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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껫 볼>, 시대에 맞서는 그들의 이야기

세상의 중력을 넘어서고자 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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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세계의 불화는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의 무거운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는 저항의 마음을 먹는 것조차 큰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드라마에서 던지는 질문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언젠가부터 시대에 맞서는 개인의 이야기는 현저히 줄었다. 독립이나 민주화와 같은 ‘쟁취해야 할 무언가’가 사라진 탓일 것이다. 살기 위해 압제와 싸워야 했던 주인공들은 이제 황폐화된 내면의 자신 혹은 어긋나버린 타인과의 문제에 집중한다. 현재 다루어지는 많은 서사들이 여기에 주목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닐 터. 그러나 우리가 사는 2013년에도 거대한 시대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져가는 개인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시대극이나 역사물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향해 보내는 신호 같은 것이기에.

 

<빠스껫 볼>이 일제강점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반가웠던 것은 그래서다. 일반 시청자에게 이미 익숙해져버린 고려나 조선시대가 아니라는 점, 민족의 아픔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를 농구라는 소재와 버무려 낸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대동아전쟁이 발발한 후 1939년 경성, 일제의 마지막 발악인 이른바 ‘민족 말살정책’이 시행되던 때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독부 관리들과 친일파만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쥐 죽은 듯 지내야 했다. 주인공 강산(도지환 분)도 마찬가지다. 야시장에서 술 배달을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농구다. 스물셋에 들어간 고보(고등학교)에서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해 갖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농구를 계속해 실업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 관료인 변 백작 집에서 수모를 겪으며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어머니와 자신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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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저버려야 했다, 살기 위해

 

일제가 조선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일부 허용한 야시장은 조선인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곳에서는 매일 길거리 농구대결을 두고 도박판이 열리곤 했다. 떳떳한 선수를 꿈꾸는 강산에게 투기 농구는 해서는 안 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와 타협하지도, 그렇다고 가진 것도 없는 강산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월사금을 못 내 세간을 모두 털리고, 먹을 것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을 본 강산은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길거리 농구세계에 제 발로 뛰어든다. 돈을 벌기 위해서.

 

타고난 실력으로 길거리 농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강산은 일본군전승기원 크리스마스 연회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최신영(이엘리야 분)과 만나게 된다. 조선 최고의 회사 경인방적 사장 최제국의 딸인 그녀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기자로 일하는 신여성이다. 그녀에게 행패를 부리는 연희전문(현 연세대) 농구부 주장이자 변 백작의 아들인 다케시를 강산이 혼쭐내며 두 사람은 인연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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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경인방적 실업팀에 강산을 입단시키려 하고, 경인방적 입단 테스트 경기에서 뛰게 된 강산은 당대 최고의 선수인 민치호(정동현 분)와 만나게 된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신영과 강산의 모습도 아랑곳없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이 필요했던 신영의 아버지는 민치호와 신영이 결혼할 예정이라고 발표해버린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선수로서, 남자로서 시대의 무게는 강산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워 보인다. 세상으로부터 가장 자유롭게 뛰어오를 수 있어 농구라는 운동이 좋았던 것이건만, 그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 앞에서 강산은 절망한다. 궁핍한 현실은 강산에게 묻고 있었다. 이곳에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비루한 목숨을 근근히 이어가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폭력과 도박이 난무하는 제3세계로 가겠는가. 드라마는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조선인들의 보잘것없는 움막과 친일파의 대저택을 연달아 비춘다.

 

개인과 세계의 불화는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의 무거운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는 저항의 마음을 먹는 것조차 큰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드라마에서 던지는 질문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과 명예의 달콤함에 취한 권력 계층과,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 한마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이들, 몇십 년이 넘는 시간차에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풍경이다.

 

순응하기란 쉽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기에. 하지만 저항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저 어디쯤에 있을 바스켓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그것이 드라마 <빠스껫 볼>의 비상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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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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