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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 투 더 스타> 별에서 왔을 것만 같은 그대

영화 <맵 투 더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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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 투 더 스타>는 크로넨버그의 작품들 중 비교적 스토리 라인이 명확한 후반기의 영화의 틀 속에 초창기의 기괴한 분위기를 녹여낸 작품이다

비위를 상하게 한다. 초기 작품들처럼 신체 변형을 통한 기괴함, 정신착란과 현실의 비틀린 경계에서 오는 어지러움, 혹은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인간의 도덕성을 조롱하는 날카로운 풍자 때문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늘 그렇게 관객들의 비위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과 텔레비전의 몸이 합쳐지는 1983년 <비디오드롬>, 인간과 파리가 한 몸이 되는 1986년 <플라이>, 자동차 사고로 신체가 훼손될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1996년 <크래쉬> 등 호러장르의 외피를 쓴 그의 작품들은 또 그렇게 신체를 훼손하고 가치를 뒤섞으면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신화와 농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장 있을 법한 이야기로 만들어 놓는 설득력에 있어서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함에 있어서도 그는 여전히 늙지 않고 독창적이고 또한 그래서 독보적이다. 그것이 제2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라 불리는 감독이 탄생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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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할리우드로 찾아온 소녀 애거서(미아 바시코프스카)는 트위터로 맺은 캐리 피셔와의 인연으로 유명 여배우 하바나(줄리앤 무어)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하바나는 오래전 자신의 어머니가 주인공이었던 영화의 리메이크작에 동일한 배역으로 캐스팅되기를 고대하지만, 쉽지가 않다. 하바나의 심리치료사(존 쿠잭)의 아들이자 인기 아역배우인 벤지(에반 버드)는 자신의 인기가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환영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애거서가 벤지를 찾아오면서,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하나의 과거로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얼핏 보면, <맵 투 더 스타>는 할리우드로 날아온 소녀 애거서의 행보와 배역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바나, 불안증에 시달리는 벤지, 방탕한 파티 피플 등, 할리우드 영화계의 어두운 속내를 드러내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많은 영화에서 우리가 봤던 할리우드 영화계의 이면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만나면서 색다른 층위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영화의 소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어떤 상담으로도, 어떤 손길로도 해소되지도 구원되지도 않는 불안함이다. 이 불안함은 그들의 삶에 균열을 만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단단하게 빗장을 걸어둔 강퍅한 마음과 현실과 경계를 긋기 못한 환영은 그 균열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어두운 버팀목이기도 하다. 어느 날 불쑥 찾아든 애거서는 그 균열 위를 겅중대며 뛰어다닌다. 그리고 애거서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파멸 혹은 구원시킨다. 죽음이 소멸이자, 고통에서의 구원이라는 확고한 태도는 감독이 위선적인 삶을 경멸하는 그 대척점에서 ‘피의 정화’ 혹은 ‘피를 통한 정화’라는 상징을 가시화 한다.

 

<맵 투 더 스타>는 크로넨버그의 작품들 중 비교적 스토리 라인이 명확한 후반기의 영화의 틀 속에 초창기의 기괴한 분위기를 녹여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이해할만하고, 이미지와 상징은 오히려 단순하단 말이다. 공감할 만한 주인공, 혹은 연민하고 싶은 캐릭터가 없다는 것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꽤 힘든 일이지만, 빼어낸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믿게 만든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기행을 저지르는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연기도 유려하지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보상받은 줄리앤 무어는 파격적 이야기보다 한 발 앞서 관객들을 설득시킨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연결고리 존 쿠잭과 이야기의 중심 축인 신경증에 걸린 10대 소년 에반 버드의 연기도 잘 조율되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전작 <코스모폴리스>에서 리무진을 타던 로버트 패트릭이 리무진 기사로 알바를 하는 배우 지망생으로 돌아와, 전작과의 기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재미있다. 얼빠진 듯한 로버트 패틴슨의 등장이야말로 크로넨버그 팬들에게 선물하는 능글맞은 코미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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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리무진 운전기사가 애거서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녀는 ‘주피터(목성)’라고 답한다. 물론 주피터는 플로리다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이름이지만, 애거서는 어쩌면 별에서 별이 되고 싶을 사람들을 별로 만들어주기 위해 내려온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은유는 그녀를 일종의 ‘순교자’로 보이게 한다. 국내 개봉에서는 단수형으로 변화시켰지만, 영화의 원제는 <Maps to the stars>이다. 원제처럼 영화 속에는 별과 만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별을 내게 오게 하거나, 내가 별에게로 가거나, 소멸하여 별이 되거나, 소멸시켜 별이 되게 하거나…….이 모든 방법으로 가는 지도는 소녀 애거서의 손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지도에 나와 있는 그 방법으로 그녀는 모든 이들의 구원이 된다. 줄곧 폴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읊조리는 것이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담겼다면 단순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맵 투 더 스타>는 기괴한 방법으로 종교적 순교와 그 구원을 통한 자유를 읊조리는 ‘시’와 같은 영화이다. 물론 그 미세한 울림이 모두의 마음속에 공명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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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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