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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총리의 성장기 그리고 한국에 건네는 충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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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는 그의 자서전에서 부지런하고 명석한 한국인들의 우수한 자질과 험난한 역경을 수없이 이겨 낸 강인함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아래와 같이 우리가 꼭 귀담아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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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의 성장기


리콴유는 1923년 9월 16일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출신 객가(客家, Hakka)의 후예이다. 그의 증조부는 1870년 중국 광동성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여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객가 상인의 딸과 결혼했고, 고향에 돌아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큰 재산을 모으자 귀국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리콴유의 증조모)은 자신이 태어난 싱가포르를 떠나기 싫어서 자식들을 데리고 잠적해 버렸고, 그는 할 수 없이 혼자 귀국길에 올랐다. 이때 남은 아들이 리콴유의 할아버지이다.


자수성가한 할아버지 덕분에 리콴유는 유년 시절을 유복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그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927년 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고, 아버지는 무능함 그 자체였다. 다행히 친할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사업 수완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건재한 덕분에 극도로 궁핍한 생활은 면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리콴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공부를 잘했고,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을 건너뛰어 월반을 하고도 공립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최고의 명문 학교인 래플스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40년에 있었던 졸업시험에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 반도를 통틀어 수석을 차지하여 장학금을 받고 최고 명문 대학인 래플스 대학에 진학했다.


래플스 중?고등학교와 래플스 대학에서 그는 두 살 연상의 천재 여학생과 수석을 다투었는데, 그 여학생이 바로 훗날 리콴유의 부인이 되는 콰걱추(柯玉芝, 1921~2010)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리콴유의 혈통과 외모는 중국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영국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해리 리콴유(Harry Lee Kuan Yew)로, 해리라는 영어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가 붙여 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영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라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원래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후일 만다린(북경 표준어)을 비롯해 호키엔(Hokkien, 福建) 방언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배웠기 때문이다.


일본 점령기의 리콴유

 

리콴유의 래플스 대학 시절은 일본군의 침공으로 인해 2년이 채 못 되어 끝장나고 말았다. 일본 점령기 때 리콴유는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빠져 나오는 등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때 겪었던 극한 상황에서의 경험은 훗날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지도자가 되어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한 얼마 후, 모든 중국인들은 경기장에 모여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만약 심사를 받지 않고 집에 있다가 발각되면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 리콴유는 경기장으로 갔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고 빠져 나오게 된다. 그때 빠져 나오지 못했더라면 리콴유 역시 일본군이 자행한 대학살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리콴유는 그의 자서전에서 “생과 사의 중대한 갈림길이 어쩌면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지게 되었는지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회고한다.


필자는 신의 존재를 잘 믿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지만, 아마도 신이 리콴유와 싱가포르를 굽어 살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까스로 사지에서 빠져나온 리콴유는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먼저 일본인 치하에서 일을 하려면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3개월 과정의 일본어 학교에 다녔다. 이후 일본 상사의 직원을 거쳐 일본군 보도국에서 근무하게 되고, 짬짬이 부업으로 암시장 브로커, 고무풀 장사 등을 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다소간의 돈도 모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콰걱추와는 연인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한국인들에 대한 리콴유의 충고

 

리콴유는 그의 자서전에서 부지런하고 명석한 한국인들의 우수한 자질과 험난한 역경을 수없이 이겨 낸 강인함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아래와 같이 우리가 꼭 귀담아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를 덧붙인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된 다수의 권리를 받아들이며 다음 선거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정권을 잡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평화적으로 기다리는 풍토가 조성된 곳에서 제 기능을 다한다. 전통적으로 끝까지 투쟁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이식될 때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그 나라의 집권자가 군사 독재자이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거리에 나와 싸웠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하지만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정확한 지적이다. 또한 그는 군부 독재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민주정치로 이행된 것이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더 단계적으로 민주화되면서 폭력적인 시위와 집회를 규제하기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약 15년 전에 그가 지적했던 것이 지금도 거의 바뀐 것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부끄럽게 느껴진다. 리콴유는 우리에게 뼈아픈 충고를 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제도가 회복되기만 한다면, 한국인들은 다시 한 번 활기차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이고 부지런하고 심지가 굳은 능력 있는 국민이다. 그들의 강렬한 문화는 그들을 성취 지향적으로 만든다.” 라며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또다시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결점이 매우 많은 제도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잘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싱가포르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과두정 체제가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규모가 큰 나라에서 제 기능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전제 군주 체제나 군사 독재 정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으로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민주주의를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질서와 규율 확립, 질서와 규율 속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그 중에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토론 문화, 선동적인 정치가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 승복하고 타협할 줄 아는 태도 등이 필요할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것인지 중우 정치로 전락하도록 둘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 이 글은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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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길을 묻다 : 국민소득 5만 달러의 신화강승문 저 | 매일경제신문사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인종? 자원? 지리? 아니다. 이 조건들이 있으면 좋지만, 국가 발전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즉, 자원이 없고 국토 면적이 작은 국가라도 어떠한 시스템으로 경영하느냐에 따라 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100명 남짓한 말레이 어부들만이 살았던 조그마한 섬에 세계 초일류 도시 국가를 건설하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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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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