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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기 전에, 사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자

오늘도 돈을 주고 시장에서 나를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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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비율이 넷 중 하나로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소형 아파트, 간편 음식, 방범 서비스, 도우미 서비스 등 새로운 소비자층을 노린 ‘솔로 이코노미’가 인기다. 최근 서울시가 자본주의 문제를 넘어선 대안 경제 운동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도 생활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마을 공동체, 교육 공동체 등 시장에 포섭되지 않고 공동체에 의지하려는 흐름이 활발하다. 사생활 시장은 여전히 공동체와 사회복지 정책 등 공공 부문이 무너져도 시장에서 나를 빌리면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현장을 탐사한 『나를 빌려드립니다』는 이 주장이 감춘 진짜 현실을 파헤쳐 우리에게 보여준다.

일본의 ‘친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해 화제다. 지난 2009년부터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친구 대여’ 사업을 시작한 '클라이언트 파트너스’는 시간과 장소, 의뢰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간당 3,000-5000엔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3만 3천원-5만 5천원 수준의 비용으로 친구를 빌려준다.

10월 27일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기사 내용이다. 저런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소비자이다. 아내를 잃은 60대 남성, 연인과 헤어진 뒤 힘들어하는 30대 직장인, 심지어 애인이 있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한 20대 여성 등.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주는 것 그 뿐이다.


얼마 전 ‘시츄에이션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된 〈연애를 기대해〉라는 2부작 드라마가 있었다. 아시아의 별 가수 보아가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한다기에 기대 반, 연기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는 놀부 심보 반으로 챙겨본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그녀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고,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연애 코칭’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낸 드라마의 내용이었다. 자고로 ‘연애’라는 것은 두 남녀 사이의 지극히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행위(?)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연애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상대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시시콜콜 코치에게 전달하면서, 거꾸로 아마도 연애 심리 전문가일 그 코치가 조언하는 대로 손짓과 눈빛, 분위기까지도 최적화하여 내 애인을 대한다. 이것은 결국 내가 지금 애인과 연애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애인이 연애 코치와 연애를 하는 것인지, 나는 단지 아바타일 뿐인 것인지 등에 대한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엔 내 경험이다. 친구 오빠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10년 넘게 알아 온 친구이지만 사실 난 그 친구의 오빠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상대도 나를 모를 것이다. 밥이나 먹고 가라는 친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친구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결혼식을 마쳤고 드디어 밥을 먹으러 예식장을 나서는 순간, 그 때부터 숨겨져 있던 내 역할이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하객의 수가 적었던 신부 측 지인이 되어, 일면식도 없는 ‘친구 오빠 부인’(관계도 참 어렵다;)의 결혼 사진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출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친구가 많지 않아 결혼식에서 자칫 민망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생겨난 하객 대행 서비스는 이제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자의는 아니었어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친구 대행 역할을 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도 나지만 나중에 결혼 사진을 본 그 부부의 반응은 어떨까.

“날마다 나는 나를 아웃소싱한다!”라는 카피가 400여 쪽의 내용을 효율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나를 빌려드립니다』 는 바로 이런 사생활의 서비스화ㆍ상품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돈만 있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편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는 지나치게 친절한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부터 사랑을 쟁취하고 노년을 보내기까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과정들은 모두 내가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개인적인 일’들이었다. 설사 도움을 받더라도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 동네 이웃들의 작은 친절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무엇 하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지 박약의 사람들로만 구성된 것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주의가 전통사회를 붕괴하고 있을 것일까. 매일 같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명한 소비가 중요해지는 지금, 과연 나는 타인의 어떤 능력을 사고 있는지, 또 나의 어떤 능력을 팔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관련 기사]

-”이력서 수백 장 냈지만 면접도 못봐” - 『희망의 배신』
-무능해서 실업자? 넌 유능해서 사장이니?
-3차 산업혁명은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남을 돕는다는 만족감에만 취한 게 아닐까? - 『죽은 원조』
-비싼 바닷가재를 잡아서 정작 맛도 못 보고 미국 레스토랑에 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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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빌려드립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저/류현 역 | 이매진
‘감정노동’을 처음 명확한 개념으로 제시한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이 책에서 러브 코치, 웨딩 플래너, 결혼 생활 상담 치료사, 대리모, 파티 플래너, 가족 관계 도우미, 유모, 노인 돌보미, 유급 친구와 문상객 등 사생활 서비스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만난다. 최첨단 기술과 빈곤층 여성을 이용해 아이를 주문 생산하고 유통하는 ‘구글 베이비’부터 고객이 지금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해주는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 서비스 시장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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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러셀 혹실드> 저/<류현> 역18,000원(10% + 5%)

날마다 나는 나를 아웃소싱한다! 사생활의 시장화와 서비스의 상품화가 빼앗아간 공동체의 삶 '감정노동’을 처음 명확한 개념으로 제시한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이 책에서 러브 코치, 웨딩 플래너, 결혼 생활 상담 치료사, 대리모, 파티 플래너, 가족 관계 도우미, 유모, 노인 돌보미, 유급 친구와 문상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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