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욕하면서 보는 연극 썸걸(즈)

감춰진 사람의 마음을 쭉쭉 끄집어내는 연극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다 살짝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스멀스멀 화가 나다 급기야 욕을 퍼붓게 되는 연극 <썸걸(즈)>, 또는 <썸걸’(즈)>. 재밌는 것은 주인공과 관객이 동성이냐 이성이냐에 따라 반응은 사뭇 다른 것 같다.

모든 연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가 존재한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불행히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 사람이 공평하게 50대 50의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어떤 관계는 70대 30, 때로는 80대 20의 불공평한 힘의 구도가 형성된다.

 

알랭 드 보통이 그랬던가. 사랑에 있어 권력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는 20%만 움직여도 나머지 80%의 노력을 쏟아 붓는 상대방에 의해 관계는 유지된다. 더욱 불행한 것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관계를 종료하는 것은 힘을 가진 사람이며, 그 종착역에서 상처받고 나자빠지는 사람은 몇 배의 마음과 노력을 기울인 힘이 약했던 사람이다. 젠장.

 

썸걸즈

 

결혼 전에 한 번 만나! 결혼을 앞둔 과거의 연인이 나를 호텔 방으로 불러내면 어떨까?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어쩜 이렇게 뻔뻔한지. 이제와, 도대체, 왜, 보자는 것일까? 더 기막힌 것은 만나러 가는 나이다. 굳이 못 만날 것도 없고, 확인할 것도 있다지만 결국은 여전히 사랑 또는 관계의 종속자다. 이 기막힌 설정으로 2007년 국내 초연 이후 객석의 짜증을 증폭시키다 급기야 육두문자를 받아내던 연극 <썸걸즈>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2014년 무대의 흥미로운 점은 기존 ‘나쁜 남자와 그의 여자들’에 ‘나쁜 여자와 그녀의 남자들’ 버전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각각 <썸걸(즈)-Some Girl(s)> <썸걸’(즈)-Some Girl’(s)>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나쁜 남자 vs. 나쁜 여자

 

 

썸걸(즈)-Some Girl(s) 

 썸걸’(즈)-Some Girl’(s)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곱상한 외모에 청산유수 같은 언변, 과거와 현재를 자기 편할 대로 넘나드는 그들은 자칫 관계의 권력을 지닌 듯 보이지

만, 실상 사랑을 보챈 뒤 지킬 줄은 모르는 미숙하고 결함 있는 몹쓸 인간들
 

 

영민: 잘 나가는 작가다. 그는 과거의 여자들을 호텔 방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을 ‘정직 프로젝트’라 칭한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잡고 싶다고.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어떤 풍파의 희생자였음을 이해받고 싶다고.

미도: 인기 여배우다. 그녀도 과거의 남자들을 호텔 방으

로 불러들이며 ‘정직 프로젝트’라 말한다. 사과하고, 바로잡고, 당시에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나빴던 것 같지만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녀 또한 이해받고 싶다고.

그들의 첫사랑
너 이렇게 살 줄 알았어.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정말 비슷해. 있지, 사실은 그때 너의 평범한 미래가 그러져서 숨 막혔

어!
 

 

상희: 고등학교 때 만난 영민의 첫사랑.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지금껏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미용실에도 가고 아가씨 때처럼 옷도 챙겨 입었다. 혹 영민이 함께 도망가자고 하면 어쩌나 설렌다. 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13년의 응어리가 도사리고 있다.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때 함께 있었던 여자 누구야?” 그리고 울먹인다. 지금은 평범한 아줌마지만, 그 시절 그에겐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싶다.

 

창훈: 미도의 첫사랑 교회 오빠.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지금껏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정장을 챙겨

입고 미도에게 연주해주곤 했던 하모니카도 챙겨 왔다.

순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13년의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다. “관계를 끝낸 건 우리가 아니라 ‘너’지. 그때 함께

있었던 남자 누구야?” 그리고 눈시울을 적신다. 지금은

평범한 아저씨지만, 그 시절 그녀에겐 가장 멋진 모습

으로 남아 있고 싶다.

몸으로 했던 사랑
그때 다른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너한테 몸을 던졌던 것 같아!
 

 태림: 복잡한 그의 말을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는 심플한 여인. 다시 만나서도 마냥 즐겁다. “나는 오빠랑 헤어질 줄 알았어. 상처 받은 것도 없고 풀어야 할 것도 없어.”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 두 번째였던 사랑에 서글픔은 있다. “그래서 그때 항상 나 몰래 어딘가에 전화한 거였구나. 두 번째 그거, 좀 아파.”

 기덕: 복잡한 그녀의 말을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는 심플

한 남자. 돈 많은 유학파인 그는 다시 만나서도 마냥

끼하다.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사과 받을

도, 바로 잡을 것도 없어.” 하지만 알지 않아도 될

실 앞에 서운함은 있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그때

네 전화 몰래 봤는데 매번 같은 번호에 전화 했더라.

난 괜찮아.”

미래를 팔아 현실을 파괴했던 사랑
솔직히 사람들은 쑥덕이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미숙: 그의 지도교수면서 모 출판사 대표의 아내. 그와의 관계가 발각된 뒤 홀로 현실을 겪어야 했던 그녀에게는 아직도 그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다. “너는 책을 낼 줄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그리고 그의 어린 약혼녀에 대한 복수로 그를 탐하기로 한다.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옷 벗어.” 하지만 옷까지 벗어던지고 그를 몰아세우던 그녀는 침대 맡에서 예전처럼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떨군다.

도균: 사진과 교수였던 노총각. 그녀와의 관계가 발각된

 뒤 국립대 교수라는 자리까지 반납해야 했다. 담담한

 척 하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물론 함께 할 미래

까지 파괴했던 그녀에게 아직도 분노하고 있다. “사진

 한 장만 찍자. 내가 원하는 건 너의 뒷모습이야.

그리고 그때처럼 우리의 미래를 얘기해 봐.” 함께 할

미래를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에 카메라 필름을 내려

놓고 방을 떠난다.

그들이 진짜 사랑했던, 그러나 역시 비겁했던
넌 정말 사랑했어. 하지만 미래가 너무 불확실했잖아!
 

 

소진: 그에게 정말 특별한 그녀. 그는 의사가 될 그녀에 비해 너무나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가 겁이 나 도망쳤다. 한껏 쿨 했던 소진도 끝내는 마음 속 앙금을 쏟아낸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은 좋은 대로, 나쁜 기억도 나쁜 대로 묻고 사는 거야. 다시 나타나 이러는 거 사람 두 번 죽이는 거야.” 그리고 폭로되는 그의 또 다른 실체에 미련의 불씨마저 씻어낸다. “이제는 너를 확실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근: 같은 극단 단원이었던 그녀에게는 정말 특별한 그.

하지만 그녀는 연봉 2백만 원의 대학로 연극배우인 그와

 미래를 함께 할 자신은 없어서 도망쳤다. 한껏 쿨 했던

 태근도 끝내는 침을 튀겨가며 그녀를 몰아세운다. “도대

체 이러는 의도가 뭔데? 사과? 바로잡아? 결국 너 좋자고

 이러는 거잖아.” 그러다 폭로된 그녀의 또 다른 실체에

 남아 있던 애틋함마저 식는다. “이제는 너를 확실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다 살짝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스멀스멀 화가 나다 급기야 욕을 퍼붓게 되는 연극 <썸걸(즈)>, 또는 <썸걸’(즈)>. 재밌는 것은 주인공과 관객이 동성이냐 이성이냐에 따라 반응은 사뭇 다른 것 같다. 그러니까 여자 관객이 미도를 만날 때는 영민을 볼 때 보다는 리액션의 수위가 낮거나 허용까지 가능한 수준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누군가의 뻔뻔함과 그럼에도 미련하게 예속 됐던 경험, 또는 누군가에게 이기적으로 굴었거나 비겁하게 도망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 화가 나고, 또는 그 누군가를 보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런데 두 편을 모두 재밌게만 본 기자는 어떤 상황일까?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작품을 보고 난 뒤 무척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영민이건 미도건 그냥 재밌었다. 연출이 이석준 씨로 바뀌어서인가, 사랑도 이기적인 관계놀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돼서 일까, 아니면 연애세포가 아예 죽은 것일까... 스스로 달라진 리액션에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탄탄한 대본에 배우들의 짱짱한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그러면서 감춰진 사람의 마음을 쭉쭉 끄집어내는 연극은 참 재밌다.

 

 

썸걸즈




[관련 기사]

- 연극 <썸걸(즈)> 그냥 ‘개새끼’는 아닌, 배우 최성원
-연극 <가을반딧불이>, 그렇게 안 살아도 돼! - 배우 진선규
- 뮤지컬 <위키드>,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꾸만 가게 되는 묘한 클럽, 뮤지컬 <트레이스 유>
-에디 킴, 딕펑스, 어반자카파와 함께한 페스티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 연극 <썸걸(즈)>
    • 부제:
    • 장르: 연극
    • 장소: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 등급: 만 14세 이상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오늘의 책

은희경의 뉴욕-여행자 소설 4부작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포함한 네 편의 연작 소설. 각 작품의 인물들은 뉴욕으로 떠나고,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났을 때 그 곁에 선 이는 타인이거나 한때 친밀하다고 느꼈던 낯선 존재다. 알 수 없는 얼굴들을 바라보다 문득 나와 마주하게 되는 새롭고도 반가운 이야기

성공적인 한국형 투자 전략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로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아낌없는 조언을 전해 준 홍춘욱 박사의 신간이다. 이메일, 유튜브를 통해 받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실제 테스트 결과들로 보여준다. 한국의 경제현실과 그에 맞는 투자 전략을 저자의 실전 투자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시한다.

상상된 공동체, 기원과 역사

베네딕트 엔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상상된 공동체'다. 상상된 공동체인 민족이 어떻게 국가로 이어지고, 민족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었을까? 『만들어진 유대인』은 유대인 서사의 기원과 발전을 추적하며 통합과 배제라는 민족주의의 모순을 드러냈다.

소설가 조해진이 건네는 여덟 편의 안부

SF적 상상력을 더해 담아낸 조해진의 짧은 소설집. 앞선 작품들을 통해 여기 가장 가까운 곳을 이야기해온 작가는 이제 더 나아간 미래, 지구 너머 우주를 그리며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말한다. 이 ‘허락하고 싶지 않은 미래’ 앞에 선 모두에게 한줌의 빛을 건넨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