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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강조하는 이미지 인문학

『이미지 인문학』 대구 특강 우리가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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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표 논객이자 지식인으로 활약 중인 진중권 교수가 대구를 찾았다. 『이미지 인문학』 출간 기념 특강을 위해서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문자에서 이미지로 바뀌면서 우리가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진중권, 대구를 찾다


7월 5일, 예스24 대구물류센터에서 진중권 교수 특강이 열렸다. 이번 특강은 진 교수의 『이미지 인문학』 출간기념으로 마련되어, 대구 지역의 독자 70여 명이 함께했다. 책 제목에서 보듯 이번 책의 중심 소재는 ‘이미지’다. 강연 내내 그가 강조한 게 바로 ‘이미지 해석 능력’이었는데, 이날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진중권

 

저자는 먼저 현재 인문학의 위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먼저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다. 인문학 관련 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출판계는 이상하게도 인문학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 보듯 인문학을 향한 수요는 없어질 수 없다. 진중권은 “위기에 처한 건 전통적 인문학이고 지금은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논하기 전에 인문학이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를 보자.

 

존재론 중심이었던 철학이 17세기 데카르트를 위시하여 인식론적으로 방향이 옮겨진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그리고 이를 종합한 게 칸트였다. 이게 바로 근대철학이라면 20세기로 넘어오면 언어로 중심이 이동한다.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는 언어와 사유 간 관계를 치열하게 고민한 대표적 사상가다.

 

21세기는 언어 자리에 미디어가 들어온다. 언어학에서 매체철학으로 다시 중심이 옮아갔다. 이전까지는 커뮤니케이션 주요 수단이 언어, 텍스트였으나 지금은 이미지가 그것이다. 텍스트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소통하는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진중권 교수는 ‘짤방’을 꼽았다. 게시물이 삭제되지 않으려고 이미지를 붙이는 걸 짤방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서나 메신저에서 이미지에 캡션 붙이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는 게 힘이다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변했다고는 해도 달라지지 않는 점이 있으니 바로 ‘아는 것이 힘이다’는 사실이다. 예전부터 지식은 권력이었고, 지식을 가지려면 매체를 장악해야 했다. 예전에는 문자를 이해하면 됐지만, 이제는 사운드와 이미지를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착각할 수 있는 게, 영상이나 사진이 날 것 그대로를 재현한다고 믿는 점이다. 사진이나 영상 모두 인간의 기술로 만든 이미지다.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고위 공직자에 내정된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이 우연히 가던 길 건너편에 ‘마사지’라는 간판이 보인다. 우연히 이를 본 사진기자가 “OO님” 하고 큰 소리로 불렀더니, 그 사람이 뒤를 본다. 이 순간 플래시를 팍, 하고 터뜨리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찍힐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사에는 사진 한 장과 ‘그 시간에 거길 왜’라고 캡션을 넣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명백한 거짓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미지로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만약 만들어진 이미지 밑에 깔린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속고 말 것이다. 이게 바로 미래의 문맹이다. 과거에는 문자를 읽을 줄 모르면 문맹이었지만 미래에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면 문맹이 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지금의 영상문화가 문자문화 이후의 영상문화라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문자 해독 능력은 갖춰야 한다. 이게 없다면 남이 만든 걸 소비만 한다. 여기서 진중권 교수는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중앙대에서 가르칠 시절, PC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게임하면서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주술 문장을 제대로 갖춘 게 거의 없고 감탄사 위주의 대화였다고 한다. 게임이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이런 원시적인 대화가 아니라 게임을 하되 동시에 비평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갖출 것을 당부했다.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지배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예전에 글자 읽는 사람이 못 읽는 사람을 지배했듯, 앞으로는 프로그래밍하는 사람과 프로그래밍 당하는 사람으로 양분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도 위기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자신이 자기를 통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일부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통치한다면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모든 민중이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텍스트는 비가시의 영역으로 침전하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방송에서 스크립트는 안 보이지만, 스크립트 없이는 방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진중권


현대 사회에 일어난 변화를 언급하면서 진중권은 미학으로의 이행을 꼽았다. 그는 이를 “플라톤주의에서 니체주의로” 변화로 규정한다. 예전에는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작업이 중요했다. 그리스 시대에서 철학은 신화적 사유와 싸우면서 등장했다. 플라톤주의에서 스너피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진짜 개로 볼 것인지 아닌지로. 그런데 니체주의로 오면 스너피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니체주의에서는 어차피 자연에 존재하는 개도 인간의 교접으로 만들어진 종이고, 이는 사과나 쌀 같은 다른 사물도 마찬가지다. 진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니체주의는 가상을 긍정한다.


플라톤에서 니체로


플라톤주의에서 니체주의로의 이행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참된 삶이 있는가? 참된 사회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한때는 답이 있었다. 서구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무계급사회를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운동권 내부에서도 이런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드물다. 모두가 합의하는 참된 삶, 사회라는 게 없어졌다. 다원화됐다. 플라톤은 항상 진리를 강조했고, 니체는 진리보다 더 중요한 게 예술이라고 말했다. 니체주의에서는 중요한 게 ‘창조의 즐거움’이다. 과거가 “도덕주의적 코드였다면 이제는 미학적 코드”인 셈이다.


미학적 코드로 옮겨진 세계에서 진중권 교수는 음모론에 휘말릴 소지도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음모론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음모론을 받아들일 때, 내부만 보면 완벽하지만 밖에서 보면 헛점이 많아진다. 음모론을 믿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제가 필요하게 된다. 예로써, 박완순 시장의 아들이 병역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음모론을 폈던 사람은 척추 전문가였다. 20대 젊은이 척추가 아니고, 척추가 바꿔치기 한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음모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병무청을 비롯해 의사 등 수많은 사람과 미리 짜야 했다. 이런 게 전문가의 오류다. 부정개표 음모론도 이와 비슷하다고 진 교수는 말한다. 이런 음모론이 성립하려면 너무 많은 전제가 필요하다는 설명.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질까. 그는 팟캐스트 <나꼼수>를 예로 들었다. 제시한 음모론10개 중에서 5개가 맞을 때, 사람들은 대개 맞았던 사실만 기억한다. <나꼼수>가 알았던 정보 중 상당수가 기자들도 알았던 정보였는데, 확실하지 않아서 정식으로 보도하지 않았는데 <나꼼수>는 그냥 터트린 거다. 이렇게 어느 순간 <나꼼수>는 선동 수준으로 흘러갔다고 진 교수는 평가했다.


음모론을 대할 때 필요한 태도는 반은 진지하고 반은 놀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도 가짜라는 걸 알고 듣는 사람도 가짜라는 걸 아는 게 판타피지컬의 놀이이고, 판자피지컬한 세상에서는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연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대로 이미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미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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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 1 진중권 저 | 천년의상상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섬뜩한 세계와 아름다운 사물을 횡단한다. 우리는 '이 섬뜩한 세계와 아름다운 사물'을 놓치면 안 된다. 특히 디지털 세대라면,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크리에이티브를 갈망하는 독자라면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양상을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매개로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미학 이후 미학, 디지털 미학의 세계를 다양한 작가와 작품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바야흐로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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