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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죽어서도 바다를 꿈꾼다

돼지가 고래에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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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신은 죽어서도 바다에 돌아갑니다. 몸을 마지막으로 바다에 던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대양 한가운데에서 당신은 홀로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고래와 관련해 제가 또 하나 신비롭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감히 물어봐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꺼내봅니다. 제가 아주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고래사체.jpg

고래 사체


 바로 당신의 최후에 대해서입니다. 저는 가끔, 물속에서 이뤄질 당신의 자유로운 유영만큼이나 당신의 최후가 궁금하곤 했습니다. 가장 큰 대왕고래는 170톤이 넘는데, 과연 세상을 뜨면(죄송합니다) 어떻게 될까 하고요. 여우나 고양이도 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른 동물에게 보이길 꺼립니다. 그게 동물의 본능이지요. 그런데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동물인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할까요. 몸을 숨길까요. 숨기려고 한다면 숨길 곳이 많이 있을까요. 궁금한 것은 또 있습니다. 죽은 뒤 당신의 거대한 육신은 어떻게 될까요. 지상에서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다시 다른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과연 깊은 바다 속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사실 궁금해 한 것은 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과학자들도, 그리고 아마 뱃사람들도 당신의 마지막이 궁금했을 거예요. 하지만 바다 속을 헤집으며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굳이 따라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제가 궁금해 하는 당신의 비밀은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이었습니다. 과학지 <네이처>에 짧은 편지 한 장이 실렸지요. 미국의 잠수정 앨빈 호가 깊은 바다에서 생물군을 관찰했다며 그 결과를 알린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예사로운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생물군이 번성한 곳이 바로 고래의 사체였거든요. 최초로 보고된 심해 고래 사체였습니다.


 생물군이 번성한 고래 사체는 바다 정원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생물군은 주변에 아무런 생물이 보이지 않는 불모지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만, 고래 사체 주위에는 척 보기에도 생물들의 천국이 돼 있었습니다. 문제의 지역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앞바다에 위치한 해저 분지였습니다. 여기에 길이 약 20m 정도의 고래 사체(긴수염고래 또는 대왕고래로 추정됐습니다)가 있었는데, 흰 박테리아가 덩어리를 이뤄 사체를 가득 덮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런 박테리아는 열수구나 해저 유전 등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황박테리아였지요. 뼈를 회수했더니 고약한 냄새가 났다고 하는데, 황화합물 특유의 특징이지요.


 여기에서는 홍합이나 조개, 바다달팽이 등의 생물도 발견됐습니다. 모두 원래 그 장소에는 살지 않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추정했습니다. 원래는 황무지와 같이 척박해서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이지만, 고래 사체라는 거대한 유기물 덩어리가 떨어지자, 갑자기 바다는 영양분의 축복을 받은 셈이 됐다고요. 당신의 몸은, 불모의 바다 속에 한 덩이 생명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이 분야 연구의 선두주자는 크랙 스미스 미국 하와이대 해양학과 교수입니다. 스미스 교수는 이후 고래 사체 연구에 매진해, 모두 407건의 사체 사례를 연구하고 2003년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물론 심해에서 고래 사체를 이렇게나 많이 발견한 건 아니고, 혼획混獲 등으로 얻은 고래 사체를 일부러 연안에 빠뜨린 뒤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 관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관찰한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는데, 당신의 몸이 심해에 만드는 바다정원은 모두 세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고개를 돌리고 싶겠지만, 그래도 매우 중요하니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당신이 죽어서 가라앉으면, 제1단계에 돌입합니다. 상어나 먹장어, 줄민태 등이 찾아와 살점을 먹어치우는 단계입니다. 스미스 교수는, 빠를 때는 당신의 몸이 하루 50kg씩 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1~2년 정도 지나면 몸의 부드러운 조직은 거의 사라집니다. 이 때가 되면 당신은 뼈만 남게 되겠지요. 지상에서라면, 뼈는 오래 분해되지 않고 남아 몇십 년 때로는 몇백 년 뒤에도 발견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는 다릅니다. 워낙 척박하기 때문에, 당신의 뼈에 담긴 얼마 안 되는 영양분이라도 빨아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구나 고래 당신의 뼈는 지방질이 매우 풍부합니다. 크리스핀 리틀 영국 리드대 고생물학과 교수가 2010년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몸무게 50톤짜리 고래의 뼈에 들어 있는 지방의 양은 2~3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당신의 뼈의 단면을 보면 거무스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지방질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오세닥스’라는 무척추동물이 바로 당신의 뼈를 노리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고래 사체 연구 중에 신종생물로 발견됐습니다. 오로지 뼈의 성분만으로 살기 때문에 다른 기관은 퇴화하고, 뼈에 깊이 뿌리 박을 수 있도록 변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동물입니다. 이 동물에게는 ‘좀비벌레’라는 기분 나쁜 별명이 붙었습니다. 당신의 뼈를 탐한다니 흉한 별명을 얻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신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들을 품을 것을 압니다. 당신의 몸을 황무지에 던지는 보살 같은 마음의 소유자니까요.

 

좀비벌레-오세닥스_2.jpg

좀비벌레 오세닥스


 좀비벌레 오세닥스가 활동하는 시기는 길어야 2년 정도입니다. 이제 당신의 몸이 바다 생태계에 공헌하는 시간은 끝난 걸까요.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당신의 진정한 시대가 열리니까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사체는 뼈에 남은 지방을 분해하는 황박테리아의 차지가 됩니다. 처음 스미스 교수가 고래 사체를 길어올렸을 때 관찰했던 그 박테리아들입니다. 이들은 길게는 100년까지 견디며, 무無의 바다를 생명이 만발한 정원으로 바꿉니다.


 고작 고래 한두 마리로 드넓은 바다에 생명을 준다고 표현하는 건 너무 과하다며, 당신이 손사래(아니, 지느러미 사래라고 해야 하나요)를 치는 모습이 보이네요. 겸손한 고래 씨 당신답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바다에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도처의 바다를 누비고 있고,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는 고래도 많습니다. 국제포경위원회가 추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대왕고래, 혹등고래 등 가장 거대한 덩치를 지닌 고래 9종만 해도 매년 6만 9000마리가 죽어 가라앉습니다. 이런 고래 한 마리가 평균 100년씩 바다 정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스미스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바다에는 매 순간 적어도 69만 마리의 고래가 있어 바다정원을 일구고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것도 고래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고래가 훨씬 많았던 옛 시대에, 당신은 바다를 위해 더욱 많은 공헌을 했겠지요.


 이렇게, 당신은 죽어서도 바다에 돌아갑니다. 몸을 마지막으로 바다에 던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대양 한가운데에서 당신은 홀로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수면 위로 분기공을 내밀고 마지막 숨을 내쉽니다. 그 잠깐 동안 본 별빛이, 바로 당신이 본 생애 마지막 빛일 것입니다. 꼬리 지느러미가 힘을 잃는 순간, 큰 덩치가 균형을 잃고 천천히 바다 한가운데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별빛을 담았던 당신의 눈도 투명함을 잃고 서서히 흐려질 것입니다. 심연은 어둡습니다. 수십 년 동안 누비던 생활의 터전이자 태어난 고향이지만, 그런 암흑은 당신에게도 처음일 것입니다. 4000m 혹은 그 이상으로 깊은 심해저까지 가라앉는 시간은 영원보다 길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간 바다에서, 당신은 다시 바다가 됩니다.


사라져가는 고래를 위하여

 

 고래는 멸종할까요. 현재 고래는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임종덕 연구관에 따르면, 신생대 마이오세에 이빨고래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종이 다양했다고 합니다(161종).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고래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지요. 다양성뿐만이 아닙니다. 개체수도 급감했습니다. 고래 가운데 가장 커다란 대왕고래는, 한창 번성할 때 전 세계에 무려 20만~30만 마리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몸무게가 최고 170여 톤에 이르는 거대 포유류가 이렇게 많이 바다를 헤엄치고 살았다니 같은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바다의 거대함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네요.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떤가요. 요즘 대왕고래의 개체수는 한창 때의 수십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2000년대 초반 조사에서는 많아야 1만 2000마리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원인은 당연히 남획과 혼획입니다. 고래가 바다에서 낚는 ‘로또’ 취급을 받은 역사가 한두 해인가요. 가깝게는 ‘고래사냥’ 노래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부터, 멀리는 수천 년 전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남은 고래 사냥과 해체 작업 그림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고래를 잡은 역사는 길고 깁니다. 작고 힘없어 보이는 인간이지만, 동물에게는 전능한 신과 같아요. 저 같은 돼지는 가둬놓은 채 먹이고 키우며 가혹하게 다루고, 당신 같이 커다란 동물은 멸종에 이르도록 잡아들이지요. 생태계를 뒤바꾸는 잔혹하고도 놀라운 능력에 그만 아연해집니다.


 그래도 당신이 인류를 미워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보호할 노력을 아주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혼획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여럿 논의되고 있고, 요즘은 전통적으로 고래를 주식으로 할 수밖에 없던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포경도 자제하는 분위기예요. 물론 일본을 중심으로 아직도 과학적 포경이라는 애매한 이유로 예외를 인정하는 곳도 있지만요.


 당신은 상당한 지능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꼽는, 영장류 못지않은 지능이 있는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당신이죠. 초음파를 이용해 대화를 하고 무리를 이루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인지합니다. 고유한 신호(자신을 일컫는 이런 신호를 ‘시그니처 콜’ 또는 ‘시그니처 휘슬’이라고 합니다)로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범고래처럼 가족애가 깊은 종도 많고, 큰 돌고래처럼 사람과 교감하길 좋아하는 종도 많습니다. 이런 고래를 더는 잔혹하게 죽이거나, 사로잡아 기르지 말자는 공감대가 넓어지면 좋겠네요.


 당신은 바다를 꿈꿨습니다. 5500만 년 전, 뭍에서 앞에 펼쳐진 드넓은 물을 바라보며 수억 년 전 살던 바다로 돌아가는 꿈을 꿨고, 공연장에 갇힌 공연 돌고래 신세로 옛날 친구들과 찾던 바다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칠흑 같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으면서 바다 자체가 될 꿈을 꿨습니다. 100년을 지속하며 뭍 생명의 근원이 될 바다 정원이 되는 꿈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당신의 꿈은 지금 서서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원인은 모릅니다. 바다가 더이상 포유류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됐을지도 모르고, 기후가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가공할 사냥도 긴 원인 목록 중 한 줄을 차지하고 있겠지요.


 반 억 년 이어온 당신의 꿈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두 발굽 모아 빌어봅니다. 저의 꿈, 저의 자유를 대신 간직한 당신이 번영하기를, 진화적 성공을 이어나가기를요. 저는 누구보다 간절히 기원합니다, 5500만 년 전 헤어진 먼 친척으로서, 당신이 행복하기를요.

 

* 이 글은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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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 저 | MID 엠아이디
생물학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문학과 철학 이야기가 나오고, 생태학 주제를 다루는가 싶더니 주역으로 넘어간다. 과학 지식을 전한다고 인접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시선은 반쪽짜리 시선에 불과할 것이다. 과학 역시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 맥락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이 책은 쉽지 않으나 난해하지 않고, 에두르지 않으면서도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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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신영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저13,500원(10% + 5%)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과학책 사라져 가는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전하는 가슴 따뜻한 안부 어느 개체건 어느 종이건 생명의 다른 이름은 죽음이고, 진화의 끝과 시작은 멸종이다. 그 사라져 가는 생명들은 또한 서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죽음은 때로 한 종의 씨앗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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