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변함없이 담백한 그의 음악, 이규호 SpadeOne

좋은 음악들로 점철된, 보기 드문 작품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1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이규호의 2집. 아 이규호가 누구냐고요? 단출한 구성안에 녹아든 깊은 가사, 다정한 음색을 들어보신다면 잊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 SpadeOne >은 안정적인 컴백 작품 아니고, 걸출한 수작입니다.

이규호 < SpadeOne >

 

 

이규호

 

 

'오랫동안 마당 한구석에 숨어 앉아 흙에게 얘기해왔지, 언젠가 신나게 난 대문 밖으로 갈 거야.'

 

 

 


첫 곡 「세상 밖으로」의 포문부터 자기고백적이다. 가사 속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라는 인사가 그답게 수줍다. 무려 1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이규호의 2집은 전작보다는 장필순, 윤종신 등 여러 아티스트를 통해 보여 온 근래의 작업들에 맥락이 닿아 있다. 1집에서 나타났던 모던록의 색채는 옅어졌고, 대신 그가 쓴 장필순 7집 수록곡 「맴맴」에서처럼 전자음을 통한 사운드 표현이 강화됐으며, 리듬은 더욱 차분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15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고려했을 때 자연스럽다. 아티스트의 내면적 자아도, 시대와 대중의 음악 감각도 달라질 대로 달라졌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의 변화를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문체로 담아냈기에 신보는 여전한 이규호 음악이고, 그 밖의 것이 될 수 없다.

 

L.jpg

변함없이 담백하지만 그 감성은 소박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그저 둘러치고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서정성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고, 주위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비친다. 기타와 플루트 연주가 귀여운 단어들과 밝게 조화하는 「포크레인」에서는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았고, 건반이 불길한 음을 반복하고 현악기가 위태롭게 활을 긋는 「Virus」에서는 자극적인 가십과 무책임한 옐로우 저널리즘에 포박된 우리 일상을 스케치한다. 경건한 오르간 연주로 시작하는 「너의 길을 홀로이 가라」에서는 '교회 종소리'와 '어린 소년의 기도', '붉은 십자가의 흐느낌'을 '모두 버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텍스트들은 담담한 표정과 착한 음성으로 전달되면서 순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나아간다.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외롭고 기어코 꿋꿋한 순수의 운명을 앨범은 다양한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시계와 말이 없는 동굴 나라'에서 혼자 사는 왕의 이야기를 그린 「없었다」처럼 얼핏 그의 노래들은 미약해 보이지만, 때문에 이 가녀림은 결코 무력함이 아니다. 오히려 발설하지 않는 비타협이다. 앨범 곳곳에 도사리는 외로움도 수동적인 성질이 아닌 외롭고자 하는 의지에 가깝다. 나이와 성별을 의심케 하는, 여리고도 그만의 개성으로 오롯한 미성의 보이스는 그래서 그의 노래에 최적이다.

 

편곡과 곡마다의 사운드 연출력은 노래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일으켜 세운다. 재깍재깍 시계 소리로 시작되는 「뭉뚱그리다」가 대표적이다. 초입과 마지막의 마이너풍 멜로디와는 다르게 밝고도 신비하며 아련하게 전개되는 노래의 액자 구성은 과거 시절을 무조건 아름다운 것으로 뭉뚱그린다는 메시지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앨범에는 이처럼 섬세하게 변조를 오가며 곡에 텐션을 부여하고, 코러스를 두텁게 쌓아 올리며 공간감을 확대하는 구간이 더러 있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에 기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순애의 추억」, 순한 사운드가 별빛처럼 영롱하게 흔들리는 「술취한다」 등 전곡이 각각의 가치를 풍성하게 지니고, 서로 한껏 어우러진다. 한동준, 윤영배, 장필순, 고찬용, 조동희, 오소영 등 하나음악을 계승한 푸른곰팡이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한 소절씩 나눠 부른 「보물섬」은 개별의 존재감과 전반의 조화로움이 함께 깃든 이 앨범의 상징과 같다. 다소 단조로운 음색이 다양한 음악적 채색에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단일한 톤 안에서도 노래마다 다른 감정선을 최대한 표현해내며 위험을 줄였다. 오랜만의 신작이라는 반가움이나 뮤지션이 그간 쌓아 올린 음악적 성과의 아우라를 제쳐두더라도, 이 앨범은 적절하다. 좋은 음악들로 점철된, 보기 드문 작품이기 때문이다.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관련 기사]

-덥스텝 영웅의 재탄생!-스퀼렉스 Recess
- 다채로운 멜로디와 사운드의 만남, 포스터 더 피플
-여전히 기운 넘치는 어린왕자, 이승환 Fall To Fly 前
-돌아온 거장, 조지마이클 Symphonica
- 선데이 서울, 초음속 청춘들의 사운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