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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떠올린 삭막함의 반대말

『Stationary Traveller』 CA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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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베트남 하노이에서 덜컥 맞았다

 새해를 베트남 하노이에서 덜컥 맞았다. 쌀국수 값과 맥주 값과 호스텔 숙박비가 굉장히 착해 보여 안 올 수가 없었다. 보일러 땔 돈에 감기약값을 보태면 얼추 여행비용이 되겠다는 계산도 했다. 그러나 와 보니 계산이 틀렸고(아아 비행기 값을 간과하다니 바보 아냐) 한파에 싸늘하게 얼어붙은 고독한 가슴은 이곳의 날씨에도 전혀 녹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하노이 구시가를 걸으며 삭막한 오토바이 떼와, 매캐한 매연과, 자비 없는 경적소리에 영혼을 빼앗길 뻔했다. 멈출 생각이 없는 오토바이 사이로 길을 건널 땐 인생에 회한도 느꼈다. 음악이 필요했다.

 

 나는 카페로 피신해 진하고 달콤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귀에 꽂았다. 하지만 낯선 이국에서 너무 많이 걸어 지친 상태로 달콤한 음악을 진하게 들었더니 긴장이 풀리면서 헐렁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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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숙소에 갈 때 흥정도 안 하고 씨클로(베트남 자전거 교통수단)에 타고 말았다.(아아, 계속 바보 아냐) 그저 귀에 흐르는 카멜CAMEL(담배 아닙니다)의 『Stationary Traveller』(문방구 여행자 아닙니다. 정체된 여행자?)에 경탄하며 하노이 시내를 바라보았다. 음악의 힘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던 풍경이 낭만적인 뮤직비디오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정초부터 추억의 턴테이블이 뱅뱅 돌면서 어떤 강력한 기억이 떠올랐다. 서울 거리가 베트남처럼 무척 혼란스럽고 시끄럽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따듯한 동남아에서도 현실은 차갑고 냉정한 법. 목적지에 내릴 때 감상에 빠졌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씨클로 아저씨가 바가지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평생 돈이 넉넉했던 적이 없는데 타고난 귀티 때문에 꼭 있는 놈인 줄 안다니까.)


 “5분 탔는데 20만동(만원)을 부르다니, 꽁안(경찰)을 부르겠소.”


 라고는 했지만 경찰 번호가 뭔지 모르고, 내 휴대폰은 데이터만 되는 심카드고, 아저씨가 너무 삭막하게 바락바락 우겨 게임오버.

 

 오늘의 주제곡 『Stationary Traveller』를 오랜만에 들은 값이 아주 비쌌던 셈이다. 어쨌든 이 곡을 들으며 떠올린 그놈의 비싼 추억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돈 아까워서 안 되겠다.
 
 나는 서울의 기동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데모가 무진장 많은 시절이었고 그걸 막는 전투경찰 부대였다. 우리가 출동할 땐 ‘페퍼포그’ 차라는 게 동행했다. 그것은 최루탄 발사기를 장착한 장갑차다. 그 시커먼 게 시위대 한복판에 다연발 지랄탄을 우다다 터트리면 웬만한 시위대는 개다리춤을 추며 이리저리 흩어져야 했다. 열 받은 시위대가 뒤집으려 하면 차체에 전류를 흘리는 기능도 있었다. 참 삭막한 장비였던 셈이다. 몸으로 쇠파이프와 화염병(시위대도 삭막했다)에 부닥쳐야 하는 일개 기동대원으로선 그 차에 탑승하는 놈이 정말 부러웠다. 


 그 부러운 친구는 사회에서 음악을 하다 온 녀석이었다. 그가 그 어려운 ‘잉베이 말름스틴’의 곡을 치면 둘이 듣다 하나가 탈영해도 몰랐다. 아무튼 상황 출동을 하면 차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며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챙기곤 했다. 차벽이 두꺼워 훌륭한 음악 감상실이 된다는 거였다. 그 삭막한 차에서 군복무 중에 음악이라니, 상당히 부러운 보직이었다.

 

 우리는 어느 날 대규모 시위 현장에 투입되었다. 정부에 화가 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냥 군대에 왔을 뿐인데 공권력의 앞잡이로 거리에 나가 시위대의 샌드백이 되는 내 팔자가 못생겼다고 구시렁댔다.


 그날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위대가 정예 네임드였고 평화시위 따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옷 그런데 시시한 해산 안내방송이 나와야 할 우리 페퍼포그 차량에서 뜬금없이 빵빵한 음악소리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바로 오늘의 주제곡 『Stationary Travell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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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한 기타리스트가 차에서 음악을 듣다 실수로 외부 스피커를 켜버린 것이었다.

 

 시위대와 전경들은 순간 멈칫하며 잠시 그 아름다운 팬 플루트 소리로 시작하는 음악을 들었다. 삭막한 시위현장 한복판에 퍼지는 음악의 이질적인 황홀함이란! 이 곡의 끝내주는 톤을 가진 기타 솔로 부분이 나오자 캬아, 그건 뭔가 상황을 그림처럼 달라보이게 만들었다.

 

 카멜의 음악은 싸우기 직전의 대치국면에 마치 ‘뽀샵질’을 하는 듯 했다. 수많은 시위대와 전경들이 내 눈엔 카멜 콘서트에 몰린 팬들로 보였다. 무거운 국방색 진압복과, 시위대의 처절한 눈빛과, 등 뒤에 숨긴 쇠파이프와, 땀에 쩐 방독면과, 지휘관의 신경질적인 고함소리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전혀 현실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며 꿈을 꾸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대로 음악을 계속 들었다면 모두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마음이 들어 진압도 안 하고, 시위도 그만두고 그것 참 좋은 선곡이었다며 악수한 뒤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음악이 나가고 있다는 걸 지휘관이 알았는지 소리가 뚝 멈췄다. 감상적인 분위기도 뚝 끊겼다. 동시에 음악의 톤과 주파수가 차지하던 자리에 화염병 하나가 빨간 선을 그으며 날아왔다. 경찰 무전 은어로 ‘꽃병’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음악의 여운이 남아 내 눈엔 정말 꽃병이 날아오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옆에서 터지자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는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 않은, 폭력진압과 폭력시위의 악순환이 이어졌고, 그날 우리 중대는 개박살이 났다. 나는 쫓기다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시위대에게 포위되어 발가벗겨졌다. (아잉 부끄)
 
 다음 날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보니 그때의 시위현장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다시 연상되었다. 나름 오토바이끼리 합의된 질서가 있었지만 적응하기 쉽진 않았다. 마구 누르는 시끄러운 경적소리는 직접 달려보니 이해가 갔다. 이 사람들 습관이기도 하지만 엽기적인 교통상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좀 그러지 마라”고 경고해야 하는 순간이 많은 거였다. 역주행에 신호위반, 차선위반에, 아무데서나 유턴해대는데 안 박으려면 나도 경적에 의존해야 했다. 오래전 군복무 당시 대한민국 수도가 그토록 시위로 시끄러웠던 것도 엽기적인 정치 수준에 “아 좀 제발 그러지 마라”는 경적소리가 난무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그 오토바이 위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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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베트남의 빠른 경제발전이 문화발전으로도 잽싸게 이어지길, 나는 새해 소망으로 빌어보았다. 나 역시 문제나, 아픔이나, 분노 없이, 그래서 싸울 일도 없이 평화로운 한 해가 되면 좋겠다고 빌었다. (뭔가 역사가 거꾸로 흘러 자꾸 경적을 울리고 싶다는 게 촌스럽다.)  


 그러려면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할 것 같다.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딱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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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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