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권계현의 영국 영어 이야기
영국식 영어가 답이다
신사의 품격과 여왕의 우아함
태도와 말씨는 한 사람의 사회 계층과 교육 정도, 지역 배경 등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제 2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우리는 과연 어떤 영어를 표준으로 삼고 학습해야 하는 걸까요?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접하게 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정통 영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개 '미국식 영어 vs 영국식 영어'의 구도로 정리되곤 합니다만, 실제로 들여다 보면 호주식, 남아공식, 인도식, 싱가폴, 필리핀식이 다 다르고 심지어는 세계 각국의 토착어와 결합된 형태의 피진 영어(Pidgin English)까지 전 세계에는 정말로 다양한 버전의 영어가 있습니다. 또 종주국인 영국 내에서도 Cockney, Estuary, Scottish, Geordie, Irish, Welsh 등 많은 방언과 액센트가 있어 표준영어를 정하기 위하여 BBC English 또는 Queen's English, King's English 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는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빈민가 하층계급 여인 일라이자가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의 끊임없는 교습으로 마침내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로맨틱하게 그린 고전 명작입니다. 갖은 실랑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히긴스 교수는 표준어 문장 '스페인에서 비는 평야에만 내린다(The Rain-In Spain-Stays-Mainly In The Plain)'을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결국 그녀는 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됩니다. 여기서 표준어 문장과 대비되는 투박한 말씨와 촌스런 액센트가 바로 런던 사투리 'Cockney'입니다.
표준 영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제 표준 영어는 많은 한국인 영어 학습자의 생각과는 달리 영국식입니다. 영국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식 영어도 방언의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미국식 영어는 그 체계나 발전의 경과를 보면, 사상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발전해 나간 영국식 영어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도 유명한 웹스터 사전의 저자인 Webster가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함을 언어학적으로 주장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실제 미국식 영어의 기초를 바로 잡은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발음은 물론, 철자법, 문법, 어법, 활용하는 vocabulary 등에서 많은 차이가 생기게 됐습니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는 생각보다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영국식 영어는 'Centre'이고 미국식으로는 'Center'입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미국식 영어가 맞고 친밀하게 느껴지겠지만 이의 형용사형이 'Central'인 점을 생각하면, 어원이나 파생하는 형태의 측면에서 'Centre'가 더 규칙에 맞는, 정확한 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유럽의 다른 굴절어에서도 Centro, Centrum, Zentrum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쉽게 확인됩니다.
단어의 뜻도 미국에서 지하철은 'Subway'지만 영국은 'Underground'라 하고 영국에서 Subway하면 그냥 지하(보)도를 의미합니다. 이외에도 영국식 영어는 훨씬 더 많은 vocabulary를 사용하며 미국식은 상대적으로 동사 전치사로 되어 있는 숙어를 훨씬 많이 사용합니다.
그럼 왜 한국인 영어 학습자에게는 미국식 영어가 표준이 되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근대사를 살펴볼 때 미국의 영향이 지대하여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미국을 우방으로 삼은 시대적 상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후에 강대해진 미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할리우드의 영어가 자연스럽게 국제 표준 영어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국제 표준 영어는 영국식 영어입니다. 이는 제가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체험을 통하여 느끼고 확인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양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진행을 하지만, 항상 회의록이나 회의의 결과물인 결의문 등을 작성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 영국식 영어로 표현되고 정리되어 기록, 보존됩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영국 외교관들의 역할이 커지게 되며 판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부분에서 영국식 영어의 숙지와 활용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영국식 영어를 표준으로 생각하는 국가도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영국식 영어의 숙독과 활용은 저의 글로벌 커리어 내내 항상 중요한 명제가 되어왔습니다.
실생활에서 이득이 되는 영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가 답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영국식 영어가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특히 영국식 영어가 미국식 영어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모국어가 아닌 제 2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우리에게 영국식 영어로 '틀을 잡는다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실용적인' 이득 말입니다. 간단하게 한번 살펴볼까요?
첫째, 첫인상에서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습니다. 영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상대방의 억양과 어휘의 사용 등을 통해 그의 교육 정도, 생활 수준, 문화의 정도를 알아차립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직감과 직결된 것으로 '바른 말씨'를 쓴다면 분명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즉 말씨는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옷을 입었는가 보다 때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확실히 영국식 영어가 sexy하다고 평을 받고 있고 또한 최근 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영국식 영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도 영국식 영어가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국제적으로 미국식 영어 보다는 영국식 영어가 표준어입니다. 실제 영어를 공용어로 교육하고 있는 국가의 대부분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식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한 국가에 불과합니다. 이왕 영어를 배울 거라면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아직까지 세계 최대의 강국이 미국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영국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을 알고 이해하면 미국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뉴욕이 유명하지만 이는 영국의 York를 새로이 건설했다는 의미에서 New York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York를 가보고 이해하면 훨씬 깊고 입체적으로 New York를 이해하게 되는 이치입니다.
이처럼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도 실제로 유용한 점이 꽤 있습니다.
결국 영어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언어든 진짜 언어를 제대로 익히려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비정상회담'의 외국친구들이 한국인도 알기 어려운 사자성어와 속담을 술술 풀어내면서 서로 신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볼 때 부럽지는 않으신가요. 우리도 이왕 영어를 배우는 마당에 영어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알아차리는, '깨알재미'가 돋는 경험을 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제 본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저와 함께 영국식 영어의 세계에 흠뻑 빠져 보십시오. 역사와 문화의 뿌리인 언어의 세계로 같이 들어가서 영국식 영어에 대한 경험과 식견을 같이 넓혀 갔으면 합니다. 영어와 영문학 그리고 그것을 싹트게 한 나라에 대한 역사, 문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식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Today's Choice
영국식 영어가 답이라는 제목에 아직도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다음의 동영상을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국인들에게는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다음으로 유명한 대사라고 하는,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 가운데 'The Seven Ages of Man'이라는 구절로, 사람의 인생을 7단계로 구성된 연극에 비유하는 글입니다.
자, 해석하려 하지 말고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감상해 보세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낭송하는 셰익스피어입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이 되었다.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영사, 주네덜란드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2013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법률의제 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홍보팀 상무, 글로벌 스포츠마케팅담당 상무를 거쳐, 현재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전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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