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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빼앗긴 타임킬러

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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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개장과 더불어 수면 밑의 개인들이 광화문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마치 육식 거대 공룡의 시대가 저물면서 작은 포유류들이 세상을 차지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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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라……. 최 소장님, 이런 호칭을 마구 써도 되는 건가요?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되죠. 사실 저는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거의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중입니다. 몸이 사~알짝 더 힘들고 이 사이에 음식물이 잘 끼고 책을 볼 때 눈이 조금 침침해 눈을 깜박이는 횟수가 늘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내 영혼은 언제나 청춘이다(인가?), 라고 믿고 사는 중이죠. 그러니 고작 마흔 중반에 아저씨 호칭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쓸 만한 다른 단어는 정녕 없을까요? 분명히 뭔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한번 잘 찾아봅시다, ‘격’에 어울리는 호칭을. 주위 건물을 둘러보면 눈에 띄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청계천변 삼일빌딩, 1970년 개띠(착공 기준)로 나랑 동갑입니다. 최근 주변에 젊은 것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조금 나이 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왕년에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갔던 뚝심은 여전하잖아요. 그러니 아저씨라는 호칭은 저리 치우고 힘냅시다. 건물 따위에 질 수는 없잖아요, 라고 최 소장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거부의 몸짓 자체가 스스로 아저씨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여진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는 ‘아저씨’라는 단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중년? 웁쓰. 그래도 『중년의 발견』이라는 책을 보니 인간은 중년에 가장 지혜롭고 나이가 들수록 용감해진단다. 중년이 이렇게 가능성을 지닌 단어인 줄 처음 알았다. 그에 비하면 아저씨라는 단어에서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더 이상 젊지도 않고, 그 나이를 먹도록 뭐 하나 이루지 못한 회한의 찌꺼기 같은 것들이 봄날 황사와 섞인 초미세먼지처럼 텁텁하게 주위를 감싼다. 그래서 최 소장이 아저씨라고 부를 때 여태껏 뭐하고 살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인생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아저씨 & 후회’로 검색을 해보면 젊은 시절 심각하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일들이 주르룩 튀어나온다. 물어보면 그저 그러고 싶어서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일들, 무작정 올라탄 버스, 종점에서 내리면 맞아주던 낯선 거리의 모퉁이에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막막해하던 일들, 하릴없이 공항에서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을 벗어나는 공상을 하던 일들. 그때는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러다 날이 좋은 계절에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날이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세종문화회관이라면 보통 럭셔리한 공연을 즐기는 선남선녀의 모습을 기대하지만, 나는 2층 테라스(지금은 폐쇄 중)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저렴하게 시간을 보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 권 사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테라스 의자에 앉아 난간에 발을 올리고 있으면 발 아래로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계절이 지나갔다. 엄덕문 선생이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하실 때 외로운 청춘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라고 테라스를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곳은 1층의 거리와 분리되어 조용했고 규모도 크지 않아 한산했으며 값싼 자판기 커피가 있어 몇 시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당시 광화문 주변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 좋을 만큼 아주 조용했다. 그렇게 조용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곳이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로서 일체의 민의民意가 배제된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의가 배제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광화문 거리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 행정의 중심인 육조거리로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다니거나 임금이 행차하던 곳이었다. 이 자리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해방 후에는 미 대사관과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섰다. 덕분에 광화문 하면 어떠한 시위, 의견의 개진도 허용되지 않는 곳, 정치 이벤트만 열리던 곳, 경찰들이 지독히 불심검문을 해대는 통에 참으로 걷기 싫은 곳이었고 그래서 조용했다. 그들은 가능하면 근처에 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광화문에는 민의만 없었던 게 아니라 개인도 없었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압구정동을 시작으로 소비의 주체인 개인들이 등장했지만, 광화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이순신 장군이나 2002년 월드컵의 영웅들 같은 슈퍼히어로들, 민주주의를 외치며 집단의 형상을 한 시위대, 이를 저지하는 경찰 등등. 그들은 대개 역사에 이름을 올릴 만한 대단한 인물이거나 얼굴이 없는 집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개인이 낄 여지가 없었다. 대신 시간을 죽이던 외로운 청춘들은 세종문화회관 2층 테라스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의 이름을 한 카페 같은 작은 틈들을 찾아다니며 서식했다. 그래도 그 시절 그곳에 감사하는 것은 최루탄이 날리고 불심검문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쫓겨나고, 궁궐 건축의 기둥 형태를 기괴한 스타일로 뻥튀기했다고(세종문화회관에 대한 함성호 시인/건축가의 평) 손가락질 받았지만, 여전히 지낼 만한 작은 틈과 사이가 있었고, 무명씨들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나 「옛사랑」의 연인들이 눈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사랑을 속삭였던 장소 역시 이런 자그마한 서식지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광화문 광장의 개장과 더불어 수면 밑의 개인들이 광화문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마치 육식 거대 공룡의 시대가 저물면서 작은 포유류들이 세상을 차지한 것처럼.

 

2009년 광화문 광장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국가상징축을 바로잡고 차들에 점령당한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참, 말들이 많았다. 시청도 그렇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그렇고 서울 도심에 뭔가 거대한 공공시설물이 나타날 때마다 손가락질 받는 전통의 시작이랄까. 서울 도심 한가운데 길이 557미터, 너비 34미터의 거대한 보행 공간의 등장은 일찍이 없던 사건이라 광장 한가운데를 걸어보면 처음에는 ‘거참 신기하구먼’ 한다. 하지만 지나 보면 양 옆이 차도로 분리되어 차량에 갇힌 섬 같기도 하고, 누구 말처럼 거대한 중앙분리대에 서 있는 것 같아 좀 우스꽝스럽고 그렇다. 그리고 더 지나 보면 그곳은 광장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실제로 광장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니 일단 광장이라고 하자).

 

그리스 아고라를 근원으로 하는 광장은 그 속성이 시민들이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이 일어나고, 갈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공적 민의가 개진될 수 있어야 하는 장소여야 한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에는 시위나 집회가 여전히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특별시 광화문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의해 허가를 받아야 하나 정부청사와 미 대사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집회 허가는 내주지 않는다. 공간 역시 각종 설치물로 사람들의 집단적인모임을 거부한다.

 

사실 광장인지 아닌지, 또는 정치적 집회가 허용되는지 여부보다 더 불만인 게 있다. 광화문과 주변 환경의 변화가 기존 작은 공간들을 지워버린 것이다. 국가 상징가로의 설정, 광장 조성, 가로 정비, 주변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들어서는 빌딩들…… 2000년대 후반부터 광화문 주변에서 개발이 진행되면서 주변 공간들이 점점 매끈해져 가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2층 테라스는 폐쇄된 지 오래고, 계단은 행사용 무대로 사용되기 일쑤며 뒤편 우거진 등나무가 그늘을 만들던 공원도 사라졌다. 주변 저렴한 식당들이 있던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피맛골은 국적 불명의 상가로 변했다. 공간이 매끈하니 이것저것 담을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배회하던 청춘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광장은 개인의 등장을 허용했지만 그때의 개인들이란 통제가 가능한 개인들, 광장에서 놀아줄 개인들, 정치적 의사가 소거된 개인들에 한정된 것이다.

 

기껏 만들어놓은 도심부 공공 공간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애쓴 분들에게 죄송하다. 어쩌면 이분들도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겠다. ‘주말에 봐라, 광장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모여서 각종 이벤트를 즐기는지. 일찍이 도심에 시민들로 북적이는 공공 공간이 있었던가’ 하며 추방된 타임킬러가 떼쓴다고 몰아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럴 수도 있겠네요, 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이벤트가 끊임없이 열리는 공간이 좋은 공공 공간인지. 활기차 보이고 만드느라 수고하신 분들도 보람도 느끼고, 그런데 그러면 된 건지 여전히 의심이 든다.

 

얼마 전에 읽은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라는 책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활동뿐 아니라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단순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낮잠을 자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 등 북적임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만, 그 공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 이누이 구미코, 야마자키 료,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

 

책을 읽으며 북적임이라는 현상 뒤에 가려진 액티비티들을 들춰내는 저자의 안목에 무릎을 쳤다. 그래, 광화문도 저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시간을 보낼 여지가 있는 곳이 된다면 어떨까? 그러면 이벤트가 열리는 주말만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평소에도 쓸쓸하고 텅 빈 공간으로 남지 않을 텐데 말이다. 광장에서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까지 보듬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서 엉덩이를 붙이고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추방된 타임킬러들이 환호 속에 귀환하는 장면을 그리던 중, 광화문 광장의 구조가 이런 자유도를 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 광장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라는 부분을 쓰려고 하는데 지면이 모자라 이 부분은 최 소장의 고견을 듣는 것으로 패스하겠다.

 

 * 이 글은 『서울 건축 만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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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만담차현호,최준석 공저 | 아트북스
『서울 건축 만담』은 쫄깃하고 시원한 치맥처럼 십 수 년의 인연을 이어온 두 건축가가 퇴근 후 사람 사는 냄새가 눅진하게 배인 치킨 집에서 맥주 한잔에 그날 걷고 보고 재구성한 서울의 일상을 풀어놓은 건축 에세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변잡기 에세이를 빙자한 건축과 도시 이야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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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차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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