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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먼 친척, 고래

돼지가 고래에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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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진화 과정이 워낙 극적인데다,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화석이 여럿 발굴돼 있어 진화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당연히 이 당시에 살던 원시 고래의 모습은 지금의 당신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평범한 네발 동물이었어요. 주둥이가 길고 발굽은 두 개 또는 네 개로 갈라져 있으며 개처럼 부지런히 땅을 헤집으며 먹을거리를 찾아 헤맸겠지요. 왜 물에 가게 됐을까요. 아마 먹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빠른 시간에 육지를 점령하며 폭발적으로 불어난 포유류들은, 이미 서로 간에 먹이 경쟁을 벌이느라 꽤 피로함을 느꼈을 거예요. 당신의 조상은 경쟁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을 찾다 바다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파키케투스-머리뼈.jpg


 오늘날 원시 고래의 뼈가 많이 발굴되는 것으로 유명한 이집트 북부는, 원시 고래가 살던 과거에는 바다였습니다. ‘테티스해’라는 이름의 이 바다는 육지에 둘러싸인 내륙해였는데, 그리 깊지 않은데다 따뜻했습니다. ‘에오세’라고 불리는 당시는 안 그래도 기후가 꽤나 온화했는데, 테티스해는 적도 근방으로 더할 나위없이 따듯했지요. 당연히 바다에는 생물이 풍부했습니다. 만약 당신의 조상이 물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 수많은 포유류를 따돌리고 무궁무진한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지 않겠어요? 5000만 년 전, 최초의 고래는 그렇게 바다를 꿈꿨습니다.


 바다를 꿈꾼 최초의 원시 고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학자들은 신생대 초기의 포유류 화석 중에서 고래와 가장 가까워 보이는 동물을 찾았습니다. ‘메소니키드’라는 발굽 달린 육식 포유류였지요. 이 동물은 그러나 정확히 고래의 조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어요. 아마 사촌 같은 친척이었겠지요. 고래를 연구한 국내 대표적인 고생물학자인 임종덕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에 따르면, 지금은 고래의 조상을 아직 잘 모른다는 뜻에서 그냥 ‘육상 포유류Land mammal’라고 부르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을 당신의 실망한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최초의 조상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기대했을 텐데, 조상은 커녕 친척의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다니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제가 다 안타깝네요. 하지만 지금의 제가 먼 친척이라는 것, 저와 당신 사이에 존재했을 그 어느 공통 조상에서 최초의 고래가 나왔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해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겠어요.


 다행히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육상 포유류와 고래 사이를 이어 줄 ‘진짜 고래 조상’의 화석이 하나 둘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 된 종은 파키스탄에서 화석이 발굴된 5500만 년 전 원시 고래 ‘파키케투스’입니다. 당시의 얕고 따뜻한 물가로, 파키케투스는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 발걸음이, 육상 동물이었던 포유류를 점차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조심스레 첫 발을 바다에 디딘 당신의 조상은, 점차 물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뭍에 주로 살며 물이 찰랑이던 얕은 바다에 가끔 들어가 먹이나 잡았지만, 곧 물에 들어가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좀 더 물에 적합한 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점차 유선형으로 바뀌고 입이 길어졌습니다. 다리, 특히 뒷다리는 짧아졌습니다. 발가락에 물갈퀴가 생기다가, 점차 지느러미처럼 변했습니다. 꼬리는 헤엄에 도움이 되도록 강력해졌습니다. 털은 솜털로 바뀌다가 사라졌고, 대신 몸의 지방층이 두꺼워졌습니다.


 고래는 진화 과정이 워낙 극적인데다,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화석이 여럿 발굴돼 있어 진화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위에 설명한 중간 과정을 고스란히 설명할 화석이 모두 있을 정도지요. 임종덕 연구관의 설명을 좀 더 인용해 볼까요.


 약 5000만 년 전에 살던 ‘암불로케투스’는 악어처럼 얕은 물에 살면서 먹이를 낚아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악어처럼 다리가 많이 짧아졌지만, 얕은 물에서 살기에는 이게 더 유리했겠지요. 4800만 년 전에 살던 ‘쿠치케투스’는 몸통이 이미 유선형이고 주둥이가 길어졌습니다. 4700만 년 전 ‘로드호케투스’라는 종을 거쳐 4500만 년 전 ‘프로토케투스’에 이르면, 이미 네 발이 지느러미처럼 변하는 등 오늘날의 고래나 돌고래와 거의 비슷한 체형으로 바뀌게 됩니다.

 

 약 3400만 년 전부터 4000만 년 전 사이에는 ‘도루돈’이라는 5m짜리 원시 고래가 살았는데, 뒷다리는 거의 흔적만 남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는 최고 25m에 이르는 대형 원시 고래 ‘바실로사우루스’도 살았습니다. 거대한 덩치에 육식성으로 다른 고래류인 도루돈을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도루돈과 마찬가지로 뒷다리는 폼으로만 달려 있어, 오늘날의 고래(수염고래와 이빨고래)가 되기 직전 마지막 단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의 고래는, 아직 오늘날의 고래에게 볼 수 있는 특징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임 연구관에 따르면, 고래의 대표적인 특징인 초음파를 낼 수 없었습니다. 초음파를 내는 ‘멜론’이라는 기관이 화석에 없었거든요. 머리 크기도 작은 것으로 보아, 여러 개체가 어울리는 사회 생활도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고래에게서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한 고래가 나타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불과 천수백만 년만에, 당신은 육상동물에서 수중동물로 완벽하게 탈바꿈을 한 것입니다.

 

고래-진화과정.jpg


 일단 형태를 갖추자, 당신은 급속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그 결과 이빨고래와 수염고래라는 크게 두 가지 고래로 나뉘었습니다. 수염고래는 이빨 대신 ‘벌린baleen’이라는 일종의 수염을 지닌 고래입니다. 입을 크게 벌려 크릴 등 작은 먹이를 바닷물과 함께 입 안에 가득 머금은 뒤, 수염을 마치 체처럼써서 물을 걸러 내보내면 먹이만 먹을 수 있지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작은 바다 생물을 즐기는 고래에게 적합한 섭식 도구입니다. 이빨고래는 뾰족한 이빨이 있는 고래로, 사냥을 통해 어류나 다른 포유류, 심지어 다른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고래입니다. 난폭한 사냥꾼 범고래의 경우, ‘범(호랑이 또는 표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포악한 집단 사냥을 하고, 밍크고래처럼 자신보다 몇 배 더 큰 고래도 태연히 잡아먹는 위협적인 포식자입니다. 이빨고래는 모두 74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돌고래’라고 부르는 소형 고래 역시 이빨고래에 속하지요. 참, 제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드릴까요? 돌고래라는 이름에도 제가 보인다는 사실이에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돌고래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돌-고래03
「명사」『동물』
이가 있는 돌고랫과의 포유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강돈ㆍ물돼지ㆍ진해돈ㆍ해돈ㆍ해저02(海?).
【돌고래 <두시-초> ← 고래】

 

 비슷한 말을 잘 보세요. ‘돈’은 한자로 돼지를 의미해요. 돼지 돈 자죠. ‘강돈강돼지’, ‘물돼지’, ‘해돈바다돼지’. 온통 돼지라는 말이 붙어 있지요. 심지어 ‘ 고래’의 ‘ ’도 옛말로 돼지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한자문화권은 물론 한국에서도 돌고래는 돼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고생물학이나 진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던 옛날 조상들도, 알게 모르게 저와 당신 사이의 연관성을 간파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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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 저 | MID 엠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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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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