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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소설가 황정은 폭력을 묘사하다

황정은의 폭력 3부작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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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발표한 황정은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잔잔한 듯 숨은 에너지를 간직한 그녀 안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문단의 마녀 소설가, 황정은


지난 3일 저녁, 서교동에 위치한 인문까페 창비. 작가 황정은을 흠모하는 이들이 모였다. 『계속해보겠습니다』의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된 독자들이었다. 가벼운 흥분감이 공간을 채워가던 찰나,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날 사회로 초대된 그는 황정은 작가의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했다.

 

송종원 : 한국 문단에서 여성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자리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맑고 투명한 감성으로 소녀의 자리에 있으신 분이 계신가 하면, 인간의 속된 욕망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악녀의 자리에 계신 분도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자리에 계신 분도 있는데요. 황정은 작가는 마녀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잖아요. 황정은 작가는 그런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를 황정은 작가를 ‘한국 문단의 마녀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천천히, 그러나 강한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그녀와 마주하자, 송종원 평론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날의 만남은 ‘소설가 황정은에게 홀려 버린’ 시간들로 기억됐다.

 

『계속해보겠습니다』와 독자들은 이미 익숙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연재가 종료된 후 1년여의 개고 과정을 거쳐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완성했다. 인물들의 감정선은 더욱 깊어졌고, 그만큼 작품의 농도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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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원 : <창작과비평>에 연재할 때는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이었잖아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황정은 : 사실은 연재 당시의 제목이었던 ‘소라나나나기’에도 계속의 의미가 있었어요. 소제목을 살펴보면 ‘소라’ ‘나나’ ‘나기’ 그리고 다시 ‘나나’가 되잖아요. 저는 이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개고를 하는 과정에서 연재 당시와는 상당 부분 내용이 바뀌었는데 ‘어떤 제목이 좋을까’하고 생각하다 보니까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맞을 것 같았어요.

 

송종원 :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문장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는데요. 그 빈자리에는 어떤 말이 들어가게 될까요?


황정은 :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대신, 그만큼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괄호 안에 뭐든 넣어볼 수 있는 제목이에요. 소라 같은 경우는 삶을 계속해보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거고, 나나는 삶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나기는 사랑과 기다림을 계속해보겠다는 의미도 되겠죠. 화자에 따라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있어서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제목으로 정했어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이 살아보겠다는 의미처럼 들렸다는 송종원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고 살고 싶다는 느낌이 전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야기 초반에 소라와 나나가 주고받는 질문들, 가령 ‘사는 건 좋은 건가’ ‘좋은 건 어떤 거지’와 같은 질문들에 기대어 “작품의 마지막에 가면 ‘사는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종원 : 한 인터뷰에서 황정은 작가가 후배 작가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문장보다 세계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세계관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하셨죠. 황정은 작가가 말했던 세계관은 어떤 걸까요?


황정은 : 말하자면, 오뚝이의 밑바닥에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추가 있잖아요. 그런 중심 추 같은 것이 세계관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세계관을 갖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냥 살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 관습이 되어 버린 언행이나 삶의 태도를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 오해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그것이 적어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인간은 덧없고 하찮기에 사랑스럽다


점점 더, 송종원 평론가는 황정은 작가의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와 이전의 작품들이 맺고 있는 관계, 그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송종원 : 『계속해보겠습니다』는 폭력 3부작의 하나로 기획됐다고 언급하신 바 있어요. 1부가 『야만적인 앨리스씨』이고 2부가 이번 작품이죠. 굉장히 독특한 기획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황정은 : 그냥 폭력에 대한 나름의 질문이 있었어요. 그 질문을 어떻게든 소설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고요. 답을 내리고자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폭력이라는 주제의 성격상 하나의 이야기만 있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뉘앙스가 다른 소설을 구상했고, 폭력에 관한 세 개의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던 거죠. 그런데 ‘폭력 3부작’이라고 하니까 되게 거창한 것 같네요(웃음).

 

송종원 : 황정은 작가의 소설에는 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게 담겨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황정은 : 사회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한 게 아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일상에서 소설을 길어 올리는 편인데, 제가 만나게 되고 듣게 되고 반영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그랬던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현실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작품 속에 반영된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황정은 작가는 송종원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직접 낭독했다. 작가의 몸을 타고 세상 밖으로 흘러나온 소리는 어딘가 그녀와 닮아 보였고, 소설 속의 소라와 나나와 나기와 애자를 닮은 듯 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227쪽)

 

라는 이야기가 울릴 때는 더욱 그랬다. 덧없고 하찮은 존재가 그 자체로 사랑스러울 수 있듯, 사랑으로 황폐해진 자리에 다시 사랑이 찾아들 수 있음을 믿는 그들이니까. 소라도, 나나도, 나기도, 애자도. 그리고 황정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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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저 | 창비
소라, 나나, 나기 세사람의 목소리가 각 장을 이루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같은 시간, 한공간에 존재하는 세사람의 서로 다른 감정의 진술을 각각의 온도로 느낄 수 있다. 서로 갈등하는 소라와 나나의 속마음을 보는 것이나, 공유한 과거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소설적 장치는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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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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