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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즐기는 정치덕후가 되라

물뚝심송 박성호의 대한민국 모든 떡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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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물뚝심송 박성호의 <대한민국 모든 떡밥>이 세 번째 시간을 맞이했다. 노동과 역사를 거쳐 결정된 주제는 그의 전공분야인 정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여러 번 원고를 수정했다는 그의 말처럼, 정치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와 구체적인 현안들이 함께한 내용이 꽉 찬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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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진짜 떡밥을 찾아라.

 

 두 번째 강연에서 오랜 역사의 모순을 해결할 방안으로 정치를 꼽았던 물뚝심송의 세 번째 떡밥은 정치였다. 그는 가장 먼저 정치의 본질이 의사결정 과정이라 말했다. 오랜 역사의 모순으로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 대화의 장이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에서 이를 해결해나갈 방법은 제대로 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것. 즉, 제대로 정치하는 것이라는 지난 시간의 결론과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라고 하면 현재 정파에 대한 이야기나 특정한 정치인 이야기를 떠올린다면서 이는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가를 논하는 것과 비슷한 논쟁이라 지적했다. 각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호도를 따지는 것 뿐 근본적으로는 어떤 내용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어떤 정치인을, 어떤 정파를 선택했는가, 하는 이유인데,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결정하거나 집안 분위기에 휩쓸려 투표를 한다고 말했다.

 

 물뚝심송은 이제 정파싸움이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식의 떡밥은 다 잊어버리자면서 진짜 중요한 떡밥은 본질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치는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떡밥이며, 이와 관련된 떡밥들만 잘 풀어 나가면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모든 떡밥들을 하위에 거느릴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

 

 대한민국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1948년 설립되었다. 1948년 5월 10일에는 남한 단독 총선거가 이루어졌고, 이 결과 제헌 의회가 소집되어 8월 15일에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행정부가 구성된다. 미군정의 요구와 이승만의 주도하에 남한에서만 단독선거가 이루어진 그 때가 한반도에서 의사결정이 시작된 순간이다.

 

 그는 이때부터 헌법이 겪는 수난사를 간단히 정리했다. 제헌의회에서 만든 헌법은 곧 이승만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뜯어 고쳐진다. 그 와중에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한 해석도 동원된다. 이승만이 물러간 뒤에 우리 사회는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면 독재가 된다는 깨달음을 헌법에 반영한 내각책임제가 도입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1년도 못되어 라진다. 잘 알다시피 박정희의 출현과 함께 제3공화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기에는 의사결정과정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영원히 제대로 된 의사결정 구조를 갖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의사를 어떻게 모은다는 것인지 난감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 그는, 같은 이유에서인지 차라리 힘 있는 사람이 나타나 모든 의사결정을 도맡아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곧 이어 그는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멋진 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 하나를 소개했다. 바로 Democracy is a process rather than conclusion. 민주주의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이 이야기는 영원히 민주주의를 완성될 수 없으니 그만두자는 말을 완전히 부정한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 완성된 상태를 향해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이해하고 나면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가끔 하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너무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동시에 이런 말이 꼭 특정 집단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이나 토론, 양보와 타협의 과정을 귀찮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누군가 나서서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 그는 민주주의에 있어 바로 이런 마음이 독재나 자본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고 말했다. 수강생들에게 일상 속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물뚝심송은 의사결정권에 대한 이 다소 추상적인 담론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한다.

 

의사결정의 시작, 선거제도 돌아보기

 

 조금 더 나은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선거제도로 구현된다.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선거제도는 의사결정 구조의 시작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 아래서 의회를 구성하는 방법이 엉터리이면, 의회는 우리를 대표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에게 입법권, 즉 의사결정권을 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정치에 관한 떡밥 중 가장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떡밥은 선거제도라 말했다. 85년도 2.12 총선은 중선거구제로 치러졌던 것을 보면 우리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가 고정불변의 제도나 관습적인 제도가 아니다.

 

 최근에 헌법재판소에서 법안 하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물뚝심송은 이 결정이 상당히 굵직한 이야기였음에도 별로 보도가 되지는 않았다고 집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구간의 인구 차이를 3배까지 허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법에 의거해 지역구가 설정되어 있고, 기존의 총선이 그 지역구 별로 치러졌다. 그러나 헌재는 이 규정이 평등 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리고 올해 말까지 선거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 문제는 새누리당의 정우택 의원과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제기한 문제다. 지역구가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면,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더 중요한 표의 등가성 원칙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한 표를 가져야 하는데, 이렇게 인구 차이가 나버리면 내 한 표의 가치가 다른 사람 한 표의 가치보다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말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행 3배 차이까지 허용되던 것을 2배차이 이내로 줄이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작은 지역구는 합쳐야 하고, 합쳐도 최소 지역구의 두 배 이상 유권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쪼개서 합쳐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물뚝심송은 이 작업이 우리 국회에서 1년 이내에 만들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큰 문제인데도 현재 주목도가 낮다고 이야기했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온갖 개정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선거법을 고치고 지역구 재설정을 할 거면 이참에 선거제도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수정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87년에는 독재정권을 끝마치면서 독재를 막기 위한 법조항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으니 이제 손을 댈 때도 되지 않았냐는 개헌 논의도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명확하다 의회의 의석수 구성은 유권자 수에 정확하게 비례해야 한다는 것. 최소한 그 오차범위가 어느 정도 이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가장 명쾌한 해법은 정당명부제다. 지역구를 없애고 전국 총선을 하되, 정당 이름만 나열해서 찍게 하고 각 정당에서 자신들의 후보 명단을 순위에 맞춰 구성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유권자들이 정서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 대표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의 비율을 조정하는 타협안이 제시될 수도 있다. 현행제도는 지역구 의원의 비율이 많으니 낮추고 비례 대표의 비율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전국에 246개나 되는 지역구가 있을 이유가 없다. 점차적으로 소선거구제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양원제에 대한 주장도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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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와 지역감정

 

 그런데 우리의 선거제도는 왜 여전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독재자들이? 아니다. 이 제도는 제6공화국 선거제도로 87년 체제다. 이 체제 아래서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탄생했고, 열린 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점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 문제들이 더 완벽한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물뚝심송은 참여정부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을 시작으로 선거제도와 지역문제의 관계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박정희 시절 이후, 대단히 강력한 영남권 출신들의 기득권성장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 편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영남패권주의라는 가혹한 개념까지 등장한다.

 

 이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호남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는 90%의 득표율을 자랑한다. 가혹한 소외에 대한 정치적 선택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고착되고 심화되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사회적 의사결정 구도가 왜곡되는 셈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적으로 사회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의사결정 구조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집단은 당시의 한나라당이니, 운 좋게 한 번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 바로 대연정이다. 자신의 의사결정권을 반쯤 양보할테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점을 제거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 협조해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물뚝심송은 대연정은 실패했지만, 노무현이 가졌던 그 문제의식에는 백배 공감하지 않으면 안 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정치와 만나는 두 가지 방법

 

 당장 헌제가 선거법 자체에 위허 판결을 내렸고, 지역구 개편을 명령했지만 여야 어디에서도 공개적으로 지역구 개편 문제를 논의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왜 공개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느냐. 여야 모두 현재의 선거제도가 쳐주는 진입장벽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을 허물어 버릴 논의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그는 이 움직임이 유권자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정치를 만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정치를 즐기는 정치 덕후가 되라는 것이었다. 정치 팬클럽이 아니라 덕후. 말하자면, 진짜 정치 떡밥이 뭔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되자는 것이다. 각국 선거제도를 찾아서 비교하는 것, 혹은 의원실에 전화해서 자료집을 받아보는 것, 이런 것들을 틈틈이 읽으면서 정치를 좋은 취미생활로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언론이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일까? 최근에 보고 있는 미국드라마 뉴스룸에 맥어보이라는 이름의 앵커가 나오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론의 역할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들었을 때 과연 무엇을 고를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사람들은 우리 정치의 현실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 정부에서 언론사를 금전적인 부분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한 물뚝심송은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를 소개했다. 바로 언론. 첫 시간, 노동에서 출발한 강의가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마지막에서 어떤 대답을 찾게 될까. 마치 드라마의 마지막 같은 홍보라고 웃는 그의 말을 들으며, 다음 시간에 만나게 될 대한민국 언론 이야기가 한층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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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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