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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숙 “나만의 고요한 놀이동산, 서재”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작은 우주가 펼쳐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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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변화가 가파른 시대에도 저는 책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피곤한 일상에서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뭔가 해내는 사람들은 결국 책을 놓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라고요.

명사서재-남인숙

 

시도 때도 없이 읽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거실과 침실, 식탁에 각각 다른 책을 두고 내킬 때마다 읽지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잠들기 전입니다.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것은 TV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가 잠을 청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드는 건, 살면서 어떤 문제를 만날 때입니다. 전 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형으로 살아왔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검색을 하기보다 여행안내서 사는 것이 먼저이고,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이면 거기에 해당하는 책부터 찾아보는 식이지요.

 

사실 책을 읽어야겠다는 당위가 압박으로까지 다가올 때는 새로운 책을 사들일 때입니다. 저는 여느 여자들의 쇼핑 중독처럼 책 쇼핑을 즐기는데, 충동적으로 책을 살 때마다 이전에 사놓고 못 읽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듭니다. 요즘 서른을 넘은 한국 여자들의 삶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그와 관련된 책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여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소설, 철학, 에세이, 심리서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요.

 

제가 서재를 이용하는 행태를 볼 때, '나만의 고요한 놀이동산'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곤 하기에 제 서재의 절반 정도는 읽지 않은 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끔 서가에 서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골라 보거나 읽지 않은 책들의 내용을 상상하는 건 생각보다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건 서재를 가지지 못했던 시절, 도서관에서 은밀히 즐겼던 저만의 조용한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작은 우주가 펼쳐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평행우주이론에서처럼 수많은 우주가 응축되어 있고, 각각의 책 한 권에서마다 서로 다른 우주를 탐색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저는 저와 다른 사람의 삶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좀 더 가치 있다고 느끼며 살아낼 수 있다면 무엇이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게 애초 제가 책을 쓰기 시작한 동기였습니다. 이번에 재출간 된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는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고 함께 잘 살아낼 방법들을 찾고 있는 책입니다. 다행히, 저는 이 책이 분명 유효한 방법들을 찾아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삶은 아주 복잡하지만 반면 그 속에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패턴이 있더군요. 문제는 경험과 체화를 통해 이론을 삶에 적용시키는 것인데, 저는 요즘 독자 분들이 약간의 노력으로도 그걸 해낼 수 있을 만큼 영리하다고 믿습니다.

 

요즘처럼 변화가 가파른 시대에도 저는 책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피곤한 일상에서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뭔가 해내는 사람들은 결국 책을 놓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라고요. <채널예스>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이 그런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명사의 추천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저/최염순 역 | 씨앗을뿌리는사람

문학 읽기만을 고집했던 제가 처음으로 읽은 자기계발서였습니다. 간접적으로 유추하기만 했던 인간관계의 전형성이 명료하게 정리된 이 책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의 조언이 아직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떤 시대, 어떤 문화권에도 적용될 인간관계의 원리들이라고 여기며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15권 세트

시오노 나나미 저/김석희 역 | 한길사

역사서라는 책의 장르를 다시 보게 만들었던 책입니다. 역사를 단지 흘러간 과거나 거시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있던 제가, 역사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게 인도해 주었다고나 할까요. 책 자체로도 흥미진진했지만 이후 역사서들을 관심 있게 읽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 책입니다.

 

 

 

 

 

야구장 습격사건

오쿠다 히데오 저/양억관 역 | 동아일보사

일본 인기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독특한 여행기입니다. '여행' 하면 떠올리게 되는 설렘과 새로움, 낭만... 그런 모든 기대들을 배반한 여행기입니다. 원고청탁으로 하게 된 작가의 여행은 우울하고 궁상맞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또 '삶이 별건가, 인생이 별건가, 여행이 별건가.' 이런 생각들로 유쾌해지게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괴팍한 작가와 친해지고 싶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저/박동원 역/최수연 그림 | 동녘

어린 시절 처음 읽었을 때부터 제 딸이 그 나이가 된 지금까지 읽을 때마다 형편없이 무너지게 만드는 책입니다. 작품 속에서 어린 소년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황망함은 어떤 인생에든 대입 가능하고, 소년이 느끼는 감정은 어떤 시점에서든지 공감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입니다. 저는 이 책이 동화로 분류되어 잘리고 요약되어 아이들에게 읽혀지는 게 못내 안타깝습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 저/사순옥 역 | 홍신문화사

쇼펜하우어는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였습니다.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은 어떻게 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했지요. 그래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그를 다시 보게 해 준 게 바로 이 책입니다. 그는 고통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이 지구별에서 현명하게 생존하는 방법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소 독선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인생을 꿰뚫어 보는 그의 시각은, 읽는 이를 절망으로 내몰지 않고도 삶의 파고를 현명하게 넘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음놀이

비수민 저/조성웅 역 | 이랑

비수민은 의사이자, 군인이자,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중국의 유명인사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에 천착하기로 한 그녀가 독자들이 저마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쓴 것이 이 책입니다.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내 마음의 길을 따라 깊이 들어가 보는 건 제게 꽤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통한 복잡한 고찰이 아니더라도 심리학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중경삼림

왕가위/금성무 | 리스비젼

사람들은 자기 청춘을 함께한 음악이나 영화를 영원히 최고로 꼽는 것 같습니다. 제 청춘과 함께했던 <중경삼림> 역시 제 청춘과 함께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음악과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했던 당시로선 아주 새 영화였습니다. 청춘의 슬픔, 갈등, 방황은 감각적인 옷을 입음으로써 꽤 견딜 만 한 것이 되었지요. 상실과 미성숙을 아름다움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은 젊음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산드라 블록/George Clooney | 워너브러더스

딱히 줄거리랄 게 없는 영화도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영화였습니다. 없던 우주공포증을 생기게 하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평생 웬만하면 갈 일 없는 우주에 공포를 좀 느끼면 어떤가요?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의 중력에 새삼 감사와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는걸요. 우주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던 이 영화에서 정작 가장 아름다운 것이 거기서 바라본 지구였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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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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