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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옥주현에게 초록마녀 빗자루 넘겨받아
“다시 엘파바를 못 만난다면 더 늦기 전에 하자!”
엘파바의 경우 기질적으로 접근하기에 편한 부분은 있어요. 저라는 사람도 많이 나올 것 같고, 지금까지 제가 했던 모든 역할의 집합체가 되지 않을까. 엘파바는 굉장히 능동적이잖아요 적극적이고. 그런 것들이 저와 많이 닮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 안에 있는 모습을 꺼내서 편안하게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기자가 처음 뮤지컬 <위키드>를 본 것은 2011년 3월 런던에서입니다. 파워풀한 가창력의 엘파바와 코믹 공주연기의 절정 글린다의 매력에 빠져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누가 엘파바와 글린다를 연기할지 혼자 점쳐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지난해 11월 22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에는 신기하게도 당시 기자가 꼽았던 배우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엘파바에 옥주현, 글린다에 정선아! 솔직히 옥주현 씨는 캐릭터보다는 음색이나 인지도에 있어 엘파바에 낙점되겠구나 생각했고, 정선아 씨는 글린다에 딱이지 싶었는데,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엘파바와 글린다로 완벽하게 변신해 <위키드> 6개월의 여정을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5월과 6월, 에메랄드 시티를 떠나는데요. 옥주현 씨가 먼저 초록마녀의 빗자루를 김선영 씨에게 넘겨줄 예정입니다. 첫 무대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김선영 씨를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나봤습니다.
“옥주현 씨와 저는 사람 자체가 너무 달라요. 그래서 엘파바도 굉장히 다를 거라 생각해요. 나이 들어서 그런지 경쟁이랄 것도 없고 그냥 제 것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역할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거든요.”
지난 2012년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두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올랐다면 이번에는 옥주현 씨에게서 엘파바의 바통을 넘겨받습니다. 김선영 씨라면 그녀가 서왔던 무대가 대변하듯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컬배우지만 아무래도 옥주현 씨와는 미묘한 경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배우마다 장점들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데, 주현이는 확실히 음악이 강해요. 노래를 잘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2막의 에너지를 보면서 ‘그새 이 친구가 또 성장했구나!’ 생각했고, 참 잘한다고 칭찬도 했어요. 지금은 ‘첫공’을 잘 끝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다 같이 연습하고 올린 작품과 달리 저 혼자만 중간에 들어가는 거라서 지금 하고 계신 분들과 합도 잘 맞아야 하고. 긴장되고 복잡하지만, 너무 욕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의 <위키드> 출연은 오디션 과정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조금은 투박하고 거친 몸짓 안에 따뜻함이 녹아 있는 강렬한 음색의 김선영 씨는 엘파바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한 배우이기도 하죠.
“엘파바의 경우 기질적으로 접근하기에 편한 부분은 있어요. 저라는 사람도 많이 나올 것 같고, 지금까지 제가 했던 모든 역할의 집합체가 되지 않을까. 엘파바는 굉장히 능동적이잖아요 적극적이고. 그런 것들이 저와 많이 닮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 안에 있는 모습을 꺼내서 편안하게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폭발적인 가창력과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까요? 그동안 꽤 강한 캐릭터를 맡아 오신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캐릭터들이 여배우들이 선호하는 역할이고 드라마틱한 삶 때문에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말랑말랑한 역할들도 했는데, 강한 역할들을 많이 기억하시는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런 캐릭터를 추구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집중하고 제 안의 것들이 덧입혀지면서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지, 저는 그 인물들이 거칠고 강하다고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렇다면 원래 성격은 어떤가요? 여성적인가요?
“그런 면도 있어요, 정말(웃음). 저를 ‘여장부’ 그런 느낌으로 말하는데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죠. ‘공주과’는 아니지만 겉으로 와일드하게 행동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털털한 편이지 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약간 내성적인 면도 있고, 겁도 많고.”
3년 전 <지킬 앤 하이드> 때문에 김우형 씨와 꼭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때 김선영 씨도 루시로 작품에 함께 참여하고 계셨는데, 당시 두 분 사이는 몰랐네요(웃음). 7살 연하 신랑과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시죠?
“결혼이 괜찮은 것 같아요. 연하 남편도 힘들지 않은 게 저는 오빠 셋에 막내라서 의외로 귀염성이 있답니다(웃음). 우형 씨는 장남이고 굉장히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이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잘 맞더라고요. 그리고 둘 다 에너지가 강한 사람이라서 서로를 살펴요. 조심하는 부분이 있고 밸런스를 맞추니까 거의 안 싸워요. 그래서 잘 맞는 것 같고.”
김우형 씨도 <고스트>로 장기 공연 중인데, 부부가 배역에 푹 빠져있다 보면 한 집에 4명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물론 극장에 가서 역할로 들어갈 때는 철저하게 준비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때는 빨리 빠져나오는 성격이에요. 그런 균형감을 좋아해요, 둘 다. 그게 배우로서도 좋은 것 같고, 장기공연을 할 때도 건강하게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성격에 하루 종일 역할에 빠져 있으면 힘들거든요.”
2세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무척 노래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아기가 예상되는데요(웃음).
“또 모르죠, 열성 인자들만 만날지(웃음). <위키드>를 끝내면 노력해볼까 싶어요. 원래 아기 계획은 없었는데 결혼 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글쎄요, 아기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어떤 존재가 궁금해요.”
김우형 씨도 작품을 통해 만났습니다만, 워낙 쟁쟁한 남자 배우들과 무대에 서 왔잖아요. 가장 잘 맞았던 상대 배우는 누구였나요?
“작품을 할 때마다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들도 저마다의 취향대로 골라보시는 거겠죠. 저는 누구를 만나든 상대배우의 가장 큰 매력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 순간은 가장 잘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게 느껴져요. 그래서 모두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데, (조)승우 같은 경우는 무대 위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아요. 배우들끼리도 기를 주고받는데, 그 친구는 그렇게 안 느낄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밀고 당기는 배우가 아닐까.”
6월부터는 김소현 씨가 정선아 씨를 대신해 글린다 역으로 무대에 섭니다. 두 분이 꽤 친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현이와는 매일매일 연락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이 길을 함께 걸어왔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함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반가웠어요.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때 만나서 여배우로서 걸어온 길이 비슷해서 일까, 뭔지 모를 동지애 같기도 하고. 요즘 연습할 때도 찡할 때가 있거든요. 소현이는 진작부터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나중에 엘파바와 글린다로 섰을 때 남다를 것 같아요.”
여전히 주연 여배우로 당당히 무대에 서고 있지만, 40대에 들어선 만큼 또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할 것도 같은데요.
“그럼요. 그건 정말 자연스럽게 오더라고요. 저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도 주조연을 떠나 제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가야 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껏 나이보다 조금 앞선 역할들을 맡아 왔는데,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 엘파바를 하게 돼서 사실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내가 다시는 엘파바를 못 만난다면 더 늦기 전에 하자’는 생각이 드니까 편안하게 결정이 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노래를 계속 해 와서 그런지 노래보다는 연기적인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게 돼요. 반대로 연기가 안 풀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욕심도 연기적인 부분에서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무대나 역할, 또는 다른 매체에서든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성장과 함께 그 중심을 걸어왔던 만큼 지금 무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할 텐데요.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자기가 좋아하고 꿈꾸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그런데 사람이 본연에 갖고 있는 재료들이 있잖아요. 배우로서의 자질을 잘 파악하는 훈련도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 잘 맞는 것이 모두 중요해요. 이 일은 처음에 좋게 시작해도, 재능이 있다 해도 지치는 순간이 오거든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균형감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정말 좋아한다면 너무 쟤지 말고, 너무 멀리 보면서 지치지 말고, 가다가 산을 마주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 결국은 계속 자기를 돌아보는 훈련인 것 같아요.”
김선영 씨와의 인터뷰는 예상대로 처음에는 조금 서걱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안하게 빠져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딱 엘파바 같아요. 지금 에메랄드 시티에서는 바통을 넘겨줄 옥주현, 정선아 씨 외에 이번 무대로 새롭게 떠오른 박혜나, 김보경 씨도 각각 엘파바와 글린다로 완벽하게 빙의해 관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공연이 6개월에 접어든 만큼 다른 배우들도 각자의 캐릭터를 제대로 흡수한 상태인데요. 그래서 김선영 엘파바가 일으킬 새로운 회로리가 더욱 기대됩니다. 수많은 볼거리와 파워풀한 뮤지컬 넘버, 그리고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이 버무려진 <위키드>는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샤롯데씨어터에서 오픈 런으로 공연됩니다. 어떤 엘파바, 어느 글린다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으니 골라보는 재미까지 만끽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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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