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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영웅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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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말하듯, 소현세자는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그의 종막은 비극적이고 불우하다. 하지만 혼탁한 세상, 현명하고 지혜로운 영웅이었던 소현세자를 그릴 <삼총사>는 현대에 영웅 신화의 필요성을 증명할 것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영웅담은 언제나 인기를 끄는 소재다. 멀리는 게르만족의 지크프리트와 켈트족의 아서왕, 로마의 로물루스에서부터 가깝게는 고구려의 주몽이나 조선조 당시의 <홍길동전>, <임경업전>까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영웅담은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린다. 수직이동이 불가능한 계급사회, 민초들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고 부조리한 기존 세력에 항거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대중들의 마음을 끌기 마련이다.

여기 또 하나의 영웅전이 있다. tvN <삼총사>. 실존 인물인 소현세자와 가상의 수하들을 주인공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변주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흥미롭기 그지없다.


삼총사2.jpg

출처_ tvN

  

사실 <삼총사>가 영웅 설화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작품은 아니다. 한 영웅의 일대기를 노래하는 영웅 설화에 비해 <삼총사>는 소현세자(이진욱)와 박달향(정용화) 두 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영웅 설화의 특징―비범한 탄생, 남다른 능력, 고비와 조력자의 등장, 성장과 위기 극복, 업적 달성 등….―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액션 로맨스 활극이라는 소개말답게 소현세자와 수하들을 주축으로 한 활극과 소현세자빈 강씨(서현진)와 조미령(유인영), 소현세자를 둘러싼 로맨스를 묘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때때로 영웅담을 떠올리게 한다. 액션 때문도, 주인공이 왕족이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총사>는 기존 세력에 항거하며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성장기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 출신의 무사 박달향은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하지만 미래를 약조한 소녀는 이미 세자빈이 되어 있고, 상경 첫날부터 정신없이 말썽에 휘말린다. 게다가 그 소동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놀리던 사람이 알고 보니 세자와 그의 수하인 익위사들이란다. 연정을 품었던 상대가 이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세자빈이 되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주군인 세자는 주군으로 모실만한 그릇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연스레 달향과 세자 사이엔 갈등이 발생하고, 달향은 연모했던 세자빈을 불행하게 만든 것 같은 세자에게 반감을 느낀다. 소현세자 이왕은 격변 중인 난세의 세자로서 반정으로 왕이 된 아버지를 따라 입궁했다. 얼핏 자유롭고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가지만 사실 누구보다 치밀하고 신중하다. 어린 시절 세자비가 될 뻔했던 미령에 대한 상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녀가 살아 돌아왔다. 세자에게 복수하겠다고, 자신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사람들조차 해치려 든다. 소현세자는 이제 김자점(박영규)의 음모에 맞서는 한편 미령과 얽힌 과거의 악연을 푸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만 한다.


초반부 소현세자빈을 두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던 박달향과 소현세자 이왕. 이들은 극을 이끌어나가는 두 축으로 양쪽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템포가 빠르지 않은 탓에 두 주인공이 대립하는 과정은 길고 지루해보이고 내용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7회 이후부터 이야기는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 미령의 칼을 어깨로 받아내는 세자를 보며 달향은 그제야 온전히 세자를 이해하고 받든다. ‘그 삐딱했던 마음이 비로소 그날 풀어진 것이다. 피에 젖은 그를 보고 나서야. 첫사랑이 그토록 잔인한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 여자, 미령도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실패한 첫사랑에 얽매여있던 달향이 잔인한 세자의 첫사랑과 그것을 홀로 감내하는 그를 보며 그가 앉은 자리의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달향 최초의 성장은 세자를 자신의 주군으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세자의 사람이 되는 데서 시작하는 셈이다.


소현세자의 경우 위기를 극복하고 고비를 넘기며 성장해 간다. 인조(김명수)는 즉위 후 반정공신들에게 시달리고 이괄의 난 등을 겪은 탓에 점점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세자는 아버지를 달래고 민생을 보살피는 한편, 조정을 흔들고 권력을 쥐려는 김자점과도 싸워야 한다. 세자는 용골대(김성민)을 빼돌려 신변을 보호하고, 달향에게 쓴 세자빈의 연서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거하고, 원한을 품고 돌아온 미령에게 칼을 맞으면서도 그녀를 감싸고 도망시킨다. 용골대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도망시킨 세자에게 한 번 놀라고, 그의 담대한 배포와 넓은 식견에 두 번 놀란다. 소현세자는 어명을 거역하는 위험을 자처하면서도 용골대를 도망시킨다. 그가 김자점과 손을 잡으면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될 터이지만,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이후의 고난을 헤쳐 나가는 데에 가장 큰 조력자가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 설화에서 영웅이 조력자를 만들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것처럼.


삼총사3.jpg

출처_ tvN

소현세자와 달향이 각자의 미진함을 깨닫고 성장한 후, 이들은 단단히 하나로 뭉친다. 명분을 앞세워 백성을 핍박하고 제 욕심만 챙기는 자들을 응징하고, 서로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자. 7회, 최명길(전노민)과 박달향의 대화는 그들이 뭉친 후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과연 대의가 수단을 덮을 수 있습니까?”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후대의 역사가 심판할 것이네. 허나, 백성의 피를 하찮게 여기는 자를 옳다고 할 수 있는가? 명분을 위해 백성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용서 못 하네. 그게 나의 답일세.” 

  

<삼총사>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12부작, 3시즌의 긴 여정은 아직 1/3도 지나지 않았다. 드라마는 1시즌에서 소현세자와 박달향을 중심으로 모여든 조력자들과 영웅이 태어날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앞으로 찾아올 2?3시즌, <삼총사>는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으며 성장한 소현세자와 박달향, 그리고 익위사 허승포(양동근)와 안민서(정해인)를 비롯한 세자의 사람들이 위기를 겪고, 부조리한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릴 것이다. 


고비를 기회로 만들어 성장하는 영웅담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김자점이나 용골대, 후금의 습격 등은 진정한 위기 이전에 위치한 작은 고비일 뿐이다. 주인공들을 성장시키고, 삼총사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외부의 갈등. 이후 소현세자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 인조다. 아버지 인조가 대표하는 구세대와 소현세자가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립은 이미 역사에 존재하는 일이거니와, 영웅 설화의 부친 살해, 특히 구세대 전복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삼총사>의 신구대립은 일종의 저항이다.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위해, 신진 세력은 추앙받던 구세대를 전복시키고 부조리에 항거한다. <삼총사> 역시 그렇게 나아갈 터다. 소현세자와 수하들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그리며.


역사가 말하듯, 소현세자는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그의 종막은 비극적이고 불우하다. 하지만 혼탁한 세상, 현명하고 지혜로운 영웅이었던 소현세자를 그릴 <삼총사>는 현대에 영웅 신화의 필요성을 증명할 것이다. 영웅이 등장하고 활약했던, 혹은 그것을 찬양할 수 있었던 사회. 그런 사회가 영웅 신화를 만들고 발전시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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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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