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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 “우선 저질러보고 수습해 보세요”

마스다 미리와 ‘나는 오늘도’ 철학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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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미쓰 홍당무>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과 함께한 소규모 독자와의 만남. <마스다 미리와 ‘나는 오늘도’ 철학 한다> 라는 특별한 타이틀 아래, 원하고 먹고 걷는 것에 대한 순도 높은 수다를 나눴다.

《마스다 미리와 ‘나는 오늘도’ 철학 한다》 알만한 사람만 눈치챌 수 있는 이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마스다 미리의 저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주말엔 숲으로』 와 미셸 퓌에슈의 『걷다』, 『먹다』, 『원하다』 를 읽고, 가장 좋아하는 문구와 이야기하고 싶은 도서를 댓글로 남겨야 했다. 퍽 높은 경쟁률을 뚫고 행사에 초대된 예스24 독자들은 각기 다른 궁금증으로 행사에 참여했지만, 닮은 점이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




저지르지 않고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이야기의 실타래는 <미쓰 홍당무>를 연출한 이경미 영화감독이 풀었다. 마스다 미리와 미셸 퓌에슈의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더 많아졌다”는 이경미 감독. 그는 “누구나 살아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삶은 정답이 없는 화두이기에 오늘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독자들은 서로의 고민, 생각을 말하기 전, 자기소개를 나눴다. 첫 번째로 마이크를 든 이경미 영화감독. 알고 보니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영화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학창시절부터 연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 3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28세가 되던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 그 후 단편영화 <잘돼가? 무엇이든>을 연출했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로 참여, 2008년에는 첫 번째 장편 연출작 <미쓰 홍당무>로 제29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연극배우가 꿈이었는데, 집안 반대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수는 없었어요. 그 때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면 어떤 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원하는 일에 대한 꿈을 일찌감치 접은 거죠. 남들이 살아가는 순차적인 인생을 살기로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고, 당시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결혼이 좌절됐어요. 그 순간 인생의 막다른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어요. 이제 나에게 뭐가 있나? 생각했는데, 예전에 버렸던 꿈이 생각났어요. 정말 되게 바보 같게도 ‘영화과에 들어가면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늦은 나이, 다시 대학 원서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이 ‘저지르지 않고는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거였어요. 우선 지르고 수습하자고 생각했죠.”

이경미 감독, 그동안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면 이제부터는 우선 저지르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계획대로 이뤄지는 건 정말 작은 부분이니까.”

영화 <부당거래> <건축학개론> <베를린>은 이경미 감독이 ‘연출자’가 아닌 배우로 출연한 작품이다. 연극배우로서 못다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즐길 수 있는 일이었고, 또 그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베를린>을 끝으로 이경미 감독은 “당분간 연기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든 자신감이 중요해요. <미쓰 홍당무>를 만들고,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고 말해주니까 제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웃음). 그래서 뻔뻔하게 연기를 했는데, 차기작이 늦어지면서 머릿속이 변비 상태가 되어버리니까 자신감이 떨어져서 카메라 앞에서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화이>에 캐스팅된 상태였지만 포기했어요. 아무래도 폐를 끼칠 것 같았어요. 이렇게 10대 시절의 꿈이 사라졌어요.”




멘토링 시스템, 가장 위험하다

이경미 감독의 이야기를 듣던 한 10대 독자는 “대입을 앞두고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조언을 구했다.

“가장 어려워하는 게 조언인데요. 조언이라는 게 내 삶에서 느낀 것이지,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걸, 자연스럽게 알기 마련이에요. 그게 생존 본능이에요. 아직 어린 나이이니까,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답이 생길 거예요. 답이라는 게, 이렇게 앉아서 고민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서 시간을 흘려 보내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멍 때리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이상한 죄책감을 갖는데, 이런 것이 심리를 병들게 해요. 답을 알 수 없을 때는 일단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아요.”
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나인데 이 허전한 느낌은 뭘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p.56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난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p.120
“멘토링 시스템이 가장 위험해요. 한 사람의 삶이 모든 사람의 답일 수는 없잖아요. 사실 그건 판타지일 뿐이죠.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를 살면서, 사람들이 어떤 해답을 찾고 싶어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종교에도 빠지고 운동에도 빠지고, 극심한 다이어트에도 빠지는 것 같아요. 미셸 퓌에슈의 『먹다』도 재밌게 읽었는데, 자기파괴적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한 번쯤은 바닥까지 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거식증에 걸려서 죽지 않는다면, 그 전까지는 거쳐보는 것도 공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절제해야 좋은 것도 있다. 이를 테면,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공포심만큼 소모적인 일은 없다. 이경미 감독은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건, 얻을 게 없는 절대적인 해악의 요소”라고 말했다.




많이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귀한 일이구나

“미셸 퓌에슈의 ‘나는 오늘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시선을 당겼던 책이 『걷다』, 『먹다』, 『원하다』 였어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내가 이것을 어떻게 향유하느냐가 내 삶을 결정할 수 있어요. 솔직히 『원하다』 를 읽으면서는 머리가 더 복잡해졌어요. 질문이 더 많아지는 책이었어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냥 저지르고 나면 답이 나와요. ‘이건 아니구나’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행동이 중요해요. 시간을 절약하려고 자꾸만 생각하고 고민만 하면, 답답해지는 것 같아요.”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원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원하는’ 것인가?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더 좋은 거야. 그래서 나는 이걸 원해’라는 식의 논리에 따라 좋은 쪽을 원한다.-『원하다』 p.37~38

자신이 원해서 결심한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원하다』 p.44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의지와 막연한 희망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단호함이다.-『원하다』 p.94
철학자 미셸 퓌에슈는 의지, 단호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이경미 감독은 “누구에게나 강한 의지가 최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타고난 성격, 기질을 거스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통장 잔액이 얼마가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사람에게 자연을 느끼면서 흙을 밟아보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죠. 내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돼요. 사람들이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선택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 아무거나 선택하지 않아요. 내면에 심지가 있으니까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로 표현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한 직장인 독자는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A라는 직업이 좋아 선택했는데, 적응을 하다 보니 장점이 사라졌고, 그래서 B라는 직업을 선택했더니 A가 그립다고. 이경미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보는 것도 좋다.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38년 인생을 산 저도, 불쑥불쑥 내가 몰랐던 면이 툭 튀어나봐요. 그래서 힘들기도 또 재밌기도 해요. 중요한 건, 내 컨디션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건강하게 살려면 삽질도 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며칠 전, 어떤 분이 제게 ‘감독님은 그래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했어요. 속으로 전 동의하지 않았죠. 다른 사람들보다는 본능에 근접한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어떤 일을 하든지 갈등의 시간은 찾아와요. 완벽한 건 없으니까요. 때로는 이런 오해가 서로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짧다면 짧은 것인데, 살면서 많이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귀하다는 생각이요.”

8명의 독자는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행사장을 찾았지만, 이경미 감독의 솔직한 해답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언제나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을 사는 사람에게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이경미 감독은 말했다. “무엇이든 도피가 되는 순간, 그만큼 감내할 십자가가 커진다”고.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나다운 선택을 하는 것,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책상머리 앞의 고민은 부질없다. 우선 부딪히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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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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