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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 -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 D.821>

악기를 위해 작곡된 유일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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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됐던 이 곡은 오늘날 첼리스트들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로 남았습니다. 감상에 특별히 어려운 부분을 없을 듯합니다. 3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뤄졌는데 전체 연주시간은 20분 남짓입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들으면 되는 곡입니다.

2013년의 마지막 칼럼입니다. 며칠 새 멈추지 않는 혹한에 몸도 마음도 자꾸 얼어붙습니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세밑을 바라는 마음이야 다들 똑같겠지만 세상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온통 뒤숭숭합니다. 오늘은 칼럼을 쓰기 전에 한 줌의 모닥불과도 같은 음악을 내내 궁리했습니다. 슈베르트의 얼굴이 어른거렸고, 그가 1824년에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 D.821’이 떠올랐습니다. 연주시간 약 20분의 비교적 짧은 곡입니다. 슈베르트의 ‘중요한 작품’으로 거론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려한 선율미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지요. 세밑의 따뜻한 음악선물로 당신에게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출처: 위키피디아]

슈베르트의 음악적 뿌리는 역시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그의 어린 시절을 한번 복기해 볼까요. 알려져 있다시피 슈베르트는 소년 합창단 출신입니다. 열한 살이던 1808년에 오스트리아 빈 궁정의 소년합창단으로 들어갔던 것이지요. 오늘날 빈소년합창단의 전신입니다. 물론 이 합창단 출신의 대가는 슈베르트 말고도 또 있지요. 바로 하이든입니다. 한데 하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슈베르트도 변성기에 이르러 합창단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1813년 가을, 목소리가 슬슬 걸걸해지기 시작한 슈베르트는 매주 성가를 불러야 했던 의무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니까 5년 동안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했던 것이지요. 훗날 교사직을 스스로 때려치웠던 슈베르트의 기질로 볼 때, 어린 슈베르트가 매주 예배 시간에 성가를 부르는 것을 그다지 신나는 일로 여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슈베르트는 매우 중요한 음악적 교육을 받습니다. 빈 궁정에 소속된 음악가들이 합창단 아이들의 음악선생이었는데, 그중에는 물론 당대의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도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빈 궁정악단의 악장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노래하는 소년기’를 보낸 슈베르트가 음악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바로 가곡(리트, Lied)을 통해서입니다. 3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그는 자그마치 1000곡이 넘는 음악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약 600곡이 가곡입니다. 사실 낭만주의를 선도했던 장르는 음악 이전에 문학(시)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문학의 낭만주의가 음악으로 유입되는 장면에 바로 ‘가곡’이 중요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역할이 특히 컸지요.

한데 슈베르트의 가곡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은 어떻습니까? 매우 염세적입니다. 제가 올해 초에 썼던 <겨울 나그네>(<내 인생의 클래식 101> 1월 21일자)를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를 보여주는 경우들이 많은데, 안락한 꿈에서 깨어보니 현실은 혹독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외롭다는 술회들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슈베르트가 18세이던 1815년에 작곡했던,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은 또 어떻던가요? 이 가곡은 늦은 밤에 마차를 타고 달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아들은 얼굴을 가린 채 아버지에게 마왕이 보인다고, 마왕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호소하지요. 물론 여기서 마왕은 사신(死神)을 상징합니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그건 안개일 뿐이란다, 어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집으로 가자”면서 아들을 달래 서둘러 집을 향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됐나요? “그런데 품속의 아이는 죽어 있었네”라는 가사로 끝나지요. 이렇듯 그의 가곡은 염세적 세계관으로 가득합니다. 가곡은 물론이거니와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실내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출처: 위키피디아]

슈베르트의 음악을 거론하면서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의 밤)입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었던 예술 모임, 일종의 동아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밤마다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고 문학을 토론했을 뿐 아니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겠지요. 슈베르트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아홉 살 연상의 친구 요제프 슈파운(1788~1865), 시인 요한 마이어호퍼(1787~1836),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1796~1862), 하이 바리톤으로 유명했던 당대의 성악가 미하엘 포글(1768~1840) 등이 이 모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슈베르트와 사창가를 함께 기웃거렸던 시인 프란츠 쇼버(1796~1882)도 당연히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슈베르트는 이렇듯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현실의 궁핍을 위로받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음악은 번듯한 콘서트홀보다는 작고 은밀한 살롱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중요한 시대적 상황이 깔려 있습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몰려들었던 것은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요?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수습을 위해 빈 회의가 열렸던 1815년부터 1848년의 3월 혁명까지를 가리킵니다. 빈 회의를 주재했던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철혈재상 메테르니히(1773~1859)였지요. 겉으로는 유럽 열강의 번영과 조화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질서를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 반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왕정복고 시대로도 불립니다.

어땠을까요? 살벌하고 억압적인 경찰국가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그러니 젊은 예술가들이 아지트로 숨어들 수밖에요. ‘광장에서 밀실로’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던 ‘슈베르티아데’는 바로 그런 시대의 산물입니다. 어쨌든 슈베르트는 이렇듯이 살롱이라는 공간에서 수많은 가곡과 사중주, 삼중주, 이중주 등 실내악 분야의 음악들을 친구들과 연주했습니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작곡연도는 1824년입니다. 빈의 악기 제작자인 게오르크 슈타우퍼가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악기를 고안해 제작한 해가 그보다 한 해 전이었습니다. 아르페지오네는 첼로와 비슷한 악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타처럼 6개의 현을 가졌는데 활로 켜서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악기의 발명자와 함께 지상에서 사라졌으니 수명이 짧았다고 해야겠지요. 지금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악기 박물관에 한 대가 소장돼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된 음악으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슈베르트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1823년 여름에 성병에 감염된 데다 우울증까지 겹쳤던 것이지요.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독 치료로 머리카락마저 빠져 버린 슈베르트는 1824년 3월 친구인 레오폴트 쿠펠비저(슈베르트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나”라고 쓰고 있지요. 또 같은 해의 일기에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하지만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이지요.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

‘아르페지오 소나타’는 이런 시기에 작곡됩니다. 1824년 11월에 곡을 완성해 그 해가 가기 전에 아르페지오네 연주자였던 빈센초 슈스터(Vincenz Schuster)와 슈베르트가 함께 연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맡았겠지요. 연주 장소는 당연히 빈이었을 텐데, 정확하게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질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던 슈베르티아데의 모임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악보로 출판된 시기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뒤인 1871년이었습니다. 일종의 유작이었던 셈이지요.

애초에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됐던 이 곡은 오늘날 첼리스트들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로 남았습니다. 감상에 특별히 어려운 부분을 없을 듯합니다. 3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뤄졌는데 전체 연주시간은 20분 남짓입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들으면 되는 곡입니다.

다만 기억할 것은 ‘노래‘입니다. 1악장 도입부에서 피아노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 이어서 첼로가 이어받는 그 느릿하고 슬픈 노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첫 네 개의 음은 슈베르트의 걸작으로 남아 있는 ‘미완성 교향곡’에도 등장합니다. 아다지오 템포의 2악장은 그야말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느낌이지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기악적으로 발전하지만 그래도 ‘노래’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첼로의 넓은 음역을 만끽할 수 있는 악장입니다. 마지막 3악장은 2악장에서 나타났던 가곡풍의 선율을 첼로가 이어받으면서 시작합니다. 중간부에 나타나는 헝가리풍의 민속 리듬, 마지막 코다의 깊은 애수를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겨울 혹한, 마음마저 추운 이들에게 이 음악을 띄워 보냅니다.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ㆍ브리튼(Benjamin Britten)/1968년/Decca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브리튼의 협연이다. 스케일이 크고 음량이 풍성한 녹음이다. 오랫동안 1순위 레코딩으로 꼽혀왔다. 이것이 과연 슈베르트적인 해석인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기도 하지만, 처음 음반을 구입하는 이들에게는 필청반으로 권할 만하다. 이 유명한 레코딩은 여러 가지 형태의 앨범으로 출시돼 있는데,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빨리 구입할 수 있는 라이선스 음반을 추천음반 목록에 올려놓는다. ‘아르페지오 소나타’ 외에 슈만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민요풍의 5개의 소품’,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를 커플링했다.



마이스키(Mischa Maisky)ㆍ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1984년/Philips

미샤 마이스키의 ‘노래하는 첼로’를 만끽할 수 있는 녹음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처럼 호방한 스케일을 보여주진 않지만, 유려한 가창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들을 만한 연주를 펼쳐낸다. 이때는 마이스키가 아직 40대였을 시절인데,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근래의 연주에 비해 훨씬 정제된 소리를 들려준다. 유연하게 흘러가는 깔끔한 연주다. 물론 이 녹음이 호연으로 남을 수 있게 된 이면에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커다란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슈만의 곡들을 커플링한 앨범이다. ‘민요풍의 5개의 소품’과 ‘환상소곡집 op.73’이다.



안너 빌스마(Anner Bylsma)ㆍ요스 판 임머젤(Jos van Immerseel)/Sony Vivarte

원전연주, 혹은 정격연주로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맛보려면 역시 이 음반이다. 앞의 두 녹음과 완전히 맛이 다르다. 특히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와는 정반대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안너 빌스마는 이 녹음에서 5현으로 이뤄진 ‘Violoncello picolo’를 사용한다. 그의 제자인 비스펠베이도 애용하는 고악기다. 첼로와 비올라의 중간쯤 되는 음향을 들려준다. 임머젤은 포르테 피아노의 부드러운 음향으로 호응한다. 담백하고 정갈한 연주라고 할 만하다. 낱장 CD로 구성된 음반은 국내에서 구입이 어렵지만, 그 대신 소니에서 발매한 5장의 전집으로 구할 수 있다. 이 전집은 표지가 영 허술하지만 그 속의 내용은 꽤 알차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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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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