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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 어떻게 발견할까”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펴내 글 쓰는 기준, 성찰, 질문, 사색이 있는가! 책을 대하는 태도, 한바탕 춤을 춰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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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도정일이 6년 만에 단독 저서를 펴냈다. 총 7부작으로 펴낼 ‘도정일 문학선’의 1,2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로 독자들을 찾아온 것. 두 산문집에는 20여 년간 도정일이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글들이 묶여있다.

불안한 사회에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지 싶다가도, 금세 뒤쳐질까 봐 생각을 멈춘다. 스마트폰을 쉴새 없이 확인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생각할 여지를 철저히 차단하는 디지털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 인문학자 도정일의 제안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쓰잘데없는 것이 어찌 고귀한 것일 수 있을까? 도정일은 말한다.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네 삶에 지극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고.

 

만나고-도정일교수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 6년 만에 펴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는 20여 년간 도 교수가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글을 묶어낸 산문집이다. 2014년, 지금의 한국 사회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변하지 않은 모습들이 담겨 있다. 행복의 역설과 인문학, 디지털 시대의 우울, 학교를 살리는 길, 부자 이데올로기 등 150여 편의 글을 읽다 보면 ‘사회라는 게 이토록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도정일 교수는 새로운 시대를 말할 때마다, “변화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과 감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 통찰과 감각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바로, 독서다. ‘독서력의 결핍’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빼앗아갔다.

 

“너는 이 지구에 왜 왔는가?” 이 질문은 도정일 교수가 인문학 입문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즐겨 하는 질문이다. 엉뚱한 질문으로 여겨지지만, 이 쓰잘데없어 보이는 질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위대한 실용을 갖는다. 첫째, 정답이 없으므로 우리는 각자 그 질문에 응답할 방법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야 한다. 둘째, 그 질문이 없고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의 모색이 없을 때 우리네 삶은 의미, 가치, 목적을 확보할 길이 막막해진다. 삶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밥으로만 견딜 수 없다. 도정일 교수에 의하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가 인문학의 출발이다. 여기에서 나와 너의 관계, 관계의 건축술이 생겨난다. 호기심과 질문, 생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없이 인간의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정일 교수는 두 권의 책으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은 무엇이며, 별들 사이에 길을 놓는 상상력이 있냐고.”

 

“우리가 영혼의 춤을 가장 잘 출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마음, 타인의 정신, 타인의 영혼을 만날 때이다. 이 만남의 소중한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 ‘책 읽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두 영혼의 만남이 일으키는 신명나는 춤판, 마음의 공동체가 벌이는 즐거운 무도회, 인간이 자기 존재를 들어올리고 확장하는 사계절 축제이다. 거기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가 삶의 품위를 지키고 삶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박한, 그러나 가장 확실한 길이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103쪽)

 

 

문학작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많이 접해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의 서문을 읽어 보니, 서문을 쓰기 싫어 늑장을 부리셨다고요. 그래도 20여 년간의 글을 모아놓으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놀면서 20년을 보냈다고 해도, 의미가 있을 수 있잖아요. 뭐든지 되새겨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동안 내가 썼던 글을 모아놓고, ‘내가 무엇을 썼던가? 무엇을 읽으라고 독자에게 내놓았던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절반은 추려냈는데, 그래도 부끄럽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내 주제에 종이를 크게 낭비하지는 않은 게 아닌가? 나중에 염라대왕한테 크게 야단 맞을 정도는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20년 세월이 담긴 이야기이지만, 지금 사회와 비교해도 크게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이 시대와 관계 있는 이야기들을 뽑아냈습니다. 멀어 보이는 이야기는 다 뺐지요.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게도 바뀌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행복 강박증이나 책 읽는 문화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죠.


시민단체나 사회의 노력이 있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상당히 떠들었지만, 약간의 성취가 있을 뿐 후퇴한 부분도 많고요. 문화적으로도 여전히 전근대적 문화유산 속에 침잠해 있습니다. 권위주의, 연고주의, 서열주의 같은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죠. 다시 말해 합리성의 확장이 성취되지 못했어요. 근대사회가 되려면 어떤 것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확장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려워하고 있죠.

 

오래 전부터 인문학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는데요. 최근 출판계에는 인문학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책은 많이 팔렸지만, 교육계에서 얼만큼 소화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궁극적으로 인문학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문적 가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인데요. 유행처럼 책은 읽지만, 정작 학교에 오면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취업만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2,3년 대학을 다니다 졸업을 앞두면 허망해지죠. 많은 학생이 3학년이 되어서야 인문학 강의실을 기웃거리면서 관심을 둡니다. 1,2학년 때는 아예 관심도 없고 모르죠. 중등교육 때부터 인문학적 교육을 받아 왔어야 했는데, 입시와 같은 특정한 목적을 둔 교육만 받아 왔으니, 작금의 사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깊고 넓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수님께서는 2001년부터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시작해 어린이 전문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했고,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주도하고 계시죠. 지역사회 도서관은 이제 많이 생겨난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도서관에 갈 시간이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기적의 도서관을 설립했을 때, 붐이 일어났죠. 아이들이 엄청나게 도서관을 많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부터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도서관을 온다는 거죠. 4학년부터는 따로 공부할 것이 많아지고, 중학교에 대비하다 보니 도서관을 찾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정책을 짜고 있는데, 문화부에서 할 일이 있고 교육부에서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문학작품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채 졸업을 합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문학을 접할 기회가 박탈된다는 건, 엄청난 손실입니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적 독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데, 그게 열다섯 살부터 입니다.

 

인문학 도서 붐이 일면서, 10대들에게 고전을 추천하는 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고전은 어른이 되면서 다시 읽게 되는데, 청소년 때 읽었던 기억보다 더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경우는 없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고전을 대하는 게 중요한 까닭이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문학전집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게, 제가 고등학교 때입니다. 그 때 읽은 독서량이 저의 평생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인격적 형성이 되는 시기에 읽는 책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성교육 또한 독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교양입니다. 지금처럼 자극이 많은 사회에서는 본질을 챙기는 것이 더없이 중요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융단 폭격을 맡게 됩니다. 자극적인 매체, 광고, 디지털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독서는 시간이 있을 때 하는 게 아닙니다.

 

유행 따라 책을 읽는 경향도 짙습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특징입니다. 마치 피할 수 없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트렌드가 그러니까 끌려가야지’하고 손을 놔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서는 트렌드가 아닙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한때 유행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젊었을 때도 늙었을 때도 휘둘리지 않는 정신의 강건함은 오직 책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온 책 중에 일본 비평가인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가 30대 청년인데, 이 친구에게 있어서 책은 혁명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아주 신선한 이야기였습니다. 일본의 독서 시장이 예전보다 작아졌지만,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만나고-도정일교수

 

 

행복의 열쇠는 ‘질문’

 

과거에는 청춘을 말할 때, 부러운 존재로 여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쓰럽고 불안한 세대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다 보면,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고민이 참 많다는 걸 느낍니다. 가장 큰 고민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방향을 잡았는데, 사회에 나가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다는 걸 느낄 때, 그 괴리를 어떻게 메워야 하냐는 거죠. 자기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 삶의 목적이 있는데 그것들이 실현할 수 없는 이상처럼 여겨질 때 괴로워합니다. 그 다음은 돈 문제입니다. 어떤 학생은 벼락을 맞아도 좋으니, 돈방석에 앉아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싶습니다. 돈을 무시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돈에 시달리지 않을 만큼 물질적인 것을 확보했을 때, 그 때도 여전히 삶의 가치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돈이 없을 때보다 더 괴로워진다는 사실이죠. 돈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돈만 많지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교양수업을 하며 만나는 학생들에게 가끔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나요?


때때마다 생각나는 책들을 추천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책에 대한 정보로 넘쳐납니다. 단순 광고를 넘어 판단의 정보도 많습니다. 책에 대한 추천 글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데, 여전히 학생들은 선생, 친구가 책을 추천해주길 기대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아는 사람이 추천해줬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추천할만한 책 목록을 가지고 다니길 제안하고 싶습니다. 적당히 자기가 아는 책을 추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하나의 문화운동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는 절실한 부탁입니다. 그럴 때, ‘아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 좋더라. 나를 흔들었던 책이 이 책이다”라고 말한다면, 학생들이 책을 다르게 여길 겁니다. 그럴만한 성의와 열정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질문하기 힘든 시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질문을 생각할 여유도 없어 보입니다.


질문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질문이 없으면 교육이 안 되고 탐구를 할 수 없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은 어릴 때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행복의 열쇠가 바로 호기심입니다. 우리는 ‘인문학이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지 않을까?’ 찾아 다니는데, 그런 의미의 정의를 넘어서, 자신만의 목록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을 잃어버린 아이는 자라서 멍청이가 됩니다. 질문은 정신이 살아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뭔가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 바로 ‘호기심’입니다. 그 호기심을 대표하는 것이 곧 질문이고요. 많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질문이 행복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는 ‘글쓰기의 날’을 지정해 서평, 에세이 백일장을 열고 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비교적 잘 쓰는 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 씁니다. 글쓰기는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일입니다. 가끔은 학교에 있는 숲에 들어가서 30분 동안 나무와 대화하고 오라고 합니다. 나무랑 이야기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결국은 자신하고 이야기하는 거죠. 이렇게 한 번도 안 해봤던 일을 하다 보면, 쓸 거리가 생깁니다. 두 번째 학기에는 나에 대한 글쓰기를 넘어 세계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학생들을 독려합니다. 내가 놓여 있는 사회. 환경 등 범위를 점차 넓혀 발전시킵니다.

 

교수님의 글은 언제나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어떤 글을 쓰고자 하는 원칙이 있나요?


글의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칼럼 같은 경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 자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이 담겨져 있나?, 둘째는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문제를 질문으로 제기하고 있는가?, 셋째는 사색이 있는가? 입니다. 이번 산문집 두 편을 펴낼 때, 글을 고른 기준도 다르지 않습니다.

 

만나고-도정일교수

 

 

위대한 것에 대한 감각


이번 산문집 제목이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입니다. 반어적인 표현인데요.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자신의 삶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보름달은 왜 뜨는가’(『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35쪽)에서 보름달이 왜 뜨는지 생각해보며 혼자 실실 웃는 것도 쓰잘데없이 재밌는 일이라고 썼습니다. 1년에 하루만이라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해보자는 것, 이것 참 중요합니다. 고향 마을에 가서 달빛을 보고 있으면, 이 달빛이 완전히 쓸모 없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고추밭의 고추가 햇살만으로 자라는가? 아닙니다. 달빛으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지붕의 뒤웅박은 달빛을 먹고 자라고, 박쥐들은 달빛 속에 날아다닙니다. 아이가 낮에는 햇살 속에서 자라지만 오후가 되어 평상 위에 잠들었을 때, 아이를 키우는 건 달빛입니다. 아이가 고향 마을 골목에서 성장기의 고민을 할 때도 그 곁을 함께하는 건 달빛입니다.

 

‘위대한 것에 대한 감각’(『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39쪽)은 학부모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글이었습니다. 가치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는 일보다 더 귀한 교육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요즘 부모들은 열정이 많아서, 자신이 공부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걸 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동시에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 가치인가’ 가치에 대한 감각을 아이들에게 키워줘야 한다는 거죠. 사람을 사람답게, 인생을 인생답게 만들려면 위대한 것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의미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가치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판단력이 사라진 지식이 백해무익합니다. 지식이 강조되는 시대에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가치에 대한 감’을 아이들에게 익히게 하는 겁니다. 여행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독서 교육,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부모들이 자녀가 초등학생 때까지 독서 교육을 잘합니다. 좋은 책이 뭔지에 대한 판단이 서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자꾸 지식교육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책을 추천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위한 책에 대한 판단이 서야 하는데, 부모 스스로도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작가가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다락을 정리하다가 어머니가 젊었을 때 읽은 소설책을 발견했는데, 어머니가 밑줄을 친 내용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독서교육입니다. 선배, 부모 세대가 읽었던 책을 접할 때 얻는 감회, 이런 걸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매체는 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책은 전원을 킬 필요도 없이,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는 존재입니다.

 

교육은 ‘발견, 연결, 갱신’의 세 가지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결하는 능력은 곧 ‘상상력’이라고 지적하셨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문학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연결’이니까요. 은유라고 하면, 두 개의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두 사물을 붙인 것, 아닙니까? 사랑은 장미라고 말하죠. 단어로만 보면 전혀 상관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두 단어를 연결하면 새로운 의미가 탄생합니다. 역설, 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게 바로 문학입니다. 창조력,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한 줄이라도 시를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나고-도정일교수

 

 

책을 대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무엇일까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떠나서, 책이라는 형태로 온 타자를 나의 대화 상대로 삼아서 “한바탕 춤을 춰야지”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춤 한 번 춰보자라고 생각하면, 한 줄 한 줄이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을 많이 읽고 전부를 읽는 게 다가 아닙니다. 한 줄, 한 편을 읽어도 좋으니까 ‘이 대목 하나랑 춤을 춰봐야겠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 권의 책에서 좋은 글귀 하나만 발견해도 하루가 즐겁지 않습니까? 춤은 즐겁게 때문에 추는 거잖아요. 내 영혼을 춤추게 하는 문장, 글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지금,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지금 방식대로 산다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너무도 암담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옛날에 중국에서 황사가 오면 자연현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야단법석입니다.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 문제와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죠. 점점 사회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세계를 지금의 방식대로 운영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당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살 세대를 대신해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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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저 | 문학동네
도정일은 “지금쯤 우리는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시장에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그것들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시 챙겨봐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1권 표제의 의미를 전한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는 전방위 인문학자의 사상 전반이 총론처럼 제시된다. 그가 은연중 제시한 ‘목록’들이 앞으로 연이어 출간될 ‘도정일 문학선’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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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도정일 저 | 문학동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에서는 그의 ‘목록’ 중 일부가 좀더 구체적으로 집약/제시되고 있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라는 표제는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여자’인 괴테의 어머니 회고록에서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책과 이야기의 개인적?사회적 효용을 ‘문학적’으로 역설하는 두번째 산문집은 저자가 문화운동가로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키고 ‘기적의 도서관’을 짓는 일에 몰두해온 맥락과 함께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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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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