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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사전

최근 몇 년간 좀비로 인한 종말의 과정이나 그 이후를 그린 만화, 소설, 영화 등은 대중문화의 주류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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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인기 캐릭터 중에서 좀비는 20세기 들어 정착된 캐릭터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기원은 고대나 그 이전까지 올라가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근대 과학의 발명품이다.

최근 몇 년간 ‘좀비 아포칼립스’ 즉 좀비로 인한 종말의 과정이나 그 이후를 그린 만화, 소설, 영화 등은 대중문화의 주류에 안착했다. 공포영화 중에서도 매니악한 영역에 머물렀던 ‘좀비’가 21세기 들어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한 것이다. 『웜 바디스』는 좀비와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억과 의식이 없고 썩은 시체인 좀비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웜 바디스』의 좀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괴물’이 아니다. 『웜 바디스』의 원작 소설을 쓴 아이작 마리온은 ‘만약 좀비에게 의식이 있다면 어떨까’란 질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육신이 덜 썩었고 의식이 있다면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나 늑대인간과 다를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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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종족’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 될 여지가 있다. 2008년에 나온 영국 영화 <콜린>은 인간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좀비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보여주었다. 『웜 바디스』도, <콜린>도 일반적인 대중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좀비를 묘사하려 했다.


공포영화의 인기 캐릭터 중에서 좀비는 20세기 들어 정착된 캐릭터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기원은 고대나 그 이전까지 올라가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근대 과학의 발명품이다. 골렘을 비롯하여 영혼이 없는 인형 혹은 괴물도 오래된 이야기다. 부두교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같이 좀비에게 물린 희생자가 다시 좀비가 되는 종류로 정착된 것은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부터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덤 속의 시체들이 깨어나고, 좀비에게 물리면 다시 좀비가 되는 악순환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끔찍한 공포였다. 그것은 50년대 유행했던 ‘외계에서의 침공’에 대한 공포가 내부의 공포로 바뀐 것이기도 했다. 50년대의 공포는 핵전쟁이었고, 평온한 사회를 외부에서 공격하거나 잠입하는 외계인과 괴물 혹은 ‘공산주의자’를 두려워했다. 좀비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공동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내 곁의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


Zombie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죽은 자를 되살아나게 하는 영력(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 그 힘으로 되살아난 무의지의 인간 2. (무의지적, 기계적인 느낌의) 무기력한 사람, 멍청이, 라고 되어 있다. 좀비의 시원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부두교의 주술이다. 정말로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고, 가사상태에 빠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약을 먹인 후 무덤에서 파내 노예로 쓰는 주술이다. 저주를 걸어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좀비는 카리브해 지역의 원시종교인 부두교의 무당들이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웨이드 데이비스의 논픽션 『나는 좀비를 보았다』는 할리우드의 인기 캐릭터 좀비의 기원을 찾아내기 위하여 아이티로 떠난다. 수상한 약물과 주술도 발견하기는 한다. 진짜 좀비를 만나지는 못하지만 좀비의 존재는 가능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좀비를 발견한다. 공동체의 벌을 받은 인간을 살아있는 시체 취급하는 것. 일종의 사회적 좀비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인터넷 조리돌림이나 허위 사실을 SNS로 퍼트리는 것도 비슷한 것 같고.


미국 남부에서 괴담처럼 떠돌던 ‘좀비’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좀비>(1932),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등의 공포영화에서 무당의 저주 때문에 살아있는 시체가 된 좀비로 구현된다. 인간성과 의식이 박탈된 시체 같은 존재를 좀비라 칭했고, 시체에 부적을 붙여 움직이게 만드는 중국의 강시와는 다른 형태였다. <좀비의 왕>(1941) 『좀비의 역병』(1966) 등에서 초자연적인 괴물로 발전해가던 좀비는 조지 A 로메로의 ‘좀비 3부작’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죽음의 날』(1985)에 이르러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상으로 구체화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난 시체들, 어기적거리며 탐욕스럽게 인육을 찾아 헤매는 좀비, 좀비에게 물리면 다시 좀비가 되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가 좀비가 되었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며 다가오는 종말의 공포, 매스미디어에 세뇌되어 주체적인 사고력을 잃은 현대인에 대한 은유, 좀비보다도 야비하고 잔인한 인간에 대한 절망 등등 ‘좀비’의 모든 것이 ‘좀비 3부작’에 담겨 있다. 좀비가 무적인 이유는, 막강한 파워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숫자를 늘려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좀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좀비의 공포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는 점이다. 살점을 뜯어먹는 잔인한 살육자들. 그것은 십자가로 퇴치할 수도 없고, 제물로 대신할 수도 없다. 최후의 인간까지 잡아먹히지 않는 한 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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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고어장면으로 인기를 끈 좀비영화가 서구에서 유독 인기를 얻은 이유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 종말의 날에 시체들이 깨어난다는 계시록의 구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좀비의 출현은 바로 종말의 예고다. 인간의 패배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까지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또한 조지 로메로는 일찍이 좀비영화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좀비 3부작의 2편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에서 좀비는 쇼핑센터로 몰려든다. 살아있을 때의 습관을 반복하는 것인데, 대량 소비의 물결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은유다. 폭주족들이 무참하게 좀비를 박살내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현대인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주관도 없이 선전선동과 광고에 휘둘리고 끝내는 국가정책과 폭력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좀비는 종말의 날에 깨어나는 시체들만이 아니라 지금 각종 이데올로기와 매스미디어에 현혹되어 허청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무 잔인하고 끔찍했기에 비주류 공포영화로만 득세했던 좀비물이 21세기 들어 대중적인 공포로 부상하게 된 것은 대니 보일의 <28일 후>(2002) 덕분이다. 초자연적인 설정을 배제하고 ‘분노 바이러스’ 때문에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공포를 그린 <28일 후>는 야수처럼 뛰어다니는 ‘좀비’들과 대결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영화였다.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2004)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좀비물은 21세기를 장악했다. 만화와 소설 등에서 뱀파이어 이상으로 다양하게 변주된 좀비와 좀비 이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소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로맨틱한 반영웅으로 변신하는 동안 좀비는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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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의 공포를 정면으로 그린 만화 <워킹 데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좀비 아포칼립스’의 대표작이다. <워킹 데드>는 좀비가 나타나는 순간의 공포를 넘어 현대문명의 종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매일같이 좀비와 싸우면서 어떻게 그들이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그들의 기괴한 일상과 절망을 우울하고 폭력적으로 그려낸다. 조지 A. 로메로는 여전히 ‘좀비’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것을 주장한다. 3부작 이후 20년 만에 만든 <랜드 오브 데드>(2005) 등을 통해 로메로는 좀비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는 새로운 종의 가능성임을 암시한다. 리차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서 새롭게 지구를 장악한 변종 인류들의 ‘전설’이 마지막 살아남은 인간이었던 것처럼.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레시>는 치료약을 맞고 이성을 찾은 전 좀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좀비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은 돌아온 그들을 믿지 못하고, 사람들의 차별에 분노한 전 좀비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좀비물이 인간의 분노와 차별, 폭력성, 종말 등 다양한 주제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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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은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일상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국내 작품도 영화 <이웃집 좀비>와 <앰뷸런스>,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 만화 『좀비의 시간』과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소설 『좀비들』『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등등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인류의 종말을 불러오는 끔찍한 존재에서 미래의 변종 인류 심지어 사랑스러운 연인으로까지 확장된 ‘좀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과 지독한 악몽 모두를 상징하고 또한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의 좀비,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모습 그 대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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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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