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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이 책은 내게 위안이고 쉼이었다”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 로 번역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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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이 번역자로 독자들과 만났다. 그가 직접 번역한 소설은 작가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국내 독자들에게 시쿠 부아르키의 작품이 소개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부다페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루시드폴이 최초다.

크리스마스를 엿새 앞둔 12월 19일의 저녁, 북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에서 가수 루시드폴을 만났다. 이 날 루시드폴은 초대 가수도 작가도 아닌, 번역자로서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질의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 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뮤지션이자, 현대 포르투갈어 문학계에서 손꼽히는 작가다.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으로 영국에 맨부커상이 있다면 브라질에는 자부치상이 있다. 『부다페스트』 는 바로 그 상을 시쿠 부아르키에게 안겨준 작품이고, 이후에도 그는 『엎지른 모유』 로 두 번째 자부치상을 수상했다. 올해 초 남진희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된 『엎지른 모유』 이후, 시쿠 부아르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루시드폴의 『부다페스트』 번역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의아함을 안겨줬다. 놀라움은 그의 다재다능함에서, 의아함은 그가 번역한 낯선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음악인이자 화학자로 활동하며 뛰어난 두뇌와 탁월한 감성을 모두 지녔음을 입증한 그는,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는 듯 가사집 『물고기 마음』 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을 출간했다. 그리고 올해 초 소설집 『무국적 요리』 를 세상에 내어 놓음으로써, 기어이 대중들로부터 ‘이 남자의 재능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감탄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놀라기는 일렀고 재능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소설 『부다페스트』 를 직접 번역했으니. 남미문학을 전공하기는커녕 포르투갈어를 배워본 적도 없는 그가, 심지어 브라질을 방문한 적도 없다는 그가 어떻게 혼자 힘으로 번역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보다 먼저, 그는 왜 생소한 남미의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부다페스트』 의 북 콘서트에서 그 모든 이야기들이 공개됐다.




첫 눈에 반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생각나는 사람 같아요

자신의 노래 「길 위」 와 「강」 에 실어 보내는 루시드폴의 첫 인사는 감미로웠다. ‘안녕하세요, 루시드폴입니다’라는 흔한 인사말 없이도, 그는 특유의 느릿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속삭이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난 뒤, 또 다른 한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소설가 황경신이었다. 그녀는 독자들을 대신해 『부다페스트』 와 루시드폴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두 차례나 읽으면서도 이야기가 너무 잘 읽히고 흥미진진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매력 있는 이야기이면서, 자신이 보증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번역서라는 것이다.

황경신 : 시쿠 부아르키는 어떻게 알게 됐어요?
루시드 폴 : 브라질 음악을 지금도 좋아하지만 한창 좋아할 때는 거의 브라질 음악만 들을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보사노바를 좋아해서 브라질 음악 팬으로서 좋아했는데, 조금씩 알게 될수록 찾아 듣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때마다 꼭 들어가는 이름이 시쿠 부아르키더라고요. 작곡도 그렇지만 특히 작사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어요. 시쿠 부아르키는 목소리가 독특한 사람이에요. 달콤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가창력이 있는 목소리는 아니에요. 그래서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들을수록 매력이 있더라고요. 외모가 내 스타일도 아니고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계속 생각나는 사람, 그런 느낌이었어요.

황경신 : 브라질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 나라가 너무 좋아서 가면 상처받을까봐 그랬다고요. 브라질 음악과 기질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나요? 브라질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루시드 폴 : 마냥 좋았어요, 그냥. 이유를 찾기 어려울 만큼요. 힘들거나 지칠 때 힘이 되는 음악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음악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유를 불문하고 마냥 좋아했던 기억 밖에 없어요.
황경신 : 포르투갈어를 익힌 것도 가사를 알고 싶어서였나요?
루시드 폴 : 저는 기타를 치는 사람이니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잖아요. 처음에는 코드를 따고 발음 나는 대로 적어서 불렀어요. 그러다가 가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본적인 문법책을 조금씩 읽었고요.

황경신 : 저도 번역을 몇 번 해봤는데요. 사실 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중간에 『무국적 요리』 라는 소설도 쓰셨잖아요. 직접 글을 쓰실 때와 번역을 할 때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루시드 폴 : 둘 다 너무 어려워요(웃음).
황경신 : 어려운 건 당연하고요(웃음). 번역의 좋은 점은 무엇이었나요?
루시드 폴 : 두려움이 많았죠. 제 책은 엉망으로 쓰면 그만큼 제가 사람들에게 매를 맞겠지만, 번역은 작가가 욕을 먹을 수도 있고 또 사람들은 진위 여부를 알 수가 없잖아요. 그건 생각만 해도 너무 아찔한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걸 제가 오역하면 저자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거잖아요. 제가 포르투갈어 전공자도 아닌 상황에서 정말 잘해야 되겠다는 중압감과 두려움이 있었죠.

황경신 :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혹시 보셨나요?
루시드 폴 : 네, 우리나라에 개봉이 안 됐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게 구해서 봤어요. 포르투갈, 브라질, 헝가리의 합작 영화로 소개가 되어 있더라고요. 원작하고는 많이 달라요. 각색도 많이 됐고요. 그래서 조금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굉장히 매혹적인 영화였어요. 영화의 끝 장면에는 시쿠 부아르키가 카메오로 나와요.




마치 한 몸처럼 닮아 있는 사람이 좋아요

『부다페스트』 에는 대필 작가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흔들리는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집착이 그려져 있다. 모국인 브라질을 떠나 헝가리에 도착한 주인공 ‘주제 코스타’는 여자친구 ‘크리슈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헝가리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어쩌면 모든 연인들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루시드폴의 경우는 어떨까. 소설가 황경신은 대화의 주제를 연애로 옮겨갔다.

황경신 : 『부다페스트』 에 “헝가리 속담에 이르길 헝가리 바깥에는 삶이란 없다고 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녀는 속담을 그대로 받아들이듯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고 살았으며 어디에서 왔는지 등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하잖아요. 이런 여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루시드 폴 : 이상해요(일동 웃음). 처음에는 멋있다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진짜 관심이 없는 거잖아요. 관심이 없는 게 아니면 본인의 관심사가 아닌 거죠.
황경신 : ‘과거는 과거이고 나는 지금의 순간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루시드 폴 :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잖아요. 물론 그게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황경신 : 상대방이 루시드폴의 어떤 모습을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루시드 폴 : 처음에는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보고, 그게 매력으로 느껴져서 맺어지겠죠.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다 알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나에 대해서 감출 수가 없는 거죠.
황경신 :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기 때문이죠? 루시드폴에게도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이 있고, 작가로서의 모습도 있을 테고,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한 여자에게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요?
루시드 폴 : 한 여자에게는 좋은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황경신 :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예요?
루시드 폴 : 잘 맞는 사람이 아닐까요? 저는 저와 다른 사람과 좋은 궁합이 맺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가장 비슷한 사람, 너무 비슷해서 한 몸 같은 사람이 좋아요. 목욕탕에 비유하면, 어떤 온탕은 너무 미지근해서 내가 어떤 탕에 들어왔는지 모를 때가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좋아요. 저와의 온도 차이가 안 나는 사람이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접점이 정말 안 찾아지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게 처음에는 다름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른 매력에 끌려서 사귈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계속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되고 다른 취향, 다른 정서, 다른 감성, 그런 것들이 결국은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황경신 소설가와의 대화를 마친 후 루시드폴은 6곡의 브라질 음악을 들려주었다. 첫 인사가 그러했듯이 그는 마지막 인사도 음악으로 대신한 셈이다. 모든 곡들은 시쿠 부아르키가 직접 곡을 쓰거나 노랫말을 붙인 것들이었다. 루시드폴의 곁에는 그처럼 브라질의 음악을, 그리고 시쿠 부아르키를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자리했다. 연주하는 악기도,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도 다른 이들이 함께 모였다. 다른 듯 비슷한 듯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처럼, 시쿠 부아르키의 음악도 루시드폴의 그것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시쿠 부아르키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것처럼. 아마도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루시드폴이 그렇지 않았을까.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뭔가 알 수 있을 듯한 그 만남은 『부다페스트』 와 독자들 사이에서 다시 재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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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시쿠 부아르키 저/루시드 폴 역 | 푸른숲
모국 브라질에서 성공한 대필 작가가 낯선 나라 헝가리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기묘한 삶과 사랑을 다룬 이야기 『부다페스트』가 출간되었다. 작가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평단의 인정을 받는 작가로 브라질의 아픈 현대사를 함께해온 의식 있는 예술가이다. 이 책은 익명의 그늘 아래 숨죽여 살아야 했던 유령 작가의 불완전한 자기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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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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