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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지> 돈만 아는 저질이 진정한 '저지' 의 길을 걷기까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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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작품에서 고전기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중후함을 느꼈다면 과찬이려나?.

아무리 베테랑 배우들일지라도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에 출연한다는 건 긴장될만한 문제일 것이다. ‘등장 캐릭터 중 하나’로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을 테니 말이다. 이는 배우에게 꽤 치명적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의 이미지를 자기 안에 체화 시키는 것 역시 연기력 증명이지만, 사람들에게 주로 각인되는 건 배우보다 그가 연기하는 실사화된 ‘원작 캐릭터’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믹스 원작 영화에 출연하는 와중에는, 유독 부단하게 다른 작품들을 통한 이미지 변신에 노력을 기울인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 작품들 중에서 한국에 소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려나?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가 대배우 로버트 듀발과 함께 주연한 가족 드라마 / 법정 장르물인 <더 저지>가 그렇다.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한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극장가에 당도하지 못하고 바로 IPTV / VOD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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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지>의 헨리 (토니 스타크) 는 유능한 변호사이자 '성능 좋은 볼펜' 이다. 이 비유는 칭찬이면서 조롱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적에만 맞으면 대상이 누구든 기꺼이 그들의 손에 쥐어지기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헨리는 돈이 된다면 가정까지 제쳐둔 채 누가 봐도 처벌 받을만한 사람들의 변호일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변호사다. 이런 그가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오랜 시간 피해왔던 자신의 고향마을로 향한다. 거기서 외면하고 싶었던 동생, 형, 그리고 아버지이자 마을 법원의 판사인 조셉 (로버트 듀발) 을 다시 만나며 작품의 본론이 시작된다. <더 저지>는 2시간 21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오롯이 아버지와 아들, 혹은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에 힘을 쏟는 가족 드라마면서, 동시에 법정 스릴러다. 아내의 장례식을 마친 후, 차를 몰고 나갔던 조셉이 얼마 뒤, 뺑소니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가기 때문이다.

 

헨리가 조셉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변호를 맡게 되는데, 작품은 곧이어 아버지가 나이도 들고 중병에 걸려 성치 않은 몸과 정신상태를 가졌다는 설정을 추가해 사건을 미궁 속에 몰아넣는다. 아버지가 범인일 수 있다는 설정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 박스>, 국동석 감독의 <공범> 등에서도 본 적이 있다. <더 저지>의 경우는 조셉이 범인이냐 아니냐 보다 왜 판사인 그가 자신의 오랜 커리어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데, 신념을 가지고 법정을 피하지 않으며 계속 출두하는지, 그 의문을 푸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토니 스타크가 잠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 변신하다


흔히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부모자식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논할 때 '그래도 가족이니까' 하는 투로 불가해하게 어영부영 처리하는 점에서 나온다. <더 저지>의 경우에는 변호사 헨리가 그토록 증오했던 조셉을 결국 아버지로서 받아들이는 순간을 감상자에게 잘 납득시키는 편이다. 조셉은 유능한 판사지만, 그가 내리는 공명정대한 판결능력이 가족에게는 성공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작품은 조셉이 자식들과 불화를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도 세세하게 보여주며, 헨리의 골치를 더 아프게 만드는 원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조셉은 이러면서까지 자신의 행동을 고수하면서 아들인 헨리에게 '정직' 의 태도를 전달하려 애쓴다. 작품 속에서 헨리는 조셉을 무죄로 만들려고 그에게 앓고 있는 병을 부각하고, 거짓 증언을 하라고 권유하는 시퀀스가 있다. 헨리에게도 커리어와 인생 자체가 끝장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권유한 방식을 고수한다면 과연 뭐가 남을까. 만약 조셉이 병을 핑계된다면 여태껏 자신이 내린 판단과 주장들이 온전한 정신에서 내려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텐데. 작품은 조셉과 헨리의 의견충돌을 통해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직이라는 단어는 그만큼 육중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으며,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전달한다. 그리고 헨리 역시 이 무게감을 실감하며 서서히 바뀌어 간다.


물론 작품은 위에 써놓은 질문에 대한 탐구를 고수하는 대가로, 법정 스릴러적인 요소를 중반을 넘어 서면서 꽤 쉽게 예측시키는 단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가 범인인지의 여부와 무죄로 만들기 위한 스릴을 이야기의 주 동력으로 삼았다면 흥행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해외 개봉 수익까지 포함해서야 비교적 체면치레 흥행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재미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드라마에 집중하여, 마치 장르의 정체성을 정공법으로 유지하면서 내 할 말 다 하리라는 각오로 느끼게 만들었다. <더 저지>에서 고전기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중후함을 느꼈다고 한다면 과찬일까? 그런데 정말 그런 감흥이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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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조셉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이다. 외양만 보자면 산전수전 다 겪었고, 법과 신념의 진리를 발견한 슈퍼 히어로 같다는 느낌을 주는 조셉은, 사실 여전히 불안하고 나약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법과 자신의 신념을 '진리라 믿으려 애쓰는' 인물이다. 듀발은 84세의 나이에 배겨 있을만한 아집을 거의 배제한 채, 섬세한 감정의 결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이 역을 어려움 없이 해낸다. 그래서 끝끝내 아버지보다는 누군가의 판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마음을 굳히는 과정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를 보면서 토니 스타크는 철저히 이 대배우를 옆에서 잘 보조하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이미 TV 드라마인 <앨리 맥빌>에 출연하여 능글맞은 변호사를 연기한 바 있던 그는 중년의 반항을 냉소적이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요 몇 년간 전면에서 드러나는 연기를 하던 그의 이런 연기를 보는 것도 간만이다. ‘잘 한다’ 보다 '자연스럽다'는 감탄이 먼저 나온다.

 

<더 저지>는 여러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순간을 남겼다. 로버트 듀발은 올 해 오스카 시상식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감독을 맡은 데이빗 돕킨 역시 이 작품을 통해서 드라마 장르를 다루는데 능숙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감독의 전작이 <웨딩 크래셔>, <상하이 나이츠> 등 유머가 주가 되는 작품들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이 변화는 분명 인상적이다. 토니 스타크는 뭘 얻었냐고? 간만에 그에게서 '그래. 이 사람 <채플린>의 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 아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니라 토니 스타크가 본명이라고 생각하셨던 분들 많으실 텐데, <더 저지>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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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눈빛연기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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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준호

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http://sega32x.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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