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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ax와 Starbucks, 뜻밖에 만들어지는 뜻

말은 변화하는 특성에 의해 원래 의미에서 전혀 뜻밖의 의미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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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장소의 이동을 심하게 겪은 언어다. 그래서 어원을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원을 알면 의미에 감춰진 다양한 맥락들을 파악해서 미세한 느낌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은 변화하는 특성에 의해 원래 의미에서 전혀 뜻밖의 의미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처럼 변천의 역사가 다채로운 경우라면 의미의 굴곡을 더 심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psycho의 어원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이처럼 원래 의미에서 한참 뒤바뀌어 어원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hoax다. 이 단어는 한마디로 ‘장난스럽게 남을 속인다’라는 뜻이다. 속이긴 속이되 장난스럽게 속이는 것을 hoax라고 보면 되겠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몰래카메라’가 대표적인 hoax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hoax는 고급스러운 장난에 속한다. 인도 출신 작가 살만 루슈디는 자신의 소설을 사실은 부인이 썼노라고 태연히 농담을 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만우절에 외계인이 침공했다는 황당한 hoax 뉴스를 방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난도 세상이 즐거울 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우울한 시대라면 사소한 장난도 엄청난 스캔들을 야기해서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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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ax는 처음부터 이런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았다. Hoax는 Hocus Pocu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신기한 노릇이지만 이 말은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가톨릭에서 행하는 영성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영성체는 바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에 행했던 최후의 만찬 의식을 상징한다. 예수는 포도주와 빵을 가리키며 각각 자신의 피와 살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별스럽지 않게 느껴지겠지만, 기독교 코드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요상한 말이다. 잘못 들으면 식인풍습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이 발생했을 때,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믿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오해이지만, 말이란 것은 번역되는 순간 원래 맥락을 상실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도 오해의 소지가 기독교적인 상징에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이단을 화형에 처한 것은 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성서에 보면 이렇게 하나의 물질이 다른 물질도 쉽게 바뀌는 증언들이 많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다거나, 땀이 피로 변해서 흘러내린다는 진술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하튼 기독교의 상상력에서 기적이라는 것은 물질의 변화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이교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음에도 연금술 같은 것이 계속 지속된 이유는 이런 까닭일 터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포도주와 빵을 예수의 몸이라고 여기는 믿음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훨씬 똑똑해졌다. 그래서 포도주와 빵이 언어적인 차원에서 예수의 몸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제로 마법에 대한 믿음은 점차 사라졌지만, 포도주와 빵이 예수의 피와 살을 의미한다는 기독교 코드는 여전히 문화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다. Hoax도 이런 흔적 중 하나라고 하겠다. Hocus Pocus는 “Hoc est corpus meum”이라는 라틴어의 준말이다. 한국어로 옮기면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뜻이다. 


종교개혁은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인들은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져서 피바람을 일으키며 대립했다. 페테르 브뤼헐이 그린 「죽음의 승리」는 명백하게 이런 현실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누가 죽음의 승리를 보았는가?”라고 되물었던, 예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골짜기로 침몰해버렸다. Hocus Pocus는 이 와중에 진지한 원래 의미를 상실하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지칭하는 말로 바뀐다. 제임스 1세의 궁정에 살던 난쟁이 광대는 자신을 His Majesty's Most Excellent Hocus Pocus라고 지칭했다. 장난질을 가장 잘하는 국왕폐하의 광대라는 의미다. 보통 영어로 왕을 부를 때 붙이는 Majesty는 ‘honour’라는 뜻이다. 


Honour는 영광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데, 요즘으로 치면 ‘유명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유명하다’는 것은 모두가 우러러 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존재가 바로 Majesty다. Majesty는 grandeur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loftiness 또는 height를 뜻했다. 한 마디로 ‘지체 높은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Majesty 대신에 Highness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High는 top이라고 보면 된다. Hijacking이 하늘에서 일어나는 항공기 납치를 뜻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하튼 Hocus Pocus가 예수의 몸을 상징하다가 갑자기 난쟁이 광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제임스 1세가 그렇게 부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인해 이런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Hoax는 한술 더 떠서 hokum이 되었다가, bunkum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흘러 흘러서 bunkum은 debunking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또한 의미의 전도라고 할 수 있다. Hoax라는 ‘착한 속임수’에서 ‘틀린 것을 폭로하다’는 의미를 가진 debunk가 나왔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hoax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장난인 셈이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 hoax는 공익에 보탬을 주는 놀이 쯤 되겠다. 


영어는 장소의 이동을 심하게 겪은 언어다. 그래서 어원을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원을 알면 의미에 감춰진 다양한 맥락들을 파악해서 미세한 느낌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렇게 숨어 있는 맥락들을 적절하게 알고 있다는 것일 터이다. 처음부터 타고 난다기보다, 해당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감각을 만들어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어 단어의 문화사를 아는 것도 이런 감각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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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Starbucks를 보자. 그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말이다. Starbucks라는 명칭에서 ‘별처럼 많은 달러를 벌겠다’는 뜻을 유추해낼 수 있다면 크게 나쁘진 않다. 그러나 이 명칭에는 표면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내막이 숨어 있다. 뜻밖에도 이 단어는 바이킹의 말이다. 바이킹 말로 Star는 Sedge인데, 습지에 자라는 풀 종류를 가리킨다. Buck은 beck으로 개천을 의미했다. 한국어로 옮기면 Sedge라는 풀이 자라는 개천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요크셔 지방에 있는 Harrogate라는 곳에 가면 이 지명이 있다. 이쯤이면 짐작이 간다. Harrogate에 살던 어떤 가족이 있었을 테고, 당시 풍습에 따라 가족의 이름으로 지명을 채택했을 것이다. 이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Starbucks가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Starbucks 집안은 퀘이커교도였다.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운동 중 하나가 퀘이커교다. 한국에도 함석헌이라는 유명한 퀘이커교의 선구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커피숍 Starbucks가 퀘이커교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영국에 살다가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Starbucks 집안도 이 커피숍과 아무 관련이 없다. 시애틀에서 이 커피숍을 창업한 사람은 제리 볼드윈이다. 볼드윈은 Starbucks 집안사람도 아니고 퀘이커교도도 아니다. 그렇다면 Starbucks는 왜 커피숍 이름이 된 것일까. 처음에 볼드윈은 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배 이름을 커피숍 이름으로 삼자고 동업자들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Starbucks는 Pequod가 될 뻔했다. 


그러나 Pequod라는 이름은 철자도 어렵고, 자칫 잘못 발음하면 ‘오줌’을 뜻하는 pee처럼 들릴 수 있었다. 다른 동업자가 볼드윈에게 제안한 이름은 로키 산맥에 있는 탄광촌의 이름을 딴 Starbo였다. 『모비딕』을 너무 사랑했던 볼드윈은 절충을 시도했다. Starbo를 연상하는 이름이 소설에 등장하는데, 바로 일등항해사 Starbuck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모비딕』에 등장한 Starbuck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비밀은 멜빌의 인생편력에 숨어 있다. 이 소설을 쓴 멜빌은 고래잡이 선원이었는데, 실제로 그가 소설의 배경이 된 Nantucket에서 만난 뛰어난 고래잡이 선원의 이름이 Starbuck이었다. Nantucket은 영국에서 건너온 Starbucks 집안이 처음 정착한 곳이다. 비밀이 이렇게 풀린다. 요크셔에 당도한 바이킹에서 멜빌의 소설을 거쳐 시애틀의 커피숍까지, Starbucks라는 한 단어는 긴 여행을 했다. 단어의 의미는 뜻밖에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무에서 유가 태어나는 것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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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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