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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만드는 방법

로봇에게도 감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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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이런 가짜 지능이 아닌, 진짜 인공지능을 만들어줄 순 없는 걸까요. 그래서 사람처럼 울고, 웃고, 친구를 아끼고 사랑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요.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유행이잖아요. 연산장치인 컴퓨터가 어떻게 지능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아 그거? 쉬워. 이프 엘스if else 쓰면 되지.”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요. 속칭 ‘뿜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 선배들이 3~4학년이 되면 ‘인공지능 언어’라는 과목을 배운다고 하더군요. 듣기야 많이 듣던 단어였습니다만 한마디로 어떤 원리인지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담당교수님을 붙잡고 ‘인공지능이 뭐냐’고 여쭙자 한 마디로 대답하고 자리를 뜨셨는데 저는 그 말씀에 한참을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교수님의 재치가 재미있어서 웃었을 뿐이지만 나중에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게 되니 그때 교수님의 그 농담이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로봇에게 지능을 넣어 주는 방법

흔히 ‘인공지능’이라고 말하는 자동화 기능의 정체는 대부분이 ‘조건문’입니다. 그러니 IT정보기술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if else’라는 기본 명령어는 정말로 가장 중요합니다. 프로그램 언어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보통 이 명령어를 ‘if A do B else C’라는 순서로 적어 두면 ‘A라는 조건에 충족하면 B를 실행하고, 아니면 C를 실행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실제로 이런 조건문 방식은 생각을 정리할 때나 업무 순서를 정할 때 쓰면 굉장히 편리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은 심심한데 여자친구랑 만나서 놀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칩시다. 이 일이 성사되려면 여자친구가 시간이 있는지, 그래서 나랑 놀아줄 수 있는지, 그 한 가지 조건만 확인하면 됩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집으로 가고, 충족된다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면 되겠지요.

그런데 로봇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컴퓨터로 이런 과정을 처리하려면 조건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사람에겐 당연하다 싶은 것을 로봇은 하지 못하니까요. ‘여자친구를 만나러 집 앞까지 걸어간다’는 한 가지의 일을 실행하려면 사람은 그대로 걸어가면 그뿐입니다. 하지만 로봇은 집과 여자친구 집의 좌표값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정밀한 지도 정보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현재 자신의 위치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빠짐없이 주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한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무릎과 발목을 구부릴 각도까지 조건에 넣어야 합니다. 모터의 힘, 배터리의 잔량,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 수없이 많은 변수를 일일이 다 계산해야 합니다. 실생활에서 로봇이 이런 조건문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쓰는 청소용 로봇, 세탁기, 전자레인지, 아니면 공장 같은 곳에서 물건을 집어 드는 공업용 기계 같은 것은 주변 환경이나 하는 일이 제한적입니다. 이럴 경우는 이런 ‘조건’을 수백, 수천 개 복잡하게 연결해 원하는 작업을 하도록 순서를 지정해 주면 얼핏 보기에 뭔가 자기 스스로 판단을 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전자제품 회사가 자랑하던 그 ‘인공지능’은 결국 수많은 변수를 꼼꼼히 예측한 프로그래밍 엔지니어의 지능인 셈이죠.

이런 조건문을 짜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고, 그런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너도 나도 ‘완벽한 인공지능 구현’, ‘차세대 지능형 프로그래밍 기법’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계의 작동순서는 결국 사람이 정하고 만들어 준다는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로봇에게도 감정이 필요하다

로봇에게 이런 가짜 지능이 아닌, 진짜 인공지능을 만들어줄 순 없는 걸까요. 그래서 사람처럼 울고, 웃고, 친구를 아끼고 사랑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요. 현재 과학기술로 실현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론적으로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예 ‘인공두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도 있는데 스위스 로잔 공대의 헨리 마크람 교수 연구팀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곳에서는 대용량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의 뇌를 가상현실 속에 만들고 있습니다. 먼저 뇌신경 세포 하나를 컴퓨터 속에 가상으로 만든 다음 이런 뇌세포를 계속 추가해가며 서로 신호를 주고 받도록 만듭니다. 그 숫자가 수만 개, 수백억 개로 많아지면 결국 인간의 뇌처럼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진짜 인간의 뇌세포도 ‘뉴런’이라는 세포에서 주고받는 전기자극으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언젠가는 ‘사람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인공 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뇌를 다 만들었다면 그 다음엔 여러 가지 학습을 시켜 주면 지능과 감정을 갖는 것도 가능해진다는 게 마크람 교수팀의 생각입니다. 수십 년 후에, 언젠가 진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공뇌’가 완성되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 완벽한 인공지능이 태어나기 어렵다면, 불편한 진실에 기대더라도 ‘쓸만한’ 로봇을 계속 개발해야 하니까요.


키보: 감정교류로봇

지능을 완전히 만들어 주는게 어렵다면, 먼저 지능으로 표현되는 ‘감정’부터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이런 감정교류 기능은 꼭 필요합니다. 몇 해 전 발표된 새로운 한국형 두발로봇 ‘키보’는 다소 제한적이지만 이런 감정교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키보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개발된 두발로봇입니다. 2011년 10월말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월드 2011’ 행사장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키 120cm, 무게는 43kg으로 휴보나 마루에 비해 조금 작은 편입니다. 로보월드 행사에서 키보는 방긋이 미소를 지으며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화제가 됐지요.

키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걸음걸이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로봇 휴보 개발에 참여했던 김정엽 박사가 도와주어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보 팀의 목적은 ‘걸음걸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연구방식도 의미가 있습니다. 개발을 주도한 김문상 KIST 지능로봇사업단장은 “우리의 관심은 로봇이 가진 감정교류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걸어와서 미소를 지으며 위로의 말을 달래는 로봇이, 바퀴를 타고 굴러와 녹음된 목소리를 틀어주는 로봇보다는 훨씬 더 위안이 될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이미 세상에 개발돼 있는 기술 중 하나를 함께 응용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보입니다.


표정 하나 하나에 숨은 배려

그렇다면 이런 감정교류 기술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인공지능과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인공두뇌를 우선 개발하고, 그렇게 지능과 의식을 갖춘 로봇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적어도 수십 년 간은 그런 인공지능을 개발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조건문’ 방식은 꽤 쓸만한 카드가 됩니다.

키보의 얼굴엔 빙글빙글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와 눈꺼풀,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썹이 붙어 있고, 고무로 만든 입술도 달려 있어서 표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얼굴 표정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그리 대단한 기술이 아닙니다. 조그만 모터로 얼굴에 붙어 있는 부품을 이리저리 움직여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눈썹 양쪽 각각 5도, 입꼬리는 12도 치켜 올라가면 웃는 얼굴. 눈꼬리가 30도 이상 크게 치켜 올라가고 입을 크게 벌리면 화난 얼굴 등으로 지정하는 식입니다.

마음먹는다면 리모콘으로 1번을 누르면 웃고, 2번을 누르면 화내는 표정을 짓도록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입 모양에 맞춰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 기술을 좀 더 발전시켜서 진짜 사람과 똑같아 보이는 얼굴 로봇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미 영화사에서 쓰는 방법으로, 진짜 배우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대역을 만들 때 쓰는 기술입니다. 발포고무와 우레탄 같은 소재로 얼굴피부를 만든 다음, 안쪽에 전기모터와 각종 부품을 설치해 얼굴 표정을 바꾸어 줍니다.

이런 로봇은 로봇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미 접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는 이 기술을 들여와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휴보의 변형 모델 중 하나인 ‘알버트 휴보’가 그것입니다. 그 얼굴을 로봇 ‘휴보’의 몸통 위에 연결해 얹은 것이지요.


잉키: 교육용 로봇(좌), 메로: 교육용 얼굴 로봇(우)

그러니 표정을 만드는 기계적 기술보다 중요한건 ‘감정교류’의 방식입니다. 키보를 만든 지능로봇사업단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영어교사로봇으로 잘 알려진 ‘잉키’와 ‘메로’ 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고 영어 퀴즈 등으로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메로는 교탁 위에 올려 두는 얼굴로봇으로 학생이 수업 중 정답을 잘 맞히면 웃는 표정을 지으며 칭찬하고, 공부를 안 하거나 점수가 너무 나쁘면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최신형 메로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컴퓨터로 분석해 화가 난 얼굴, 웃는 얼굴 등으로 구분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슬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싶으면 함께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키보와 메로가 사람처럼 완벽한 감정교류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술로도 사람과 어느 정도 감정을 교류하는 흉내를 낼 수는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인간에게 도움이 됩니다. 메로나 잉키를 영어교사로 삼은 학생들은 수업효과를 높일 수 있고, 노인들의 기억력 증진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능로봇사업단은 최근 메로를 이용해 치매 노인의 기억력 증진을 돕는 기능을 개발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로봇의 감정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단순히 배에 붙은 컴퓨터 화면만 보여 주기보다는 ‘어르신들, 오늘은 저랑 덧셈 놀이를 해 볼까요?’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로봇. 이런 로봇이 주는 감정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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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보이즘: 나는 대한민국 로봇 휴보다 전승민 저 | MID 엠아이디
미국 헐리우드 영화 「로보캅」 이나 「아이언맨」 이 판타지이고, 일본 혼다자동차의 ‘아시모’가 로봇 산업의 현재라면, 대한민국의 대표 로봇 ‘휴보’의 위치는 어디쯤이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보는 이미 철지난 구제품 아니냐”며, 아직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로봇 산업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일지라도 휴보는 “역대 정부의 전시형 사업”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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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승민

‘현실세계에 도움되는 기술이 진짜 과학’이라는 모토로 국내 과학기술계 현장을 두 발로 뛰고 있는 과학전문기자. 현재 과학전문 언론사 「동아사이언스」 소속으로 ‘대덕연구 개발특구(대덕연구단지 일원)’를 전담해 취재하고 있다. 의료과학「 로봇「 국방과학 등 실용성 높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 대덕연구단지 인터넷 신문 「대덕넷」 취재기자로 근무했다. 「동아일보」 신문 지면에 과학 기사를 쓰고 있으며「 인터넷 과학포털 「동아 사이언스」 일간뉴스 담당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월간 과학전문지 「과학동아」에도 정기적으로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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