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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빤한 세상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을까?

『도시탐독』 이지상,『디스이즈타이페이』 신서희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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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명동 여행전문카페 워커바웃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모였다. 최근 『도시탐독』 을 펴낸 여행작가 이지상과 『디스이즈타이페이』 의 신서희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두 작가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설렘과 망설임을 안고 일상을 보내는 독자들과 ‘삶과 여행’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지상, 도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다

이지상 작가는 배낭여행 1세대 여행자로서 그간 스무 권의 여행서적을 펴냈다. 그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은 독자들 내면에 감추어진 북소리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슬픈 인도』,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등을 펴낸 후, 현재는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강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펴낸 스무 번째 저서 『도시탐독』 은 홍콩과 마카오의 도시를 누비며 느낀 삶에 대한 성찰과 도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야 한다.


한창 피가 뜨거웠던 젊은 시절에는 이 꿈틀거림이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 때 나는 삶을 서론, 본론, 결론이 뚜렷하고 목적이 분명한 ‘논문’처럼 대했다. 삶과 여행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세상은 선악으로 분명히 구분되며,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삶은 결코 명쾌한 것이 아님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도시탐독』 p.26

“여기 오신 분들이 다 젊다. 대부분이 20~30대처럼 보이는데 그 나이 때는 이런 희망을 품고 살았다. 지금은 비록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나이 들게 되면 세상의 일원으로 무언가 이루고 인생이 잘 풀릴 거라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비로소 스스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니 더 더욱 세상에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어느 순간 생을 정리하지 못 한 채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 차례의 지각변동 같은 흐름이 지나가고 난 후 세상이 모두 엉망으로 보였다. 뉴스 보다가 과하게 욱하기도 하고 분노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점점 세상에 대해 시니컬한 태도가 생겼다. 그 때 무언가 지탱할게 필요했다.

우리는 계속 살아 가야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인정하고 극복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내린 작은 결론은 삶의 비극적인 상황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아픈 비극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있는 소소한 현실을 느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 기획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그거대로 중요하고, 현재 앞에 있는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야 한다. 삶에 대한 자세를 바꾸려 노력한 이후로는 삶의 기운을 얻었고. 진심으로 치유가 되었다. 그 후에 찾아간 시끄러운 침사추이는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삶은 논문이 아니고 자유로운 에세이기에 이런 현장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중년이 넘어가면 삶의 앞길이 그저 빤해 보인다. 뭐든지 재미가 없고 그저 그렇다. 매일 건조하게 굴러하는 삶에 어떻게 하면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지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열망에서 여행을 할 것이다. 낯선 곳에 가면 좋지만, 자주가게 되면 스스로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 발 딛고 있는 이 도시에서도 그런 걸 똑같이 느꼈다. 도시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다보면, 소음 속에서 무한의 세계에 접속하는 느낌을 받는다. 오지를 열망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언젠가 도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인간의 가장 좋은 터전이 도시이다. 도시에는 아름다움과 애정이 어려 있다. 그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도시탐독』 이다. 예전 같으면 가장 싫어했을 그 도시에 서서 아름다움을 많이 보았고 느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보면 이미지를 사유하는 순간들로 생기를 채울 수 있다. 우리가 찾는 생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가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안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언어의 굴레 속에 산다. 우리가 공유한 언어를 각자의 개별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정의”라고 했을 때 각각의 의미가 다 다르다. 같은 기호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제각각이다. 누구나 자기 머리 안에서 굴절이 일어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쩌면 외양에서 희망을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광동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내게는 아름답게 들렸다. 광동어로 욕을 하는 사람을 보아도 음이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 우리가 의미에 집착하다보면 안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시니피앙 세계에 집중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의미는 뒤로 사라지고 표면적인 소리만 들린다. 여기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음’ 보다는 ‘의미’가 먼저 들어오는 세상이다. 해외에 가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장보드리야르가 말하고자 한 것도 아마 이런 지점이지 아닐까 싶다. 눈에 보이는 외양들이 그대로 예뻐 보이기 시작한다.”

대상이 여행이든 뭐가 되었든 자신이 선택을 했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여행 작가라고 하면 대개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한다. ‘여행작가’는 뭔가 한량적인 직업으로 들리기 쉬운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을 팔아서 생활에 보탬이 되기는 어렵다. 여행작가의 삶은 항상 마이너스다. 그래서 종종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어두운 앞길이 빤히 보여 고민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독자들의 후기를 읽으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 독자 분들 덕분에 이 일을 한다. 여행지에 대한 조언을 많이 물어보는데 늘 대답하기 어렵다. 모든 여행지는 다 다른 의미로 좋다. 마음 끌리는 대로 가는 게 가장 좋다. 100% 정답은 없다. 그 때 그 순간 가고 싶은 곳에 가게 되면, 갔다 온 것 자체만으로 도움이 된다. 세상만사가 그런 것 같다. 대상이 여행이든 뭐든 자신이 선택을 했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홍콩에서의 쇼핑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어쩌면 한국이 더 싸다.
진정한 홍콩스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트래킹 코스를 따라 가보는 게 좋다.





신서희, 홍콩이 중국화 되어가는 게 안타깝다

신서희 작가는 『아이러브홍콩』, 『금요일에 떠나는 베이징』, 『디스 이즈 타이페이』 를 펴낸 직장인 여행작가이다. 그녀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게 휴가를 내어 짧은 코스로 여행하며, 혼자가 아닌 친구와 동행하는 여행을 즐긴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홍콩과 타이페이를 예찬하며 실질적인 가이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홍콩과의 인연은 10년 전이다. 10년 전 홍콩에서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중문과 졸업 후 어학연수 하다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한국에 돌아와 임용고시를 보고 중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2005년 『아이러브홍콩』 을 출간, 그 당시에는 독특한 콘셉트의 책이었다. 홍콩이 정말 좋았고 자주 여행을 갔다. 요즘에는 타이페이에 빠져서 홍콩에 안간지 2년이 넘었다. 오랫동안 찾아가면서 홍콩 반환 직후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홍콩이 굉장히 안타깝다. 홍콩은 1년이 다르게 변해간다. 예전에는 동서양이 교집합 된 독특한 질감의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등소평이 50년은 그대로 두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여행자유화가 시작되었다. 영국스러운 중국이었던 홍콩이 지금은 중국에 훨씬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홍콩이 중국화 되어가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홍콩과 중국의 문화가 다를 뿐인데, 홍콩인들은 중국의 문화를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두 나라를 모두 아는 입장에서 대립이 극화되는 모습을 보면 무엇보다 너무 변화들이 안타깝다. 홍콩에 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람이 많다.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가면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린다. 홍콩인 친구들 역시 괴로워한다. 홍콩이 너무 복잡해졌고 달라졌기에 그렇다. 홍콩과 타이페이는 정말 다르다. 중국, 홍콩, 타이완은 정말 다르다. 대만은 중국과 일본의 합친 느낌이고, 중국의 상해는 홍콩스럽다. 모든 홍콩에는 거대 자본이 들어와서 상해는 홍콩과 거의 흡사해보인다. 화려함이 느껴진다. 홍콩이 좀 더 홍콩스러움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홍콩여행을 계획하신다면 홍콩에서의 쇼핑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어쩌면 한국이 더 싸다. 게다가 굉장히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홍콩은 이제 트레킹이다. 최근 1~2년 사이 홍콩 여행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졌다. 도시에 가면 사실 홍콩스러운 기운을 느낄 새 없이 끊임없는 대기시간으로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트레킹으로 가면 진정한 홍콩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홍콩의 트레킹 코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조성되어 있다. 홍콩을 잘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서양과 동양이 섞여있는 풍광이 최고이다. 동양인들이 많이 없고 한적하다. 서양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 중국 관광객이 덜 몰리는 시즌에 가서 본래의 홍콩스러움을 충분히 누렸으면 좋겠다. 아기자기한 일본스러움은 타이페이가 더 좋고, 도시스러운 복합적인 분위기는 홍콩이 더 좋다. 두 나라 모두 음식은 똑같다. 전혀 차이가 없고 다만 대만이 훨씬 쌀 뿐이다. 원조는 대만이지만 같은 중화권 문화이고 음식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외의 매력은 색깔이 다르다. 두 곳 다 매력적이다.

직업이 있어서 여행은 늘 짧게 다녀오는 편이다. 보통 직장인들처럼 다녀온다. 누가 1년 경비를 대줄테니 세계여행을 다녀오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할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함이지 주가 되는걸 원치 않는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시코쿠에 다녀왔다.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여행지로 들릴 것이다. 시코쿠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온천이 있고 시골 여행을 다니기에 좋다. 하루에 한군데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여행을 했다. 시코쿠는 정말 강추 여행지이다. 게다가 아직 한국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행하기에 더 좋다. 남들 다 가는 코스를 가지 않는 여행이라면 어디든 좋은 것 같다.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시골마을. 개인적으로 어떤 이슈를 가지고 가거나, 뭔가를 느끼고자 한다면 그 어디라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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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독 이지상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배낭여행 1세대로서 ‘오래된 여행자’라고 불리는 작가 이지상이 스무 번째 작품을 펴냈다. 이 책은 그나 지난 20여년간, 홍콩과 마카오를 여행한 기록이자, 현대인의 삶과 도시의 내밀한 풍경을 담아낸 에세이다. 젊은 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그가 남긴 19권의 책에 이어 이번 신간에서 작가가 주목한 곳은 ‘도시’다. 도시를 벗어나 세상을 거닐어왔던 그가 도시에 매료되어 “도시가 좋아졌다”면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그늘, 역사와 일상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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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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