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국은 각자의 몫 <이미테이션게임>

반복적 선택과 포기의 게임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2차 대전이 행해졌던 70년 전의 유럽에서도, 고독이든 연대든 어느 쪽이라도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하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택함과 포기는 계속 된다.

지난 2주간 황사까지 뿌려대며 성미를 부린 겨울의 끝자락에서 DVD로 <용서받지 못한 자> <축제일: Jour de Fete>을, 개봉관에서 <이미테이션게임>을 봤다.

 

 홀로 <이미테이션게임>을 보러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으니, 스크린 속의 주인공 앨런 튜닝 역시 외로워 보였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외롭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둘이 겪는 외로움의 본질적인 이유는 화성과 목성의 거리만큼 멀었다. 그가 외로운 이유는 간단했으나, 희소했다. 그는 자신을 천재로 여기기고, 다른 이들과 ‘경계짓기’를 시도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는 동료와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스스로 천재라고 칭하며 주변을 무시하는 사람은 간단히 말해 재수가 없고, 냉정히 말해 사회성이 부족하고, 엄밀히 말해 배려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지성적으로는 합격점을 넘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수준 미달인 것이다. 결국 외로움을 자초한 셈이다.

 

이미테이션 게임2.jpg

 

 하나 현대인들이 외로운 이유는 자신을 천재라고 규정짓기 때문이 아니다. 경제적 동물로 생존하기 위해 바쁘게 지내다보니 외로워졌다는 사실을 차치하자면, 현대인들이 외로운 것은 내 생각에 기대치가 높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 ‘이 정도의 배려는 기본이 아닌가?’ 하며 저마다 설정해놓은 기준이 실제로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의 수준보다 높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듭할수록, 반대급부처럼 자신에 대한 연민은 깊어지며, 그럴수록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과만 상대하려 하다 보니 더욱 외로워진다.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는 윤리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반성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내 이야기였다. 물론 과거형이다.

 

 나는 작년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것이다. 이제는 갑자기 내게 와서 주먹질만 해대지 않는다면, 내 기준치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좀 더 복잡하고 골치 아파졌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 물론, 이 기준치는 각자 선택하기 나름이다. 어떤 이는 고귀하고 고독한 삶을 택할 것이고, 어떤 이는 부대끼지만 함께하는 삶을 택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취하는 모든 선택에는 양과 음이 있으니까. 고귀한 삶을 택한 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포기할 것이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이는 ‘숭고하고 고결한 삶’을 포기할 것이다.

 

이미테이션-편집.jpg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앨런 튜링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영국군 정보부에 스카우트된다. 동료들과의 불화, 상관의 압박을 겪고, 자괴감에 빠지게 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 그는 마침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내고야 만다. 하지만, 그는 해독해낸 독일군의 암호를 작전에 전부 반영해 모든 전투를 승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자신들의 암호체계가 연합군에게 발각됐다는 것을 눈치 챈 독일군이 암호를 바꿀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몇 전투의 승리를 택하고, 몇 몇 전투의 승리를 포기한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몇 몇 대규모 작전의 승리를 택하여, 결국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2차 대전이 행해졌던 70년 전의 유럽에서도, 고독이든 연대든 어느 쪽이라도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하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택함과 포기는 계속 된다. 결국,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축제일>은 커피숍에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봤다. 어색했지만, 그런대로 매력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추천 기사]

- 우리별도 잘못하지 않았어, <안녕, 헤이즐>
- 한 번의 만개 <프랭크>
- 영화라는 삶의 미장센 <러브 액추얼리>
-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 <앤 소 잇 고즈>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6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오늘의 책

사람을 남기는 독서와 인생 이야기

손웅정 감독이 15년간 써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저자의 통찰을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등 열세 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만나보자.

쉿, 우리만 아는 한능검 합격의 비밀

한국사 하면 누구?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학습만화 시리즈. 재미있게 만화만 읽었을 뿐인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마법! 지금 최태성 쌤과 함께 전설의 검 ‘한능검’도 찾고, 한능검 시험도 합격하자! 초판 한정 한능검 합격 마스터팩도 놓치지 마시길.

버핏의 투자 철학을 엿보다

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