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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신해철의 세상과 나

가수 신해철 “인생은 산책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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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소멸한다. 그러니 삶의 유일한 진실이란 곧 살아있음 그 자체일 뿐이다. 록밴드 클래쉬의 멤버였던 조 스트러머는 이렇게 말했다. “로큰롤이란 결국 살아 있어서 참 좋다라는 것이다.”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들려준다.

피곤해 보였다. 예전에 비해 살이 찐 몸매도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는 어느 틈엔가 예전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시간은 생각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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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덴티티는 저음과 고음의 낙폭 지점에


김태훈 : 워낙 책을 좋아하시고 많이 읽으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신해철 : 효민 화보집이요(웃음). 농담이고요. 최근에는 떠오르는 게 없네요. 작업 말미에는 책을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김태훈 : 그렇다면 최근에 나온 음반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요. 4곡이 수록된 일종의 EP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첫 번째 싱글 <A.D.D.A>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들어봤을 때는 사운드와 보컬을 중첩시켜서 쌓은 듯한,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어진 느낌이 있었어요.


신해철 : 특별히 목적의식을 두고 만든 건 아니었고, 6년 정도 음반 발표를 하지 않다 보니까 반성할 시간들이 충분히 있었어요. 여러 파일들을 만들어 놓고 공부한 것들을 축적을 했는데, 그 중에서 원 맨 아카펠라는 제 자신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니까 나의 아이덴티티는 저음과 고음의 낙폭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해본 거죠. 이전에는 내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그런데 저음과 고음의 차이, 위와 아래에서 기형적으로 밀도가 유지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음역대가 넓은 사람들은 있는데 저처럼 밀도가 위아래에서 다 유지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좋은 실험 재료라는 생각이 들어서 원 맨 아카펠라도 재밌겠다 싶어서 시험 삼아 해봤어요. 특히 디스코나 댄서블한 넘버들, 해외 곡들을 주로 시험적으로 녹음을 해봤어요. 아무래도 표현이 명료하니까요. 그걸 듣고 주위에서 신곡으로 이런 걸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를 해서, 처음에는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아카펠라는 원래 기존 곡들을 생략해서 특징만 잡아내서 만드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영부영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김태훈 : 어영부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사실 음악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리허설용으로 이미 녹음한 걸 그대로 미디로 옮겨서 찍는 방식으로 사운드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신해철 : 제가 처음으로 고안해낸 방식은 아니고요. 이미 마이클잭슨 같은 사람들이 쓰고 있던 방식이었어요. 굉장히 유명한 슈퍼 세션 드러머를 데려다가 녹음을 한 번 하고 그걸 참고해서 드럼머신을 사용해 다시 녹음하는 방식을 보면서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는데요(웃음). 요즘처럼 실사와 그래픽이 애매해지는 일이 음악 쪽에서도 비슷하게 생기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사람이 친 그루브를 쓸 것이냐, 사람이 친 소리를 쓸 것이냐’ 하는 모든 취사선택의 조합이 굉장히 복잡해지면서, 그 모든 걸 실험해 볼 필요가 있었어요.

 

사실 시작은 발표되지 않은 넥스트 6집 앨범의 part.2에서 실험하고 있었던 거예요. 드럼을 녹음할 때 마이크를 한 개만 사용해서 샘플 CD처럼 소리 나게 한다든가, 이런 것들을 실험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지금은 어떤 음악을 만들 때 그것들을 꺼내서 보는 거죠. 6년 동안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그거였어요. 어떤 발상이 떠오르든 빠른 속도로 대응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김치처럼 오래 묵히고 익히는 곡도 있지만, 대중음악 영역 안에 있는 건 단번에 시원하게 떠오른 발상이 빨리 작업돼서 기름이 산화되기 전에 튀겨지는 느낌이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려면 지금의 복잡한 시스템들을 자동화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게 되고,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거죠.

 

김태훈 : 이번 앨범은 온전히 형식적인 실험과 조합을 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신해철 : 네. 어차피 일이 없어서 놀게 되면서(웃음) 실컷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할까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저는 라디오를 하면서 ‘조금 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거든요. 이번에는 긴 호흡으로 연구할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생각해서 많이 만들었어요.

 

김태훈 : 원 맨 아카펠라를 하시면서 사운드를 계속 입히는 과정 속에서 보컬도 변화를 많이 주신 것 같아요. 정직하게 한 것도 있고, 위아래 악센트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음색을 부여한 부분도 있고요.


신해철 : 축구로 예를 들면, 우리 팀 선수들이 모두 발이 느리다면 그에 맞는 대안이나 전술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바비 맥퍼린처럼 특징적인 각 음역대를 잡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몇 번 녹음하면 원 맨 아카펠라가 만들어지죠. 그런데 저처럼 막노동을 해야 되는 사람들은(웃음) 굉장히 많은 숫자의 녹음 작업을 원한다면, 목소리가 뭉치고 구별이 안 되는 일은 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마이크를 바꾸거나 녹음하는 거리를 다르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요. 예를 들어서 크로스 파트를 할 때는 한 트랙 한 트랙 할 때마다 이름도 정해놨어요. 가상의 인물을 정해놓는 거죠. 그 친구들은 해당 음역대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예요. 

 

김태훈 :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구현하는 것처럼, 이번에 음악에서 소리를 낼 때 각각의 차이를 지닌 발성에 그런 역사성을 집어  넣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신해철 : 뮤직비디오를 보면 여섯 명의 신해철이 나와서 장난치잖아요. 가운데 아이가 베이스 솔로를 하고 있을 때 오른쪽에서 리드 보컬을 하고 있던 아이가 뾰로통하게 있다가 오버하면서 치고 들어가는 장면을 찍었는데요. 그건 비디오를 찍을 때 나온 설정이 아니고, 녹음을 할 때 이미 제가 두 명의 리더인 베이스와 리드 보컬은 사이가 나쁘다고 설정해놨던 거거든요(웃음).

 

김태훈 : 아이덴티티가 갈라져 있는 여러 캐릭터의 보컬을 합치는 쪽으로 작업이 됐다는 말씀이시죠.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들리는데요.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또 거의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고독감이 굉장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해철 : 「A.D.D.A」 같은 경우에는 2주 정도 소요됐는데요. 2주 내내 거의 침식 없이 녹음한 곡이기는 한데요. 그 전에 다섯 곡 정도의 아카펠라를 완전히 녹음을 끝내고, 데이터를 정리해 놓고, 자동화 시스템도 만들어 놓은 상태였어요. 굉장히 빨리 작업할 수 있도록요. 만약 「A.D.D.A」를 녹음하면서 ‘이 부분에서는 어떤 마이크를 쓰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김태훈 : 말하자면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기만 할 수 있게 세팅은 끝마친 상태였네요.


신해철 : 네. 완전히 세트를 지어놓고 연기만 하면 되도록 설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던 거죠. 고독감에 대해서라면, 4곡 중에서 하나는 원 맨 아카펠라이고 나머지 곡은 원 맨 밴드이거나 원 맨 밴드에 접근하는 시도이니까, 그리고 레코딩과 엔지니어링을 제가 직접 해야 되고요. 돈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굉장히 정확한 식견이실 것 같고요(웃음). 예전에 밴드를 할 때는 음악에서 생기는 고독을 밴드와 같이 놀고 유대하면서 해소하려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또 대중들한테 그걸 응석부리면서 고독함을 달래려고 하면, 그건 옳지 않아요. 그런데 6년 정도의 고독함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치국’ ‘평천하’는 모르겠고 ‘수신’도 모르겠으나 저희 집은 재밌어서 ‘제가’만 잘 돼요(웃음). 특히 마지막 6개월 정도는 제일 많은 노동량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집은 3대가 한 집에서 함께 살기 때문에, 고독은 그런 면에서 많이 해소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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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떨지 마라, 너는 사람들 자체를 좋아한다


김태훈 : 공연을 한지도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무대가 그립지는 않으셨나요?


신해철 : 무대가 그리웠을까요? 글쎄요. 무대나 음악을 만드는 거나, 전반적으로 인생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휴식기의 처음 3년 정도는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음악 만드는 걸 도울 수도 있지만,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4년, 5년째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허세 떨지 마라, 너는 사람들 자체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입장 때문에 대중들에게 바랐던 것, 그런 것들은 사실 가족이 해주는 일이지 그것까지 사람들이 알아줄 수는 없다는 걸 저한테 설득시켰어요. 많이 어른이 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다시 할 수 있는 자세들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김태훈 :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대중적인 활동을 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신해철 : 일단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서 오는 변화가 가장 컸던 것 같고요. 여러 가지 측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음악적으로 했던 생각은 그것 같아요. 제가 스무 살 때 데뷔를 해서, 팬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형이나 오빠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는 자아실현에 대한 것들이었을 거예요. 그 친구들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면서 배신감을 느꼈을 거예요. 청소년 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느냐’ 였는데 서른, 마흔이 넘어가면 그 다음 챕터가 있느냐는 거죠.

 

당시에 하이텔, 나우누리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잖아요. ‘문제 제기는 실컷 해 놨는데, 그러면 대안이 뭐냐’라고 하면 ‘어떻게 내가 그것까지 얘기를 해’라고 말했는데. 제 팬 세대들도 이미 느끼고 있을 해답, 그리고 우리가 나눌 해답들, 다음 챕터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내가 들려줄만한 뭔가가 있을 때, 가사 내용적으로도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제가 유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얘기는 너무 쉽고도 단순한 얘기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 과 ‘그래서 행복하냐’ 라는 문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국가가 공교육과 같은 도구를 통해서 각 개인이 스펙을 쌓고 최적화되기를 요구한다면 거기에 부응해서 자기계발서를 30권정도 읽고 스펙을 쌓아 올리면 그 인간은 끝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실현하는 걸 대단한 것처럼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그 중의 반만 실현하면 세상은 정말 행복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산책 실렁실렁교’라는 종교를 만들었어요.

 

김태훈 : ‘산책 실렁실렁교’가 뭐죠?


신해철 : 인생은 산책 나온 거라는 거예요. 일하러 나오거나 싸우러 나온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실렁실렁 산책을 다니고, 하루에 세 번 산책을 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신해철을 세 번 외치면 너는 행복해진다는 종교인데요. 핵심 개념은 이거예요. 소명, 내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이루게 되어 있는 나 자신 같은 건 없다. 그러면 왜 태어났냐. 태어나는 게 목적이어서, 유전자 물질을 전달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태어남으로써 목적을 다 한 거고 인생이란 보너스 게임이라는 거예요. 저희 종교의 핵심은 ‘우리가 사는 건 보너스 게임이다. 얼굴 붉히지 마라’예요. 그러다 보니까 ‘아프지 마라’라는 가사도 다 똑같은 얘기예요.

 

김태훈 : 사실 그 이야기를 얼마 전에 <SNL 코리아>에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들려주셨잖아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요.


 

신해철 : 그리고 ‘아프지 마라’ 앞에는 괄호가 있잖아요. ‘어찌됐든지’라는 말이 감춰져있는 거예요. 뭘 하든 아프지만 말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각 개인들이 개인의 성취를 포기할 리가 없고 하지 않을 것도 아닌데 달리는 말에 왜 채찍질을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김태훈 : 지금 이야기 해주신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인 것 같아요. 삶이란 것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너의 인생을 여유 있게 즐기면서 가보는 건 어떻겠니’ 라고 제안해 주시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신해철 : 그런 이야기들을 복잡한 개념이나 단어 말고,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나 절규하는 태도가 아니면서 풀어낼 수 있는 언어가 무엇이 있을까를 오랜 시간 고민했었는데요. 제가 어릴 때 증조할머니께서 삼촌들한테 던지시던 ‘니 머한다꼬’라는 한 마디가 생각나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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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워낙 사람 웃기는 걸 좋아해요


김태훈: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이 「단 하나의 약속」인데요. 네 번째 트랙이죠. 아내에게 15년 전에 만들어서 바친 곡이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나머지 세 곡과는 다른, 이질적인 음악일 수도 있는데 네 번째 트랙으로 넣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해철 : 4곡 중에서 그 노래만 살짝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볼 때는 완전히 한 덩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르겠어요. 이번에 블랙 뮤직이랄까 싱크 페이션들이 많고, 리듬이 춤추는 노래들을 모았다고.

 

김태훈 : 그렇죠. 그래서 중간에 재즈적인 느낌도 있는 것 같고, R&B라든지 디스코 음악의 느낌도 강한데요.


신해철 : 사람들은 「단 하나의 약속」을 발라드라고 이야기하는데, 템포로 보면 이 곡은 미디움도 아니고 패스트 넘버거든요. BPM은 굉장히 빨라요. 리듬도 잘게 쪼개져 있고 속도도 굉장히 빨라요. 그래서 리드미컬한 노래들을 이번 앨범에서 다루고 싶었고요.

 

김태훈 :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운드는 둔중한 느낌이 드는 곡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쾌함은 끝까지 유지가 되는 듯 한 느낌이었어요. 해외 아티스트에 비교하자면 롭 좀비 류의 음악을 듣는 듯 했어요. 외형적으로 얼핏 첫 인상은 메탈인 것 같지만 음악적으로 들어가 보면 디스코의 리듬감 같은 부분들이 잘 유지가 되어 있잖아요.

 

신해철 : 제가 원래 댄스 가수 출신이잖아요(웃음). 제가 공연할 때 사람들이 헤드뱅잉을 하고 뛰는 것도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제가 만든 음악에 사람들이 춤을 추는 거예요. 잠옷 차림으로 자기 방에서 혼자 제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생각해요. 그런 목적으로 제 음악이 쓰여 졌으면 하고요. 「Princess Maker」 같은 노래들은, 자기 전에 머리맡에 재떨이나 와인을 갖다 놓고 한 번씩 흔들어 주고 자는 용도를 상상한다고 할까요. 저한테 댄스 뮤직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남녀 애인이 므흣한 시간대에, 사적인 공간에서, 남친이 기다리고 있을 때, 의외의 복장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춤을 추는’ 그런 이미지라고 할까요. 저에게 댄서블한 음악의 이미지는 방송국의 쇼에서 연예인이 춤을 추고 있거나 클럽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김태훈 : 얼핏 떠오르는 건 『나인 하프 위크』에서 킴 베이싱어가 춤을 추던 장면이에요.


신해철 : 그렇게 생각하면 「재즈 카페」도 그런 류였던 것 같아요(웃음).

 

김태훈 : 최근에 <SNL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방송 활동을 본격화하셨습니다. 원래 예전부터 거침없음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죠. SNL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는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거나 패러디하는 코미디인데,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컴백을 알리신 이유가 있나요?


신해철 : 제가 워낙 사람 웃기는 걸 좋아해요. 연예인들이 분자화 되어서, 한 프로그램에 몇 십 명이 나와서 한 마디씩 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보다는, 물론 그런 프로그램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이지만, 또는 저와 시스템이 맞지 않는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에 가서 씨름하고 있는 것 보다는, 웃음의 형태로 ‘저 음반 다시 냈어요’하고 이야기하는 게 제일 적절한 형태가 아니겠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기 비하나 웃음에 대해서도, 공백 기간 동안 ‘대중이란 뭘까, 그리고 대중 음악가란 뭘 하는 사람일까’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해야 했던 기간이었거든요.

 

저의 팬들이 저를 어떻게 떠받들어주든 간에, 결국 저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고 있잖아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조금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의 아이들에게도 ‘아빠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한테 아빠는 이런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란다’라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SNL도 ‘윙크’죠.

 

김태훈 : 어떤 코너가 가장 재밌었나요?


신해철 : 전반적으로 다 재밌었고요. 워낙 정신이 없었어요. 생방송인데다가 아침 10시라는, 저한테는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스태프가 합류해서 계속 리허설을 해야 했거든요. 방송이 끝난 후에 스태프들이 ‘생방송인데 어쩌면 그렇게 긴장을 안 하냐‘고 하던데,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생방송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웃음). 다른 한 편으로는 SNL의 시스템을 머릿속에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괜찮은 제작 시스템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약간 호기심 소년이어서 그런 데 가면 계속 관찰하는 습관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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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사회에서 내 캐릭터가 향신료라면, 괴짜 취급을 해도


김태훈 : 예전에 마왕으로서 <고스트 스테이션> 진행하시던 시절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다음날 기사화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상황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불편하셨다고요. 사실 최근에는 다음날 SNS에서 이야기될 걸 기대하면서 말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데요. 당시에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해요. 자신이 이야기하면 다음날 그것이 화제가 되어있고, 그에 대한 찬사 혹은 공격이 이어질 때 말이죠.


신해철 : 답답한 거죠. 예를 들어서 어떤 한 사람이 정말 전문적인 식견을 여러 분야에 걸쳐서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다 발휘하면 주위 사람들은 정말 피곤한 거거든요(웃음). 그런데 DJ라는 직업은 굉장히 야트막한 일상과 단편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잖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내포하면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심야 라디오는, 묘하게도 공식적인 석상과 사석의 중간에 서게 돼요. 예를 들어서 축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공식 석상에서는 제가 뭘 알아야 얘기를 하지만, 사석이라면 부담 없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활자화될 때, 밤 시간에 라디오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낮 시간에 활자로 바뀔 때는, 정말로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죽여 버리는 걸로 바뀌어요.

 

김태훈 :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했던 이야기를 다음날 정당의 대변인이 성명서에 집어넣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신해철 : 그렇죠. 그리고 내용이 왜곡되어서 전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겠지만, 100% 정확하게 전달되어도 피곤하겠죠(웃음).

 

김태훈 : 그러네요. 아무리 라디오가 공적인 매체라고 해도, 심야의 라디오는 굉장히 은밀한 사적인 영역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곳에서 소근 거렸던 이야기가 활자화되면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왜 매일같이 무수히 많은 주제에 대해서 비난하고 비판하고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의미 자체가 달라지는 거잖아요.


신해철 : 네. 게다가 더 큰 공포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신해철의 단편을 조합해서 나머지 빈 공간을 채워 넣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을 거야’라고 상상하고, 그 말들이 실제로 생겨나는 거죠. 그러면 유령이나 귀신한테 쫓기는 기분이 되어버려요. 예를 들면, 제가 음악을 하면서 칭찬을 조금 받는 기간에는 부수적으로 대중들이 ‘아이돌 그룹을 공격하라’는 임무를 자꾸만 요구합니다. 제가 곡을 쓴 것이 칭찬을 받았다면 ‘곡을 쓰지 않고 노래에 전념하는 가수들을 조롱하라’는 임무를 자꾸 강제하려고 해요. 그런데 대중들이 ‘신해철은 그럴 정도로 싸가지 없는 인간이다’라는 편견을 가질 만한 트집을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봇물처럼 터져나갑니다. 가끔 제가 <고스트 스테이션>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 여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틀고 좋아하는 삼촌팬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도, 실제로 그 친구들의 음악을 좋아해서 했던 행동이기도 하지만, 조금 과장해서 보여줬던 이유는 그런 것에 대한 예방주사 같은 것이었어요.

 

김태훈 : 이런 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한쪽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앞에 선 기수처럼 나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군요.


신해철 : 네. 예를 들면 클론이 중국에서 인기가 있다면 어느 날 신문에 “신해철, 비즈니스의 힘으로 그따위 성과 내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기사가 뜹니다. 그러면 저는 구준엽, 강원래 씨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 거 아니었던 거 알지?”라고 말해야만 해요(웃음). 제가 장난으로 했던 말 중에서 ‘누가 착한 신해철을 원해?’라는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꽤 많이 돌아다녔는데요. 만약 사람들이 저를 실제보다 더 괴짜 혹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면서, 우리가 사는 답답한 사회에서 제 캐릭터를 향신료처럼 쓸 수 있다면, 저를 조금 괴짜 취급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정도, 저희 부모님 가슴이 너무 찢어지지 않을 정도의 인간의 틀은 저에게 남겨져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너무 구차한 이야기들인데?(웃음).


김태훈 : 아마도 대중 앞에서 인기를 얻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숙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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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신해철, 거기 세 사람스(s)

 

김태훈 : 지난 6년 동안의 가장 큰 경험이라면 아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신해철 : 글쎄요, 제가 아이들을 키우는지 아이들이 저를 키우는지 잘 모르겠지만(웃음) 잘 지냅니다.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이 아빠를 돌보는 것 때문에 일정 시간을 할애해야 돼요. 제가 아침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유치원에 갈 시간이니까 아빠를 재우고 나가야하기 때문에 분주해집니다. 저를 재우고 나갈 때 불 끄면서 ‘혼자 있을 수 있지?’라고 말해요(웃음).

 

김태훈 : (웃음) 집에 계실 때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신해철 : 집에 매일 들어가면 좋겠지만, 48시간이나 72시간 동안 길게 사고해야 할 때는 집에 못 들어가요. 그럴 때는 작업실에 머무르는데 사실 집이랑 5분 거리거든요. 그러고 있는 동안에 가족들은 전화 한 통 하지 않으면서 저를 도와줍니다. 그런 다음에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저를 재워야 되는 사태가 일어나는 거죠(웃음).

 

김태훈 : 말하자면 아이들이 아빠를 돌보면서 스스로 성장해간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신해철 : 그렇죠. 아이들 둘과 제가 그룹을 조직했는데, 이름이 ‘거기 세 사람스(s)’ 거든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 셋이 누우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잖아요. 그럴 때는 꼬리를 물고 얘기가 계속 되니까 아이들이 잘 안 자요. 그러면 저희 와이프가 최후의 경고를 해요. 문을 확 열고 ‘거기 세 사람!’하고 큰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러면 셋이 조용해지는데,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다시 한 번 문이 열리면서 와이프가 ‘아빠 나오세요!’하고 저를 붙들고 나가요. 아이들은 또 따로 혼나고요.

 

김태훈 : (웃음)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가 ‘다시 앨범을 내고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거 같아요. 왜 이 시점에 새 앨범을 발표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신해철 :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140곡을 채우면 발표를 해야겠구나’ 이런 느낌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제가 만들고 있는 모자이크가 서서히 형상이 갖춰지는 걸 보면서, 지금까지 인생을 지내왔던 감이 있잖아요. 음악을 하면서 지냈던 감이 있고요. 어느 날 생각해 봤더니 제가 그냥 아마추어 음악 지망생으로 지냈던 시간보다 프로 뮤지션으로 살았던 시간이 더 길더라고요. 이제 마음속으로 막대한 것들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게 되거든요. 후배들이 볼 때 죽이는 작품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올바른 모습을 보이라는 거죠. 올바른 모습이라는 게 도덕적으로 훌륭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 떨어지지 않고 창작력을 스스로 추구하면서 안정된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때쯤에는 슬슬 내다 팔아봐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지 알 수 있고, 또 사람들한테 한 번씩 먹여봐야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도 알 것이니까, 이제 움직이자고 생각한 거죠.

 

신해철.jpg

 

물 밑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놀려 열심히 음악하는 중


김태훈 : 어떤 음악 평론가는 서태지 씨와 신해철 씨를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서태지 씨는 시대의 좋아하는 음악들의 키 코드를 찾아냈었고, 신해철 씨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 본 것이, 서태지 씨는 냉철한 과학자의 이미지라면 신해철 씨는 낭만적인 미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신해철 씨의 넥스트 그룹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음반을 내면서 대중음악 시장을 이끌었는데요. 서태지 씨가 꼭 필요한 분량의 음악들만을 앨범에 담아냈다면 넥스트의 음악은 전체 러닝타임이 2배 이상이 될 정도로.


신해철 : 오버, 과장, 허세.

 

김태훈 : (웃음) 그런 부분들이 당시에는 낭만적이었기 때문에 펼쳐보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신해철 : 그 당시에는 퍼부어야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고요. 제가 작업하는 걸 보고 학자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대수 선생님은 ‘무슨 팝송을 1년 동안 녹음해’라고 말씀하시고요(웃음). 생각해보니까 저는 학자는 아니고요. 이미지로 말하자면 실험실에서 연금술 하겠다고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 같은 거죠. 그런데 잘못해서 폭발이 일어나서 얼굴에 그을음 묻히고 머리는 그슬리고, 코미디에 나오는 것 같은 장면 있잖아요(웃음). 저는 딱 그 이미지인 것 같아요.

 

김태훈 : 그렇기 때문일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태지 씨는 90년대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신해철 씨는 70년대적 정서 같은 것들이 강해요.


신해철 : 70년대는 아마 고의적인 설정인 것 같아요. 지나간 음악들과 유행하는 패턴의 변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전체 패턴을 확률적으로 추산하고 대중 성향을 보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늘어나는지 그대로인지, 이런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역시 70년대가 골든 에이지였다’라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다면 그것들을 재생산해 내면서 뭔가를 해야 하는 시대에 대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걸 잘하자는 거죠. 요 몇 년 간의 변화라면 ‘긍정적인 해철이’가 아닐까 싶은데요(웃음).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나라 대중들이 사운드를 안 듣고 너무 노래 멜로디만 듣고, 음악을 연주가 아닌 노래와 반주로 파악한다고 불평하죠. 아마 저도 그런 불평이나 자괴감이 많았던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은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좋은 멜로디를 만들어주자고요. 우리 대중들이 멜로디에 집중한다면 그들의 특질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거라고 말해요. 조용필 선배가 그 시대에 대중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서 사운드를 깎고 다듬었겠냐는 거죠. 이건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뭔가 바뀌는 시대가 오는 거죠.

 

김태훈 : 제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그 지점인데요. 스마트폰을 통해서 이번 앨범을 처음 접했는데요. MP3로 음악을 듣는 세대에게 과연 이 사운드가 원하는 의도만큼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우려되기도 했거든요. 분명히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음반이 아닌 음원으로써 음악이 소비되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운드에 공을 들였다는 것은 어쩌면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 같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신해철 : 글쎄요. 무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잔을 마시고 몸을 정갈하게 하는 것처럼, 음악 하는 사람이 소리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거겠죠. 그 중에서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에 능력이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만 전념한다면, 저처럼 미드필드 쪽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걸 조금 더 많이 해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어야겠죠.

 

김태훈 : 지난 몇 년 간 가장 힘드셨을 때는 언제예요?


신해철 : 재작년쯤이었을까요. 재재작년쯤이었을까요. 제가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힘든 상황이 겹치면서 ‘한 가지씩 해결해 보자, 지금 현재 나의 삶을 가장 핍박하는 요소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장시간 명상을 해봤어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나의 코털이다’였어요. 제가 코털을 안 깎아서 되게 간지럽더라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 벌어진 여러 가지 정황, 즉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병이나 일들, 개인적인 심적인 고통들 중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 나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건 코털인 거예요(웃음). 그러니까 사람 인생이란 게 얼마나 웃기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하늘에서 5조 원이 떨어지거나 우리 집 뒤편에서 황금 불상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우리 집에 길 잃은 미녀 100명이 찾아오거나, 이런 일이 아니고 지금 빨리 코털을 깎는 거더라고요(웃음).


김태훈 : 외부로 향해있던 여러 가지 생각보다는 가장 실존적인 것, 가장 현실적인 것, 가장 삶에 근접해있는 것에서부터 불편함이 시작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김태훈 : 음악 외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해철 : 빨리 스케줄이 마쳐지고 잠을 잤으면 좋겠고요. 아이들한테 놀이동산에 가자고 말하고 약속을 못 지킨 지 오래돼서 놀러 다녔으면 좋겠어요. 글쎄요, 정말 아저씨가 된 걸지도 모른다는 위협적인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이걸 해야 되겠다 저걸 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많이 느긋해졌습니다. 그리고 인생 가마우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 위에서는 우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물 밑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열심히 음악하고 있거든요. 제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17시간 정도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는 편하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소멸한다. 그러니 삶의 유일한 진실이란 곧 살아있음 그 자체일 뿐이다. 록밴드 클래쉬의 멤버였던 조 스트러머는 이렇게 말했다. “로큰롤이란 결국 살아 있어서 참 좋다라는 것이다.”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들려준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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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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