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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의 역사

The History of Ce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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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침 식사, 시리얼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것

서양의 어느 슈퍼마켓을 가더라도 진열대 한쪽이 온통 시리얼로 채워진 걸 볼 수 있다. 시리얼 상자에는 ‘더 날씬하게’, ‘에너지 충전’, ‘섬유소 섭취’, ‘철분 강화’ 아니면 그저 ‘진한 초콜릿 맛’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다 시리얼에 있을까? 콘플레이크, 스페셜 K, 캡틴 크런치는 그들이 슈퍼마켓의 한쪽 진열대를 점령한 것을 두고 19세기 채식주의자들과 제7일 안식일 재림파 신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시리얼이 나오기 전 미국과 영국의 전형적인 아침 식사는 잘사는 집은 고기와 달걀, 가난한 집은 잼을 바른 빵과 오트밀이나 귀리죽이었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의 육류 섭취를 줄이자는 바람은 미국의 많은 부유층을 다소 곤경에 빠뜨렸다.

 

뉴욕에서 요양원을 설립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강조하던 제임스 칼렙 잭슨James Caleb Jackson 박사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1863년 잭슨 박사는 통밀가루를 물로 반죽해 구운 것을 먹었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시리얼, ‘그라눌라Granula’다. 당시 그라눌라는 밤새 우유에 적셔놓아도 물러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하지만 그라눌라가 큰 인기를 얻어 잭슨 박사는 ‘아워 홈 그라눌라 컴퍼니Our Home Granula Company’를 설립했다. 시리얼의 첫 발을 뗀 것이다. 이후 1877년 ‘아메리칸 시리얼 컴퍼니American Cereal Company’가 오트 시리얼을 들고 나타났고, 1879년 뉴욕 출신 조지 호이트George Hoyt가 ‘위테나Wheatena’라는 이름으로 시리얼을 최초로 상자에 담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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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크리크에서는 제7일 안식일 재림파 신도였던 엘렌 화이트Ellen White가 요양원을 열었다. 마티 기틀린Marty Gitlin의 《위대한 미국의 시리얼 북The Great American Cereal Book》에 따르면, 화이트는 요양원을 연 이유에 대해 “건강 의식이 높아진 사회에서 제7일 안식일 재림파 신도를 늘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화이트는 의사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에게 요양원을 맡겼다. 켈로그 박사는 채식주의 신념이 강한 의사로, 머릿속엔 소화력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켈로그 박사의 신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헨리 포드Henry Ford와 같은 유명인이 찾아와 관장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켈로그 박사는 푸드 실험실을 마련하고 소화력 향상을 위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밀, 오트밀, 옥수수를 작은 비스킷 형태로 굽지 않고 바로 먹는 시리얼을 발명했다. 그는 이 창작물에 ‘그라눌라’라고 이름 붙였다가 잭슨 박사가 고소를 해 결국 ‘그래놀라Granola’라고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세일즈맨이 아닌 의사였던 켈로그는 ‘사니타스Sanitas’라는 우편 주문 회사를 세우기는 했지만 기존 환자만을 위해 운영했다. 정작 켈로그를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올린 것은 뛰어난 마케팅 수완을 지녔던 그의 동생 윌 키스 켈로그Will Keith Kellogg였다. 한편 켈로그의 환자였던 찰스 윌리엄스 포스트Charles William Post가 같은 지역에 경쟁 기관을 세우고 1897년에 ‘그레이프 너츠Grape Nuts’를 출시했다. 제품 이름은 시리얼에 견과류와 포도당을 더했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었다. 포스트는 이 제품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19세기 말 무렵의 배틀 크리크에는 시리얼 사업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작은 마을에 시리얼 공장이 100개나 들어섰다.


1893년 어느 날 켈로그 박사는 변호사 헨리 퍼키Henry D. Perky를 찾아갔다. 퍼키는 찐 밀을 롤러로 가느다란 면처럼 뽑아서 압착해 ‘쉬레디드 휘트Shredded Wheat’라는 곡물 식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퍼키가 만든 것은 금방 눅눅해져 켈로그 박사가 천천히 열을 가해 밀을 건조하는 비법을 전수했다. 비법에 따라 만든 쉬레디드 휘트는 대성공을 거뒀고 퍼키는 돈방석에 앉았다.


켈로그 박사는 비법을 전수해준 것을 후회하긴 했지만 그에겐 또 다른 카드가 있었다. 1898년 그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를 압착해 말린 ‘콘플레이크’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을 거둔 것은 1900년 초 윌 켈로그가 설탕을 가미하면서부터였다. 이 설탕은 형제 사이에 불화 원인이 됐고 결국 윌 켈로그는 형과 헤어져 ‘배틀 크리크 토스티드 콘플레이크 컴퍼니Battle Creek Toasted Cornflake Company’를 창립했다. 그리고 1922년 회사명을 ‘켈로그 컴퍼니Kellogg Company’로 바꿨다.


사실 시리얼이 현재의 식문화로 굳어진 건 윌 켈로그 덕분이다. 그는 마케팅의 천재였다. 집집마다 샘플을 돌리고 일정 지역에서 제품을 시험적으로 판매하는 테스트 마케팅을 최초로 시행했다. 그리고 타임스 광장에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의 광고판을 세웠다. 15m의 높이에 폭은 32m에 달하는 크기였다. 1929년 대공황 때도 그는 홍보팀에 광고비를 2배로 늘려 책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푸드역사가 케이트 콜크혼Kate Colquhoun은 “시리얼은 언제나 마케팅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상품”이라고 한다.


윌 켈로그의 전략 중 으뜸은 사은품이다. 모두 나름 좋아하는 사은품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프로스티스Frosties’에 있던 자전거 바퀴에 다는 컬러풀한 액세서리, ‘스포키 도키Spokey Dokeys’를 좋아했다. 1980년대에 나왔던 ‘허니 몬스터 클럽Honey Monster Club’을 가장 좋아했다는 푸드 역사가 비 윌슨Bee Wilson은 “그것을 모으기 위해 ‘슈거 퍼프Sugar Puffs’를 엄청나게 먹었다.”고 고백한다. 이 모든 마케팅 전략은 윌 켈로그가 1910년 《퍼니 정글랜드 무빙 픽처Funny Jungleland Moving Picture》를 출시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 동물 만화가 그려진 책을 갖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고 켈로그는 23년 동안 무려 총 250만 부의 책자를 찍었다.

 

하지만 설탕을 뿌린 시리얼은 조용히 넘어가지 못했다. 1970년 소비자 운동가 로버트 초트Robert Choate는 음식, 영양, 건강에 관한 백악관 회의에서 ‘살만 찌우고 영양소는 전혀 없는’ 시리얼 기업들을 맹공격했다. 시리얼 기업들은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여론은 동요했고 초트의 공격에 기업들은 시리얼 상자에 영양 성분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는 건강한 시리얼이라는 바람이 일었다. 제너럴 밀스는 1973년 천연 곡물 ‘네이처 밸리 그래놀라Nature Valley Granola’를 내놓았다. 유럽은 스위스 물리학자 막시밀리안 비르헤르 베리너Maximilian Bircher-Beriner가 1900년대에 발명했던 뮤즐리에 열광했다. 영국인도 집에서 직접 그래놀라나 뮤즐리를 만들어 먹거나 ‘알펜Alpen’을 사먹었다. 하지만 설탕을 가미한 시리얼은 계속 쏟아졌다. 1980년대에는 기업들이 TV방송국, 영화 배급 업체, 장난감 회사들과 손을 잡고 당대의 인기 캐릭터와 연계한 시리얼을 내놓았다. 바비에서 배트맨까지 시리얼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는 오늘까지도 이어졌다. 도라, 스폰지 밥, 버즈 라이트이어, 니모 등의 유명 캐릭터들을 지금도 시리얼 상자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늘날 시리얼은 판매대의 특성에 따라 분리 진열되어있다. 한쪽에는 전성기 때보다 덜 화려하지만 여전히 “필수 비타민”과 “섬유소 첨가”를 외치며 설탕을 뿌린 컬러풀한 어린이 시리얼이 있다. 그러나 통곡물 시리얼의 자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의 ‘도싯 시리얼Dorset Cereals’과 미국의 ‘베어 네이키드Bear Naked’와 같이 천연 재료로 만든 브랜드들이 켈로그, 퀘이커, 네슬레, 제너럴 밀스의 최근 제품들과 나란히 진열대에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리얼 광고는 이제 ‘통곡물’에 초점을 맞추고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을 부각한다. 설탕이 뿌려진 시리얼을 봤다면 켈로그 박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법하지만 최근의 통곡물 시리얼들은 배틀 크리크의 그 순수했던 시작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그럼 우유를 한번 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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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시리얼 편집부 저/김미란 역 | 시공사
영국의 격조 높은 감성을 선사하는《시리얼》의 창간호가 한국어판으로 정식 출간됐다. 이번 vol.1에서는 독특한 유럽의 정서를 자랑하는 세 곳으로 유랑을 떠난다. 《시리얼》에는 여행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하나의 대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포커싱한 사진과 함께, 견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끔은 엉뚱하게 또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글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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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시리얼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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