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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좋다”

내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숲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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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추천이 중요할까요? 작품은 제 손을 떠나 출판된 순간 독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고민과 느낌들이 그에 어울리는 책이나 작품을 스스로 찾아가겠지요. 십 년 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던 글에서 십 년 후, 인생을 변화시킬 큰 의미를 발견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순간,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 작은 기적을 꿈꾸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 유년기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병약하기도 했고요. 가난과 부모님의 사상으로 인해 세상에 홀로 버림받은 느낌이었지요. 엑토르 말로가 쓴 『집 없는 아이』 의 주인공 레미가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요. 레미를 통해 세상에는 나처럼 가난하고 슬프고 서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품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커서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을 읽으며, 눈앞의 먹을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숭고한 무언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책 속의 구절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청소년기에는 정신적인 것에 심취하여 헤르만 헷세의『유리알 유희』 를 즐겨 읽었고, 동시에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 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현대인의 소외라는 것에 처음으로 눈 뜨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1980년대에 대학에 다녔고, 알다시피 80년대는 민주화운동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물결을 지켜보면서 민중이라는 것에 눈 뜨기 시작했지요.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를 읽고 비참한 민중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제가 가장 좋아한 소설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돈강을 배경으로 역사의 격동에 휘말린 사람들의 절실하고도 구체적인 삶과 사랑은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극에도 무릎 꿇지 않는 민중들의 생애의 의지와 유머 또한 잊히지 않습니다. 20대를 거치면서 저는 유년기의 제 개인적 체험을 역사 속에서 해석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벌써 장년기군요. 지금의 저는 제 인생에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던 평온한 일상을 회복해가는 중입니다. 역사는 좀처럼 일상을 기록하지 않지만 일상이 있기에 역사도 전진해가는 것이겠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료한 일상.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허무 혹은 열정, 이런 것들을 제 마음속에서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창밖으로 흘러 다니는 바람을 보며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나 마루야마 겐지의 『천일의 유리』 를 아무 데나 펼쳐 읽고 있습니다. 말은 침묵 속에서 배태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제 말은 혼돈 속에서 배태된 것이 아닐까, 반성하며 쉰을 앞둔 저는 제 마음 깊이 침잠하는 중입니다.”


최근 단편소설 『숲의 대화』 를 펴낸 정지아 작가. 이번 작품집은 작가가 5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소설집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봄날 오후, 과부 셋」 과 「목욕 가는 날」, 일본에 번역된 「핏줄」 을 비롯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단편 11편이 실려 있다. 정지아 작가는 만약 자신의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숲의 대화’로 불리고 싶다고 한다. 소설이란, ‘인간이라는 숲 속에서 침묵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진정한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지아 작가는 마음이 담겨 있는 책,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좋아한다. 머리만 움직이게 하는 책, 기술만 담겨 있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읽지도 않는다.

독자들에게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물음에, 정지아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제 추천이 중요할까요? 작품은 제 손을 떠나 출판된 순간 독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고민과 느낌들이 그에 어울리는 책이나 작품을 스스로 찾아가겠지요. 십 년 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던 글에서 십 년 후, 인생을 변화시킬 큰 의미를 발견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순간,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 작은 기적을 꿈꾸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명사의 추천


집 없는 아이

엑토르 말로 원작/고계영 편/이명선 그림 | 지경사

유년 시절에는 엑토르 말로가 쓴 『집 없는 아이』 의 주인공 레미가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요. 레미를 통해 세상에는 나처럼 가난하고 슬프고 서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품었던 것 같아요.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저/류시화 역 | 현문미디어

어린 시절, 『갈매기의 꿈』 을 읽으며, 눈앞의 먹을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숭고한 무언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책 속의 구절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고요한 돈강

미하일 숄로호프 저/맹은빈 역 | 동서문화사

대학 시절, 제가 가장 좋아한 소설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돈강을 배경으로 역사의 격동에 휘말린 사람들의 절실하고도 구체적인 삶과 사랑은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극에도 무릎 꿇지 않는 민중들의 생애의 의지와 유머 또한 잊히지 않습니다.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저 | 문학과지성사

작가는 모든 책으로부터 얻고 있겠지요. 그러나 어떤 책이 저의 어떤 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 는 제 문장뿐만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촌수필

이문구 저 | 문학과지성사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 또한 인간을 보는 마음의 깊이에 영향을 미쳤고, 제 모든 소설에 그 흔적이 조금씩은 드러나 있을 겁니다.



 

 

 

 

파이란

송해성 감독/최민식, 장백지 | 덕슨미디어

인생의 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고, 그냥 좋아하는 영화들은 많습니다. 한국영화로는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좋아하는데요. 오갈 데 없는 밑바닥 인생들의 쓸쓸하고도 따스한 사랑은 언제나 제 마음을 움직입니다.



 

8과 1/2

페데리코 펠리니 | 피터팬픽쳐스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 비테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류의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를 좋아합니다. <매트릭스>나 <토탈리콜>, 심지어는 브루스 윌리스의 전 출연작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하비 케이틀, 마이클 매드슨, 스티브 부세미 | 그린나래미디어 주식회사

한때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 헤드>와 같은 컬트영화에 심취하기도 했고, 빈센조 나탈리의 <큐브>와 같은 미스터리 영화도 즐겨 봤습니다. 장르가 달라서이겠지만 때로 영화는 소설보다 더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설보다 제한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매혹적이기도 하구요. 소설이란 장르 안에서 어떻게 하면 영화와 같은 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매혹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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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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