표는 휴게소 화장실이다. 어느 날 화장실을 찾아갔더니 불을 켜놓지 않아 낮인데도 캄캄했다. 어둠이 눈에 익자 어떤 남자가 가만히 앉아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집 안방에 무단 침입한 기분이 들어서 슬그머니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이상하기만 했다. 그 너른 땅덩이를 놔두고 굳이 어둡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야만 하는가? 하지만 그렇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야만 한다. 이처럼 땅이 넓으니 차라리 탁 트인 곳에서 볼일을 보겠노라며 고속도로변의 경사진 곳으로 가서야 나는 그 비탈이 온통 똥 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 서부를 오가는 화물차 기사의 솜씨일 것이다. 경사가 상당했기 때문에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중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의 경제성장 속도로 볼 때, 몇 년 안에 중국의 서부 고속도로에 있는 낡은 휴게소는 모두 철거되고 최신식 휴게소가 들어설 것이다. 중국의 서부는 자신의 시간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게 내가 사는 세계의 시간과 어긋날 뿐인데, 그건 시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시차가 불편하다고 한국 시간에 맞춰서 여행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김연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쉬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는 부지런한 소설가다. 그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를 통해 꼭꼭 숨겨두었던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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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4월 [2015]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지구촌 여행지를 다룬 여행전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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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4월 [2015]

안그라픽스 편집부6,300원(10% + 1%)

책속 별책 부록 : 책자 1 지구촌 여행지를 다룬 여행전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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