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시한부 인생 6개월을 선고받은 한 남자가 벌이는 엉뚱하고 기막힌 이야기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때야말로 즐거운 일을 떠올려야 한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20여 년간 일본 예능방송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온 히구치 타쿠지는 어느 날 다음 프로그램의 기획에 대해 고민하다 ‘인생 최악의 곤경에 처한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획의 단초는 점점 발전하게 되고 급기야 ‘그 남자’는 일에 파묻혀 앞만 보고 달려온 자기 자신의 모습과 중첩되었다. 결국 아이디어는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 소설의 기획이 되어 시한부 인생 6개월을 선고받은 한 남자가 벌이는 엉뚱하고 기막힌 한 편의 이야기로 탄생되었다.

소리 나는 책

오늘 소리 나는 책에서는 ‘책, 임자를 만나다’에서 소개해드린 김승옥 작가의 단편 중에서 『무진기행』을 읽어 드리려 합니다. 『무진기행』은 어느 문장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명문이라 어떤 부분을 읽어드려야 할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첫 번째 챕터를 전부 읽어 드리려 합니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 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 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데드롱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로 갈아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골사람들답지 않게 앉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을 반수면(半睡眠)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시찰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 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께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무진기행』 (김승옥/민음사) 中에서


에디터 통신

한때 버킷리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상정했을 때 삶은 절실하게 다가오고 1분 1초가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지기 마련이지요. 비극적 설정이 주는 절박한 감동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꽤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만일 정말로 짧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여러분은 마지막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 같으신가요?

제가 소개해드릴 소설의 주인공은 상상을 초월하는 계획을 꾸밉니다. 죽기 전에 아내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시한부 인생 6개월 동안 아내를 결혼시키려는 한 남자의 기막힌 이야기를 그린 소설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를 편집한 한수미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히구치 타쿠지는 원래 일본의 유명한 버라이어티 방송 프로그램 작가입니다. 새로운 기획 아이템을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인생 최대의 곤경에 처한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획의 단초는 발전하고 급기야 곤경에 처한 남자의 모델은 20여 년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자기 자신의 모습과 중첩되었고, 결국 죽기 전에 아내를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소동을 다룬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미무라 슈지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작가입니다. 그는 20여 년간 예능방송을 기획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급작스레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으며 앞으로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 6개월 동안 그가 하고 싶은 것은 철저히 이 소식을 숨긴 채 가족의 앞날을 위해 아내의 새로운 남편감을 찾는 것입니다.

맞선파티에도 나가보고, 결혼활동 책을 쓴 작가를 찾아가 상담도 받고, 지인들 중에서 아내의 배필감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결국엔 결혼상담소를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는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아내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부인은 남편의 엉뚱한 계략에 넘어갈까요?

이 소설의 매력은 슬픔의 소재를 따뜻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낙천적이면서도 유쾌한 필력에 있습니다. 촌철살인의 유머 끝에 감도는 반전의 카타르시스는 대중과 오래도록 교감해온 베테랑 방송작가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소설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의 위기를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때야말로 즐거운 일을 떠올려야 한다”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저는 밑줄을 그었습니다. 인생 최대의 곤경에서도 밝고 즐거운 일을 떠올리는 일. 하루하루 자기만의 무거운 고민에 휩싸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단순하면서도 귀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cats.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