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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복수의 이면과 표면, 그 사이의 갈등 <더 파이브>

다섯이 있어야 가능한 완벽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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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겨울을 앞둔 요즘 새로운 복수 이야기가 더해졌다. 정연식 감독의 <더 파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역시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공정사회>


<친절한 금자씨>

공권력의 무능함에 맞서 사적 복수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꽤 많이 되풀이 되어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2005년 <오로라 공주>, 2012년 <돈 크라이 마미>, 2013년 <공정사회> 속 엄마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딸들을 위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 한다. 2005년 사적 복수의 기회를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던 피칠갑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도 이젠 하나의 클리세가 되었을 만큼 익숙하다. 하지만 무능력한 공권력과 터무니없이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 하는 사회제도 속에서 ‘공분’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엄마들은 자신과 자신의 아이, 가족을 보호해 주지 못했던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사적 복수의 칼날을 빼들 수밖에 없다. 이들의 복수극은 어떤 법적 옹호나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그 결말은 언제나 복수의 쾌감 대신 씁쓸한 뒷맛을 남겼고, 그녀들의 복수는 늘 쓸쓸했다.


스산한 겨울을 앞둔 요즘 새로운 복수 이야기가 더해졌다. 정연식 감독의 <더 파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역시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선 복수극과 꽤 많이 다르다. 여주인공 고은아의 사적 복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녀의 복수를 도와주는 이유에 애당초 ‘선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불구로 만든 그 놈을 잡기 위해, 주인공 고은아(김선아)는 자신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 4명을 모아 복수조직 ‘더 파이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고은아의 장기를 얻기 위해 모인 넷의 역할은 지극히 세분화되었기에, 고은아를 포함한 다섯 명이 모두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 복수는 완성된다. 불구가 되었기에 고은아는 뛰고 구르면서 온 몸을 내던진 모성의 사투가 불가능하기에 철저하게 네 명의 조력자와 함께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엮여야 완전체가 된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고은아의 장기를 대가로 모인 네 명 중 흥신소에서 일하는 정하(이청아)는 살인마의 위치를 탐색하고, 탈북자 남철(신정근)은 살인마의 집에 침입, 조폭 출신의 대리운전기사 대호(마동석)는 살인마를 제압, 외과의사인 철민(정인기)는 그들을 후방에서 지원한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자신을 창조주로 여기며 어린 영혼들을 제물로 삼는 살인마 재욱(온주완)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하지만, 지독한 악인으로 묘사된 연쇄 살인마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영화화된 강풀 원작 웹툰과, 윤태호 작가의 『이끼』, 훈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아주 많은 인기 웹툰이 영화화 되었고, 기안84의 『패션왕』, 하일권의 『목욕의 신』 등의 인기 웹툰도 영화화될 예정이다. 2011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더 파이브>도 탄탄한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전개로 큰 인기를 끌었기에 영화화의 수순은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더 파이브>가 앞선 작품들과 다른 점은 원작자인 정연식 작가가 스스로 연출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더 파이브>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작’에 가장 충실하면서 원작을 훼손하지 않은 채 주인공 은아의 황폐해진 내면을 제대로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원작 웹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머 코드도 영화 속으로 무리 없이 끌고 들어왔다. 원작을 접하지 못한 관객들이라면 잔혹 복수극을 기대하겠지만, 온주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더 파이브>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복수의 이면에 서브플롯으로 자리한 고은아의 장기 쟁탈전은 소란스럽고 웃긴 소동극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작의 묘미를 잘 살린 연출이라는 절대적인 장점은 역설적으로 <더 파이브>의 가장 아쉬운 지점이 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과잉된 감정의 절제가 필요했다. 특히 복수를 위해 모인 다섯 명이 복수에 천착하지 않고 ‘장기쟁탈전’을 벌이는 후반부, 복수극이 갖춰야 할 스릴 대신 갑작스러운 반전을 되풀이 하면서 극적 긴장감이 오롯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로 오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제목인 <더 파이브>가 무색하게 은아의 두뇌와 대호의 힘이 만나 이뤄진 콤비의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후반부에서 제목은 <더 투>가 되어야 맞을 것 같아 보인다. 정연식 감독은 혼자 이야기를 이끌고, 만들고 세공해 내는 웹툰의 속성처럼 촘촘하고 세밀한 작업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은 충분히 발휘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니 품에 안고 있는 ‘남의 새끼’에게 감히 충고를 해 줄 조력자도 옆에 두고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 뻔 했다.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모였기에 앙상블을 기대해보아도 좋겠지만, <더 파이브>의 인물들의 관계망은 애초에 탄탄하지 않았기에 영화는 배우들의 개인기에 더욱 의지하게 되는데, 그 중 주인공을 맡은 김선아는 기대 이상이다. 주인공 고은아, 남편과 자식을 잃고 자신마저도 하반신 불구가 되어 버린 한 여인,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절대적인 공감을 얻기에 어려운 인물이다. 데뷔 이후 주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던 김선아는 처음 맡은 비극적인 인물을 생기 없는 표정과 무감각한 말투로 매끄럽게 소화해 낸다. 또한 연쇄살인범 역할의 온주완은 자신을 창조주라 여기는 매력적인 살인범 재욱이 되어 섬뜩한 느낌을 잘 전달하며, 능청스럽고 뻔뻔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다. <이웃사람>에서도 웹툰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연기를 보이더니, <더 파이브>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마동석을 비롯해 정인기, 이청아, 신정근 등의 배우는 제 위치에서 정확한 제 몫을 해 낸다.


웹툰 <더 파이브>의 핵심은 복수가 아니었다. 복수를 해야 하는 당위성의 이면에는 ‘가족애’와 ‘휴머니즘’이 깔려있다. 당연히 영화 <더 파이브>의 핵심도 복수가 아닌 ‘가족애’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 속 복수극은 충분히 다른 그림일수도 있고, 다른 그림이기도 해야 한다. <킬 빌> 시리즈처럼 ‘복수’의 완벽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순수 오락 영화 속에서도 복수의 당위성과 그 정당성은 살아 있어야 한다. 핏빛 복수의 목적이 순수 오락인지,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변화인지, 부득불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키려는 것인지는 조금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사적 복수의 이면에는 당연히 절절한 가족애가 움트고 있겠지만, 사적 복수의 표면은 충분히 잔혹하고 후련해야 하지 않을까?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영화 속 캐릭터에게만 책임 지우는 건 좀 무책임한 결말 같아 보인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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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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