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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날 모스크바 속으로

4박 5일간의 러시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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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중에서도 대도시로 꼽히는 모스크바. 이 낯선 도시가 매력적으로 확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대도시 중에서도 대도시로 꼽히는 모스크바. 이 낯선 도시가 매력적으로 확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어느 도시와는 다르게 양파 모양의 정교회 사원 지붕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얼어붙은 모스크바 강이 이 도시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낄 때, 그리고 모피로 휘감고도 볼이 빨갛게 언 아름다운 여인이 스쳐지나갈 때… 그럴 때면 이 추운 나라를 굳이 찾은 이유를 내가 납득하고도 남는다.

 

이 매력적인 도시를 오늘은 종일 걸어보리라 다짐하며 야침차게 나선다.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굳세었던 그 옛날의 금순이처럼.  


언덕에 올라 오늘을 외치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는 참새 언덕. 이곳에 서면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강과 국제 비즈니스센터, 1980년에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2018년 월드컵이 열릴 루즈니키 스타디움, 외무성 등을 볼 수 있다.

참새 언덕에서 모스크바 시내를 보고 뒤를 돌면 웅장하게 서 있는 건물이 바로 엠게우, 모스크바 국립대학이다. 스탈린 스타일의 대표적 건축물로도 유명한 이 대학은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종합대학으로 3만여 명의 학부생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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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 참새 언덕에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러시아에서 크리스마스는 정교회 월력에 따라 1월 7일. 때문에 12월부터 1월 말까지 시즌 분위기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낼모레 바로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벌써부터 들떠 보인다.

 

야심차게 올라왔지만 이 칼바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는데 막 결혼식을 끝낸 신랑신부와 친구들이 피로연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고 있다. 아직은 앳된 그들의 얼굴에 행복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 결혼을 하다니 그래도 참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차 안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얼핏 보인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는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들러리를 선 친구들의 얼굴에도 행복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참새 언덕을 내려가려다 멈춰 섰던 나는 웃고 떠드는 신랑신부 친구들에게 슬쩍 카메라를 올렸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내가 몰래 사진 찍는 것을 알아채고 나에게도 포즈를 취해준다. 나도 같이 웃는다.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다는 참새 언덕. 날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곳인가. 오늘 그들의 이야기는 행복. 나의 이야기는 덩달아 기쁨. 우리들의 이야기는 또 메아리치며 돌고 돌아 이 언덕에 머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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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품격, 노보데비치 수도원

 

참새 언덕에서 내려와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으로 향했다.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의 영감을 얻었다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호수 공원. 여름날 해질녘의 고즈넉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그 말이 수긍이 간다지만 지금은 꽁꽁 얼어 백조는커녕 오리 한 마리도 없다.

 

대신 하얗게 눈이 쌓인 공원은 동네 꼬마들의 눈썰매장이 되고, 호수는 자연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 고풍스러운 수도원을 배경으로 눈썰매를 타는 꼬마들이라니. 썰매를 끌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 배경이 너무 아름답다. 이 정도 놀이터를 가진 아이들이라면 귀족의 자제쯤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동네 꼬마들이라니 모스크바 꼬맹이들의 썰매장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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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수도원의 모습은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 듯 평화롭게 보이지만 수도원이 담고 있는 역사는 평화롭지만은 않다. 16세기에 지어진 후 전쟁 중에는 요새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명문 귀족의 자녀가 은둔하거나 유폐되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표트르 대제의 이복 누나 소피아 공주가 유폐되었던 곳이 이곳이다.

 

“티켓 보여주세요.”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나를 막는다. 눈 딱 내리깐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가 유독 나에게만 티켓을 보여 달란다. 그냥 들어가는 저 사람들은 어쩌고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어차피 러시아어는 못하니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니 아저씨가 티켓박스를 가리킨다. 나도 지지 않고 수도원 안쪽을 가리켰다. 3초간의 눈싸움. 결국 아저씨가 길을 비켜선다. 말이 안 통하는군, 이런 표정이었지만 아저씨 나 다 알고 있어요. 여기 무료입장이라는 거.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입장료는 원래 무료다. 그런데 입구에 떡하니 티켓박스가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티켓을 사게 되는데 그 티켓은 특별한 전시회나 성채 입장 시에만 구입하는 티켓이다. 정원만 둘러볼 계획이라면 티켓은 사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어딘가 어리바리해 보이는 관광객에게 티켓을 요구하기도 하니 쫄지 말고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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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노보데비치 수도원. 고즈넉하고 소박한 수도원은 16세기부터 내려온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다른 유명한 수도원과는 또 다른 기품이 느껴졌다. 현재 수도원 안에는 안톤 체홉, 흐루쇼프, 옐친 등 유명인들의 묘지가 있다는데 정원 묘지 사이를 거닐다보면 세월에 세월을 덧입혀 쌓은 그 시간이 숙연해져 어느새 발소리마저 죽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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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공원 호숫가를 지나 수도원의 고즈넉한 정원을 거니는 산책은 모스크바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었던 것도, 눈보라를 헤치고 다녔던 것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시간들.

 

이제 모스크바의 시간들을 여운으로 남기고 내일은 아침 일찍 첫 기차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두근거리는 새 여행이 기다린다.

 

 

 

 


* 이 글은 『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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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서현경 저 | 시그마북스
어떤 일은 생각지도 않게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가 하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행이란 그렇게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 종종 있다. 물론 그런 게 여행의 묘미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나라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의 “놀러와!” 한마디에 계획에 없던 여행을 느닷없이 실행하게 된 저자. 그래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백지 위에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렇게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의 여운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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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서현경

본업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방송작가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여행 후 내내 자꾸 떠나고 싶은 불치병을 앓고 있으며, 떠날 궁리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여행자다.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글을 쓰며 여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 시간이 좋은 작가. 아직은 갈 곳이 너무 많아 다행이고 떠날 수 있는 배짱이 있어 든든하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갈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날마다 고민하는 여자. 딸을 제대로 된 여행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열혈 엄마이기도 하다. blog.naver.com/hkseo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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