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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모리스 스즈키 “북한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금강산”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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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세기 전, 하얼빈에서 단둥을 거쳐 신의주, 평양, 개성, 금강산을 둘러보고 기록에 남긴 에밀리 조지아나 켐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여행기는 제국주의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지금, 켐프의 길을 다시 밟은 사람이 있다. 동북아 정세를 균형 잡힌 관점으로 관찰해온 테사 모리스 스즈키다.

세계에서 가장 가기 힘든 곳은 어디일까?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에게 가장 가기 힘든 곳은 북한일 테다. 금강산 여행이 아직 재개되지 않은 시점에서 보통 사람이 합법적으로 북한에 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북한을 직접 다녀 온 사람이 쓴 기록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태평양아시아학부 교수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가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쓴 여행기다. 동북아 정세에 관심을 둔 학자가 쓴 기록이기에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무게가 있다. 특이할 점이라면, 그녀가 밟은 길이 100년 전 에밀리 조지아나 켐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비록 분단으로 캠프가 걸은 길을 똑같이 따를 수는 없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통찰력 있게 분석해낸 수작이다. 특히 북한 부분을 읽다 보면 한국에는 너무 멀게 느껴진 북한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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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프의 여정을 따라 여행을 가기로 한 생각은 언제 어떤 계기로 하셨나요.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의 한국과 중국 방문기는 많이 읽어봤습니다. 에밀리 켐프는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던 바로 그 해에 한반도를 방문했다는 점에서 다른 여행기보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또 한 가지, 방문지를 대하는 켐프의 태도가 내게는 중요했는데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다른 영국인 여행객들과 비교해 보면 켐프는 대단히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여행 중에 만난 여성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더라고요.

 

금강산 이야기로 책이 시작되고 있으며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도 금강산입니다. 금강산에 실제로 다녀와 보시니 감상이 어땠나요.

 

저는 금강산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아주 인상적이었고, 과연 장관이더군요. 금강산에 깃든 역사의 깊은 의미도 무시할 수 없지요. 물론 제가 방문한 곳은 금강산의 주변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가서 미처 볼 수 없었던 다른 지역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특히 보덕암과 재건된 신계사는 언젠가 꼭 가볼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켐프를 따르는 여정을 따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분단으로 길(개성에서 서울까지, 부산에서 원산까지)이 단절되었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여행의 난관은 모두 한반도의 분단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열차로 한 번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북한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가려 할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의주 역에서 한 북한 행정관이 열차에 올라 제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검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경에 거슬리는 사진이 혹시 있을까 봐 긴장되었습니다. 행정관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지만, 잠시 후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북한 사람 한 명이 어깨를 툭 치더니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그 사람은 그저 우리에게 기념품 가게를 구경시켜주려는 것이었답니다.

 

앞으로 역사적 주제와 관련해 한반도에서 가고 싶은 곳, 장소나 유적이 있나요?

 

앞서 말했듯이, 금강산을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잠시 지나치며 볼 수밖에 없었던 원산 일대도 매력적이었던 기억이라 다시 가보고 싶고요.

 

한국 독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북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 독자들은 북한과 가장 밀접한 지역에 살지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기 가장 어렵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북한은 낙후되었고 무척 가난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 책을 보면 평양은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한 지역처럼 느껴졌습니다. 북한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어땠으며, 여행을 하고 난 뒤 인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는 저도 남들처럼 그곳이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가난한 전체주의 국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여행은 북한의 일부에 한정되어 있어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점을 전제하고 말하면, 북한이 매우 가난하다는 제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평양 사람 중 일부가 중산층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궁핍합니다. 정치적 억압도 물론 심하고 때때로 전횡적이지요. 하지만 제가 북한에 대해 놀랐던 것은 북한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에게 친절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경제적 어려움에 수완 좋게,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북한 사람들의 신념체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이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이기는 하지만 민간신앙과 전통적 사고, 심지어 영적 믿음까지도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아직까지 너무 많다고 느껴집니다.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5장에서, 지금 북한의 상황이 1970년대 남쪽의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닮았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때와 비교해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데요,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리라 보시나요.

 

몇십 년 뒤엔 확실히 북한도 많이 변화할 것입니다. 이미 여러 면에서 급변하고 있고요. 만약 정치체제가 변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문화는 본디 아래에서부터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과정은 분명히 남한의 역사와는 아주 다를 겁니다. 새롭고 열린 체제로 평화롭게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폭력적인 격변을 겪을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남과 북 양쪽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전자의 방식이기를 기원합니다.


켐프는 근대 문물이 가져다준 혜택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인식하는 전통과 근대의 문제,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인류가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전통과 근대가 반드시 갈등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컨대 새로운 기술은 오래된 예술품을 보존하는 데 쓰이거나 그런 전통예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근대 자체보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이윤의 원천으로 환원시키는 기업화된 시장경제의 폭주가 오늘날 더 큰 문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 내의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하려면 시장경제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합리적으로 규제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석구석에 침입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책에서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이 20세기 초반 서로 얽히고설켰던 역사를 다뤘습니다. 동북아 4개국은 경제적으로 많은 협력을 하면서도, 20세기 초반 역사를 둘러싸고 정치?외교적으로는 갈등이 많이 일어납니다. 일본의 역사적 사과와 책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요. 현재 아베 내각의 우경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현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보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1990년대에는 사과와 화해를 향한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1993년에는 고노 관방장관이,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일본의 여러 풀뿌리 단체들이 일본의 역사적 책임 문제를 제기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일본에서 유행한 ‘한류’ 열풍도 풀뿌리 한일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현재 아베 내각은 지난 20년간 이루어놓은 진보를 무산시키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협력이 필요한 지금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 간 마찰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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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패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시기 이 지역이 전쟁에 휘말렸다고 하셨습니다. 책에서 쓰셨듯이 이제 다시 동북아시아의 패권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시기인데 동북시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21세기 동북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관계된 모든 나라가 절대적 파국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현재의 긴장 국면을 극복하고 정세 균형의 변화에 평화롭게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통의 경제적 관심사와 함께 여타 사회문제, 환경문제 등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문제들은 협력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사적 광기가 치솟는 것을 방지하는 데 사람들의 이런 자각이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으신데, 현재 교수님께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주제(혹은 사건)는 무엇인가요.

 

현재 다른 연구자 5명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여러 풀뿌리 공동체가 오염, 삼림파괴, 복지체제 붕괴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프로젝트는 일본, 중국, 대만, 몽골, 북한, 남한의 사례연구를 포함합니다. 지역적 관점에서 이런 운동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풀뿌리 활동의 공통성과 이들 간 협력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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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서미석 역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현지를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 지역 고유의 자료와 사료를 발굴함으로써 국가와 지역의 틀을 초월한 역사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 덕분에 이 책에서는 김정일과 김일성뿐만 아니라 돌 깨는 인부들과 감 농장의 농부들과 시중호의 어부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호출되며, 도도하고 거대한 역사의 격랑과 그 격랑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끈질지게 살아남는 민중들의 고난한 삶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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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서미석> 역16,200원(10% + 5%)

동아시아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균형잡히고 신중한 관점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2010년에 하얼빈에서 단둥을 거쳐 신의주, 평양, 개성 , 금강산 등지를 둘러보고 다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와 임진각, 서울, 부산 등을 둘러보는 긴 여정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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