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셰프의 소울 푸드는? 『맛있는 철학』권혁주, 박준우
철학과 요리가 만나면 어떤 만화가 탄생할까? 만화가 권혁주가 그린 『맛있는 철학』은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퍽 흥미로울 책이다. 책의 자문을 맡은 푸드칼럼니스트 박준우가 운영하는 타르트 카페 ‘오쁘띠베르’에서 권혁주 작가와 박준우 셰프를 만났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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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식도락 특집’을 준비하며, 저자가 즐겨가는 맛집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를 기획했다. 요리를 즐기면서 글맛도 좋은 작가를 찾는 와중에 『맛있는 철학』의 저자, 권혁주 작가가 떠올랐다. 2005년 웹툰 「암연즈」로 데뷔, 2009년 『그린스마일』를 출간하고 올 7월 『맛있는 철학』 단행본을 펴낸 권혁주 작가는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연락처를 받아 권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이 자주 가시는 맛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요.”
“아, 딱히 아는 맛집이 없는데(웃음). 생각 좀 해볼게요.”

 

만화 속 따뜻한 그림체가 작가의 음성에서도 묻어 있었다. 며칠 후, 권혁주 작가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맛있는 철학』의 요리 자문을 한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의 준우승자인 박준우 셰프가 운영하는 타르트 카페 ‘오쁘띠베르’에서 만나자는 것. 서촌의 고즈넉한 길을 만끽하고자 주저 없이 오쁘띠베르로 향했다. 달달한 레몬 타르트를 기대하며.

 

권혁주작가

『맛있는 철학』권혁주 작가

 

박준우 셰프를 모델로 기획한 만화 『맛있는 철학』


『맛있는 철학』의 주인공 ‘권준우’는 권혁주 작가의 성과 박준우 셰프의 이름을 합친 이름이다. 표지에 그려진 권준우의 얼굴을 보면 박준우 셰프와 퍽 닮아 있는데, 주인공의 직업은 셰프가 아닌 철학강사다. 그렇다면 외모만 따오고 본질은 권혁주 만화가인가? 약 200쪽의 만화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철학만화를 그려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학습만화를 말하는가 싶었는데 요리와 철학을 접목시키는 만화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식탁 위의 철학』이란 책을 보여주면서요. 제가 처음 생각한 콘셉트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빠와 딸 이야기였어요 아빠가 죽기 전에 딸에게 열 가지 요리를 해주면서 각각의 이야기를 담는 설정이었죠. 그런데 연재처가 생명보험 사보였어요. 주인공을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해서 설정을 바꿨죠. 하하. 캐릭터 자체는 박준우 셰프를 많이 가져왔어요. 만화를 그리기 전에 개별 인터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성장과정에 대해서도 들었죠.”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열혈시청자였던 권혁주 작가. 평소 박준우 셰프의 팬이었는데 만화 작업을 하면서 더 깊은 매력을 느꼈다. “참고를 하려고는 했지만, 박준우 셰프 자체를 캐릭터화할 계획은 없었어요. 만나면서 더 좋아진 경우죠.”

 

박준우 셰프 또한 권혁주 작가의 만화를 알고 있었다. 『그린스마일』를 재밌게 읽었던 터라, 요리를 자문해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맛있는 철학』은 12개의 철학 개념을 12개의 음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철학과 요리의 결합, 자못 낯설면서도 호기심이 이는 설정이다. 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과정은 권혁주 작가의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시작됐다.

 

『맛있는 철학』의 주인공 권준우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철학강사. 지난 학기 수업 정원이 미달되어 새로운 수업 방식을 고민하던 중 음식과 철학을 결합시키기로 결심한다. 강좌명은 ‘맛있는 철학’. 그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여고생 딸 ‘하연’과 함께 살고, 그의 아내 ‘최은영’은 NGO워커로 방글라데시에서 살고 있다. 세 사람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맛있는 철학』은 일상 웹툰과 같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담백하게 펼쳐나간다. 특별한 점은 한 에피소드마다 음식 레시피가 아닌, ‘철학’ 레시피’가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는 것. 볼로네즈 스파게티를 만들면서는 철학자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의 ‘카르페디엠’을, 카레를 만들면서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넌지시 곁들였다.

 

“간단한 스토리랑 철학 메시지가 떠오르면, 그걸 박준우 셰프한테 이야기해줬어요.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요리가 생각나냐고 물었죠. 완벽한 스토리를 정한 상태가 아니라 개략적인 이야기만 짜놓은 상황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오갔어요. 첫 번째 요리 ‘볼로네즈 스파게티’는 평상시에 박준우 셰프가 가장 손쉽게 요리하는 음식이 ‘스파게티’라고 해서 넣게 됐죠. ‘카르페 디엠’도 다르지 않잖아요. 지금 여기, 당장 먹을 수 있는 음식, 그조차 즐기려는 자세가 카르페 디엠을 아는 에피큐리언의 삶이잖아요.”

 

12개의 스토리, 12개의 요리는 7개월 동안 박준우 셰프의 타르트 카페 ‘오쁘띠베르’에서 완성됐다. 두 사람은 각 화의 메뉴를 정하고 카페에서 실제로 요리를 했다. 카페가 문을 닫는 날은 『맛있는 철학』의 새 메뉴가 탄생하는 날이었다. 권혁주 작가가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법’에 나오는 벨기에 갈비찜. 권 작가는 “처음 먹어본 맛이라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평소 미식가가 아니었거든요. 대식가면 대식가였지(웃음). 그런데 『맛있는 철학』을 그리면서 맛의 미학 같은 걸 조금을 알겠더라고요. 확실히 레시피를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또 결혼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아빠가 되고 나니 요리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평소에 파스타를 좋아하고 그나마 잘하는데, 아내는 별로 안 좋아해요. 느끼하다고(웃음).”

 

박준우셰프,권혁주작가

(좌) 박준우 셰프, (우) 권혁주 작가

 

우리의 소울 푸드는? 백순대와 와인


권혁주 작가와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에 한창 물이 오를 때, ‘오쁘띠베르’의 주인장 박준우 셰프가 카페로 들어왔다. 『맛있는 철학』 표지에 그려진 ‘권준우’와 꽤 닮은 얼굴. 현재 <올리브쇼 시즌4> 진행을 맡고 있는 박준우 셰프는 식품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푸드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맛있는 철학』 단행본에는 ‘박준우의 델리소피(Delisophy)’를 썼다. 단순한 레시피가 아닌 음식에 얽힌 다양한 단상들이 만화의 맛을 한층 높였다.

 

“권혁주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터라 요리 자문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아마 2,3회까지는 둘 다 좀 헤매지 않았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4화에 나오는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이에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에 나온 요리일 거예요. 만들면서도 어떻게 이런 요리가 나왔지? 싶었어요.” (박준우)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은 『맛있는 철학』의 주인공 권준우가 아버지에게 대접한 음식이다. 권 작가는 쇼펜하우어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를 권준우 부자에게 대입시켰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국제무역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는데 아들에게 자신의 가업을 물려주길 원했다. 만화 속 권준우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기에 쇼펜하우어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흔히 하루 세 끼를 먹잖아요. 한국인은 야식까지 더해 네 끼를 먹는다고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끼니 아닌 끼니, 입이 심심할 때 찾는 주전부리를 즐기는 시간이 특히 즐거워요. 간식을 챙겨먹는 행위의 역사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간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위로가 꽤 훌륭한 것 같아요. 파리의 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뺑 오 쇼콜라를 아주 맛있게 먹는 노신사를 본 적이 있어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쓴맛과 은은한 신맛, 뺑 오 쇼콜라가 주는 달콤한 즐거움으로 위로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죠.”(박준우)

 

박준우 셰프가 운영하고 있는 타르트 카페 ‘오쁘띠베르’도 달콤한 위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권혁주 작가는 1년 전,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권준우 셰프를 보러 왔다가 타르트의 맛에 흠뻑 빠졌다. 권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슈, 그리고 오쁘띠베르의 대표 메뉴 ‘레몬 타르트’다.

 

권혁주작가

오쁘띠베르의 레몬 타르트, 슈, 블루베리 타르트

 

“독일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빵집에서는 먹기 어려운 ‘내가 바로 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맛있어요. 부드럽고 많이 달지 않고요. 원래 주말에만 만들었는데 요즘은 평일에도 만드시더라고요. 오쁘띠베르에 오면 꼭 먹어 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어요.”(권혁주)

 

철학을 전공한 만화가와 맛깔 나는 푸드칼럼을 쓰는 셰프. 두 사람의 소울 푸드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자신은 미식가가 아니라며 권혁주 작가가 고심 끝에 내놓은 메뉴는 신림동의 ‘백순대’.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꼭 생각나는 음식이란다. 박준우 셰프는 아무래도 ‘와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왠지 제 처지랑 비슷한 것 같아요. 기후도 그렇고 토양도 그렇고. 뭐든지 적응해 가면서 나오는 게 포도주니까요.”

 

즐겨 가는 맛집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맛있는 요리의 정의’를 물었다. 두 사람의 답변, 다르지 않았다. 권혁주 작가는 “먹는 사람의 상황에 맞는 요리”, 박준우 셰프는 “개인 취향에 맞는 요리”라고 말했다.

 

“바빠 죽겠는데 정통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출출하고 당이 당길 때는 밥보다는 디저트가 좋은 것처럼, 먹는 사람의 상황에 맞다면 그게 좋은 요리 아닐까요?”(권혁주)

 

“맛 없는 음식을 먹는 건, 나랑 안 맞는 사람이랑 만나고 있는 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꼭 좋은 음식, 유명한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게 좋죠. 제가 짜파게티보다 짜짜로니를 선호하는 것처럼요(웃음).”(박준우)

 

권혁주 작가는 『맛있는 철학』의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 책에서는 서양철학만 다뤘기 때문에 다음 편에서는 동양철학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궁리 중이다. 9월부터는 새 웹툰을 네이버에서 연재할 계획이고, 개인 블로그에는 ‘만화로 쓰는 시’라는 주제 아래 ‘아빠의 뒤끝’, ‘작은선비’를 비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이어 <올리브쇼 시즌4>에 출연하며 스타셰프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준우 셰프는 오쁘띠베르 2호점을 구상 중이다.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뭉칠 법한 『맛있는 철학』의 시즌2도 무작정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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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철학 권혁주 글,그림/신승철,박준우 자문 | 애니북스
대학에서 철학 강사로 일하는 권준우. 인문학의 설 땅이 좁아지는 가운데 철학 강의 주제를 고민하던 중, 문득 자신이 가진 요리에 대한 관심을 철학과 접목시킬 방법을 생각해낸다.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하려던 데카르트의 사조를, 개인의 취향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는 향신료에 맞춘 ‘커리’로 설명하기도 하고, 사업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은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풀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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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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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2014.09.30

맛있는 철학, 이라는 제목이 부담스러움을 한결 덜어주네요. 철학은 너무 어렵지는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전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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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2014.09.29

사진에 눈이 가장 먼저 가는 건 어쩔수가 없나봅니다. 타르트 맛있어 보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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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9.27

복숭아조림 누룽지탕은 어떤 맛일까요. 두툼한 타르트가 넘 먹음직 스럽네요. 남자들의 요리 사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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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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