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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는 하드SF?

하드 SF는 SF 중에서 과학적 논리를 중심에 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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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펼친 소설이 SF이고 그 중에서도 주제와 이야기의 중심에 과학적 논리와 사유가 있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묘사가 담기면 하드SF가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천만 관객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화사도, 누구도 개봉 전에 예상하지 못한 대성공이다. <다크 나이트>를 만들었던 놀란의 인기도 한몫했고, ‘우주 교육 영화’로 간주되며 가족 관객을 끌어들였고,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사랑으로 ‘감동’을 주었다는 이유 등 <인터스텔라>의 성공 요인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하드 SF’라는 장르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과학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전개하는 SF는 한국에서 마이너한 장르다. 한국에서 흥행이 가능한 SF영화는 대체로 SF ‘액션’에 치우쳐 있었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이전까지는 판타지 영화도 그랬고. <스타워즈>는 SF의 하위 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였고, 70년대에 개봉했을 때도 1편 말고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2편은 개봉도 안 했고. 아무리 마블이 잘나가도, 수작인 스페이스 오페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생소한 캐릭터와 설정 덕에 한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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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가 하드 SF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하지만 ‘교육적 효과’라는 점에서 <인터스텔라>의 하드 SF적인 요소는 중요했다. <인터스텔라>는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면서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들이 찾아간 블랙홀 주변의 행성에서는 시간이 지구, 우주선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간다. 지상에서 단 몇 십 분을 있었을 뿐인데 우주선에서는 7년의 시간이 흐른다. 주인공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딸은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아버지는 아직도 중년에 머물러 있고. 그밖에도 <인터스텔라>에는 과학적으로 유추한 블랙홀과 시간이 더해진 다차원 공간에서의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인터스텔라>에는, 아직 인간이 가 보지는 못했지만 과학적으로 상상한 우주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것은 충분한 교육적 효과가 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독특하게 해석하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스텔라>를 하드 SF라고 부를 수 있다.


하드 SF는 SF 중에서 과학적 논리를 중심에 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펼친 소설이 SF이고 그 중에서도 주제와 이야기의 중심에 과학적 논리와 사유가 있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묘사가 담기면 하드SF가 된다. 어디까지를 하드 SF라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길고도 복잡한 논쟁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여기서 되짚어볼 생각은 없다. 장르는 유동적이고 변화한다. 그리고 인접 장르와 뒤섞이며 혼용되고 변화, 발전한다. 하드SF이면서 스페이스 오페라인 래리 니븐의 『링월드』처럼.


작품들이 먼저 등장하고 SF라는 말이 생긴 것처럼, 하드 SF는 뒤늦게 50년대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SF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뉴웨이브가 등장한다. 과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정신으로 눈을 돌리며 실험적인 ‘문학’으로 도약하려고 했던 뉴웨이브의 시도는 흥미로웠지만 지속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1967년 ‘뉴웨이브파의 소설들은 단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현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과학소설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이른바 일반 순문학 쪽으로 한없이 접근해가고 있다. 이 경향에 나는 반대한다. 나는 과학소설을 읽고 싶은 것이다. 과학이 결여된 과학소설은 과학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소프트 SF라는 말도 생겨난다. 과학이 아니라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을 기반에 둔 SF를 말한다. 판타지보다는 SF에 가깝지만, ‘과학’이라고 말하기에 망설여지는 ‘사회 과학’을 기반에 둔 사고 실험 같은 것들. 하지만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 『어둠의 왼손』 같은 소프트 SF 역시 하드 SF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과학’ 자체보다 논리적이고 정치한 ‘사고실험’을 중시하는 의견이다.


장르가 변화하기는 하지만, 하드 SF라고 장르에 대해 말한다면 결국은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에서 얼마나 중심에 두는가,로 말할 수밖에 없다. 당장 입증할 수 없다 해도 과학적인 문제제기를 하며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다. 우주는 결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고, 한때는 상상이었던 반물질도 존재한다는 것으로 과학의 정설이 바뀌어 왔다. 그렇기에 상상력의 기반에 과학이 있다면 SF는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 SF에 대해 전체상을 보고 싶다면 두 권으로 분권되어 나온 단편집 『하드 SF 르네상스』를 읽어보는 것이 개념 파악에 좋다. 편집자인 데이비드 G 하트웰과 캐스린 크레이머가 ‘하드 SF’에 속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선정했다. 취향에 맞춰 골라 읽어도 좋다.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은 하드 SF 입문용으로 좋다.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그렉 이건 『쿼런틴』, 현재 SF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그리고 호시노 노부유키의 만화 『2001 Space Fantasia』, 『블루 홀』, 『문 로스트』 등이 하드 SF의 명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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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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