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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달이 같은 사랑은 싫다!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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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본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어땠을까?

누구나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영화나 책을 다시 접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감상을 적어놓은 노트라도 있어 그것마저 확인하게 될 때면 마치 10년 전의 일기를 읽듯 ‘그때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새삼 놀라게 되지 않던가. 영화나 책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기자는 요즘 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 공연을 취재한 연차가 길어지다 보니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연은 책이나 영화와 달리 매번 다른 연출가와 배우들이 다른 무대를 만들지 않던가.

 

심지어 초연 때 봤던 작품이 조금씩 진화 또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는데, 새로운 연출과 대본, 배우 역시 시대의 문화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때때로 객석에 앉아 마음에 이는 예전과는 다른 감상에 놀라는 순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보러 가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 만은 않았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던 공연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결혼하는 친구에게 선물까지 했던 공연이라서 예전처럼 감동받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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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에 처음 봤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2001년 초연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어린이들을 위한 수준 높은 연극을 지향하며 탄탄한 스토리와 아기자기한 무대, 뮤지컬에 버금가는 춤과 노래, 기발하고 코믹한 장면 연출로 젊은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공연’으로 손꼽히며 아이들만 들여보내던 기존 어린이 공연과 달리 객석 곳곳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눈에 띄게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객석은 아이들 세상이었다. 아이들 세상에 어른들이 끼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 틈 속에서 20대였던 기자는 정신없이 까르르 웃고 꺼이꺼이 울면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그 ‘사랑’에 대해 집에 돌아와 일기까지 썼다.

 

30대 초반에도 똑같은 ‘짓’을 감행하며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했던 기자는 지난 주말, 아주 오랜만에 또 다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보게 됐다. 잘 만들어진 공연답게 올해로 13년째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백사난>은 이제 어린이는 물론 어른과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꼽히며 135개 지역에서 3천여 회 공연을 통해 85만여 명의 관객과 만나왔다. 그러는 사이 장르를 연극에서 뮤지컬로 바꾸고, 조금 더 역동적으로 무대를 매만졌다. 여전히 아이들은 많았다. 화사한 안개꽃으로 꾸며진 무대며 아기자기한 소품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공연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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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난장이의 사랑 이야기

 

이야기는 동화 백설공주』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일곱 난장이(‘난쟁이’가 표준어지만 공연 제목대로 표기하겠다)가 살고 있는 안개 숲에 백설공주가 찾아온다. 아름답고 착하지만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한 백설공주. 그런 백설공주를 말 못하는 막내 난장이 ‘반달이’는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 사랑은 새엄마 왕비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백설공주를 매번 목숨을 던져 구해내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정작 말 못하는 사랑은 가슴 속에서만 한없이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이 묻은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 반달이는 다시 그 주술을 풀기 위해 이웃나라 왕자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 마침내 왕자의 키스로 백설공주는 다시 눈을 뜬다. 그제야 반달이가 품어온 마음을 자신의 ‘춤’으로 표현하려던 찰라, 왕자는 백설공주에게 ‘말’로써 사랑을 고백하고, 반달이의 눈물을 머금은 춤은 두 사람을 위한 축복으로 바뀐다. 그리고 왕자와 백설공주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갈 무렵, 반달이는 서서히 숨을 거둔다.

 

오랜만에 다시 본 <백사난>은 어땠을까? 기자는 일부러 12년 전에 함께 봤던 친구와 동행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는 첫째 아이가 보면 무척 재밌어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째 자신은 그 감동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훨씬 예뻤고 아름다웠고 뭉클했던 것 같다고. <백사난>을 볼 때마다 일기를 썼던 기자는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는데, 늘 반달이의 순수한 사랑이 부러웠다. 원망과 미움이 배제된 순도 높은 반달이의 마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온 마음으로 사랑만 하려고 죽도록 애를 썼을 반달이의 사랑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내 사랑이 부끄럽고 서러웠다. 기자는 이번 공연을 보고도 남몰래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제 일기장에 쓸 말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가능하기나 할까? 내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가슴 아픈 사랑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그 순도가 덜해도, 그 사랑이 조금 덜 뜨겁더라도 서로 주고받는 시리지 않는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백설공주와 이웃나라 왕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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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공연, 환상이 있는 무대

 

하긴 백설공주와 이웃나라 왕자가 결혼해서 행복하게만 살았다는 얘기도 반달이의 헌신적인 사랑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 오랜 시간 이렇게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일까? 무대 위 마법 같은 사랑이 모두의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동심에서 만나는 사랑과 영화 같은 사랑, 그리고 현실의 사랑은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그 괴리를 깨우치며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일까?

 

어린이 심리치료사인 친구는 아이들은 <백사난>을 그냥 재밌고 예쁘게 볼 거라고 했다. 하긴,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다양한 소품이며 의상은 연신 어린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백설공주가 풍랑에 휩쓸리거나 반달이가 헤엄치는 장면 등은 다시 봐도 여전히 기발할 정도로 웃기다. 어쩌면 이 작품은 어린이와 어른 관객에게 같고도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뮤지컬로 탈바꿈한 <백사난>은 음악이 많아진 만큼 훨씬 경쾌하고, 반달이의 심리를 표현하는 노래나 해설이 더해져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절하다. 연극적인 요소나 여운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예전에는 심각하게 울었던 장면에서 노래 때문에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 <백사난>의 백미는 마지막 안개꽃 30만 송이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장면을 빼놓을 수 없는데, 영상미가 더해진 깔끔한 지금 무대보다 조금은 투박했던 예전 유시어터 무대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들을 배웅하던 동화 속 배우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어째 전체적으로 아쉬운 건 어쩌면 반달이의 순수한 사랑을 순수하게 부러워하기만 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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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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