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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낭만주의자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모차르트를 능가했던 천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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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을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는 멘델스존의 삶에서 거의 마지막 시기에 완성된 음악입니다. 1844년 여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작곡하는 데는 적어도 6년쯤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멘델스존이 남긴 음악 가운데 오늘날의 연주회장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출처: 위키피디아]

멘델스존(1809~1847)의 풀네임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멘델스존(1776~1835)이 유대교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기 때문이지요. 멘델스존은 7살이 되던 1816년에 세례를 받는데, 이때 ‘바르톨디’라는 세례성(姓)까지 더해지게 됩니다. 바르톨디는 그의 외삼촌 야코프가 소유하고 있던 성(城)의 이름입니다. 한데 펠릭스는 외삼촌의 영지 이름을 성씨로 삼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펠릭스보다 네 살 위의 누나 파니, 두 해 뒤에 태어난 누이동생 레베카, 막내인 남동생 파울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지요. 아버지는 그런 펠릭스에게 ‘멘델스존’이라는 성을 쓰지 말고 ‘바르톨디’로 쓰도록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펠릭스는 죽는 날까지 본래의 성을 병기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후대 사람들은 펠릭스 멘델스존을 온건하고 부드러운 모범생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은근히 고집쟁이였던 모양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멘델스존의 집안은 속된 말로 ‘빵빵한 가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1729~1986)은 당대의 존경받던 계몽주의 철학자였습니다. 볼품없는 외모에 곱사등이 장애까지 지닌 인물이었는데, 독일의 극작가 레싱의 시극(詩劇) <현자 나탄>(1779)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속의 나탄은 온갖 시련 속에서도 종파와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설파하는 인물이지요. 말 그대로 현자(Weise)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명망 높은 철학자였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함부르크의 경제권을 쥐락펴락하던 은행가였습니다. 펠릭스가 태어나고 4년 뒤 베를린으로 이사해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 금융계의 거물이었지요.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 외에도, 멘델스존 집안에는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유명 인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교육도 최고로 받았겠지요. 게다가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이 빛을 발했습니다. 이미 열 살 무렵에 로마의 정치가 케사르, 시인 오비디우스의 책을 원어로 읽었다고 합니다. 또 기하학, 산수, 역사, 지리 등에서도 성취가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음악에서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특히 멘델스존의 음악적 천재성은 괴테(1749~1832)와의 일화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봄에 펴낸 책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에는 멘델스존의 음악 스승인 프리드리히 첼터(1758~183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이 스승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내용을 책에서 기술한 바 있습니다. 한데 첼터는 문학가 괴테와 막역한 사이였지요. 멘델스존은 12살 때 스승과 함께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에 가게 되는데요, 당시 괴테는 독일 문화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첼터는 친구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신동 제자를 자랑하고 싶었을 겁니다. 사실 괴테에게 찾아온 이른바 신동들이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 일흔이 넘은 거장에게 눈도장을 찍고 칭찬이라도 한마디 들으면 가문의 영광이었을 뿐 아니라 출세의 지름길이기도 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괴테는 아주 깐깐한 노인네여서 칭찬에 인색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데 그런 괴테마저도 어린 멘델스존에게는 완전히 매료됐던 모양입니다. 열두 살의 멘델스존은 괴테의 바이마르 집에서 무척이나 귀여움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일단, 당시의 멘델스존의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만큼 준수한 외모를 지닌 아이였지요. 열두 살 때의 얼굴이 초상화(칼 베가스의 유채 스케치화, 1821)로 남아 있는데 여자아이로 착각할 만큼 예쁜 생김새입니다. 물론 괴테가 아이의 예쁜 얼굴에 반했을 리는 없겠지요. 멘델스존은 괴테 앞에서 바흐의 푸가를 비롯해 여러 음악을 연주합니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즉흥연주를 선보이기도 하지요. 한데 그 연주에 대한 괴테의 평가가 놀라울 정도로 극찬입니다.

어떤 칭찬이었을까요? 괴테는 친구인 첼터에게 “당신의 제자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보다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상상 이상의 칭찬이라고 해야겠지요. 괴테가 했다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이 아이가 처음 보는 악보를 앉은 자리에서 연주하고 작곡하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 할 정도군.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난 믿지 못했을 걸세. 당신의 제자가 이미 이룬 성취를 당시의 모차르트와 비교하자면, 다 자란 어른의 교양 있는 대화를 어린아이의 혀 짧은 소리에 비교하는 것과 같네.”(『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 닐 웬본 지음, 포토넷, 2010)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몇 가지 사실과 이미지가 중첩되곤 합니다. 일단, 멘델스존의 가문에 대해서 괴테도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는 점입니다. 할아버지 모세는 당대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철학자였고, 아버지 아브라함도 사람들의 인심을 결코 잃지 않았던 은행가였습니다. 말하자면 멘델스존은 부유할 뿐 아니라 교양과 학식도 깊은, ‘뼈대 있는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이지요. 괴테가 멘델스존을 예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제였을 겁니다. 게다가 멘델스존은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아이답게 구김살이 없었습니다. 당시 괴테의 바이마르 집에서 멘델스존이 자신의 누나 파니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괴테 선생님”에 대한 어린 아이의 친근하고도 순진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괴테를 즐겁게 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괴테 선생님’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아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겠지요.

그토록 아름답고 해맑은 소년이었던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난 것은 겨우 서른여덟 살 때였습니다. 사실 그는 ‘요절한 음악가’로 인식되고 있는 모차르트보다 겨우 3년을 더 지상에 머물렀을 뿐이지요. 사랑했던 누이 파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멘델스존은 거의 넋이 나가버린 상태가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본인도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지요. 이 남매의 이야기는 음악사에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는데, 외모도 쌍둥이처럼 닮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여느 남매와 달랐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파니가 결혼 직전에 보여줬던 히스테릭한 태도, 남들이 보기엔 연인간의 사랑싸움처럼 보였다는 남매의 말다툼, 또 두 사람이 평생토록 일심동체로 공유했던, 음악에 대한 동지적 태도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부터 멘델스존의 얼굴은 30대가 무색할 만치 늙어버립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라이프치히의 예술행정가, 또 교육자로서의 동분서주가 그를 빨리 늙게 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가문의 ‘율법’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을 평생토록 습관으로 이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는 멘델스존을 일러 “고전주의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낭만주의자”라고 말했지요. 오늘 들을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는 멘델스존의 삶에서 거의 마지막 시기에 완성된 음악입니다. 1844년 여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작곡하는 데는 적어도 6년쯤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멘델스존이 지휘를 맡고 있었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당시에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1810~1873)는 멘델스존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멘델스존이 그 친구에게 바이올린 협주곡 작곡에 관해 의견을 구한 것은 1838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6년 뒤에 곡을 완성해 페르디난트 다비트에게 헌정하지요. 이듬해 초연 때의 바이올리니스트도 당연히 그 친구였습니다. 멘델스존이 남긴 음악 가운데 오늘날의 연주회장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Allegro molto appassionato). ‘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라는 뜻입니다. 현악기들이 속삭이듯이 화음을 연주하고 곧바로 독주 바이올린이 치고 나옵니다. 멜랑콜리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입니다. 이렇게 첫머리부터 독주가 등장하는 것은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독주 바이올린이 첫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 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너무도 유명한 선율입니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한바탕 기교를 뽐내다가 관현악이 첫번째 주제를 포르티시모(ff)로 강하게 연주하지요.

두번째 주제는 앞 주제가 보여주는 화려함에 비해 소박하고 우아합니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에 이어 클라리넷과 플룻까지 합세하면서 피아니시모(pp)의 여린 음량으로 두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잠시 후,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테크닉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카텐차. 1악장의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독주 바이올린의 카텐차가 놓이는 것도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곡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음악적 설명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느낌으로만 들으셔도 충분합니다.

2악장은 느린 안단테(Andante)로 시작합니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쉼표 없이 바순의 연주로 2악장에 들어섭니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매우 감성적인 주제 선율을 아름다운 톤으로 연주하지요. 마치 꿈결과도 같은 선율입니다. 그렇게 잔잔하게 음악이 펼쳐지다가 바이올린 파트와 오보에가 어울리면서 잠시 강렬하게 고조됩니다. 이어서 마무리 장면에 들어서게 되면, 독주 바이올린이 원래의 주제를 거의 끊어질 듯한 느낌으로 연주하다가 아스라한 느낌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3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로 시작해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로 전환됩니다. ‘빠르되 지나치지 않게’로 시작해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로 분위기를 바꾸라는 뜻입니다. 우아하게 시작해서 격렬하게 달려 나가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마디의 서주가 끝나면서부터 음악이 가파르게 고조됩니다. 관현악에 팀파니가 어우러지고 독주 바이올린이 짧은 음형들을 튀어 오르는 느낌으로 연주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펼쳐집니다. 특히 종결부(코다)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보여주는 팽팽한 힘과 기교가 인상적입니다.

p.s.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 중에서는 힐러리 한(Hilary Hahn)의 연주가 들을 만합니다. 오슬로 필하모닉과의 협연이 음반(Sony)으로 나온 바 있는데, 지금 국내 매장에서 ‘일시품절’인 모양입니다. 추천음반 목록에 올리지 못했지만 추후에라도 구입해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누에고치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가늘게 뽑아내는 바이올린 소리가 일품입니다. 지난해 내한 무대에서도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파보 예르비 지휘)과의 협연으로 같은 곡을 연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이페츠(Jascha Heifetz), 샤를 뮌슈ㆍ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1959년/RCA

멘델스존 협주곡에서 중요한 명연으로 손꼽혀온 연주다. 어떤 이들은 음색의 차가움을 이유로, 혹은 빠른 템포 때문에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보자면 그것이 이 녹음의 매력이다. 온건한 감정을 배제한 차갑고 날카로운 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감성적인 느낌으로 음악이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느린 2악장이 백미다. 국내 매장에서는 두 가지 음반 중에서 고를 수 있다. ‘RCA Red Seal’로 발매된 음반에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 함께 담겼다. 몇 해 전 SACD로 나온 음반에는 샤를 뮌슈가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와 함께 멘델스존과 베토벤을 연주해 담았다. SACD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면 후자를 택하는 게 좋겠다.


정경화, 샤를 뒤트와ㆍ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1981년/Decca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리듬적 구성이 단순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잘못 연주하면 음악이 축축 늘어진다. 이 글을 쓰면서 정경화와 샤를 뒤트와의 협연을 두 차례 반복해 들었다. 역시 서른세 살의 정경화다. 절정기의 기량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구조적으로 탄탄하면서도 탱탱한 긴장감이 넘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적 흥취가 출렁거리는 연주다. 이 녹음도 국내 매장에서 두 개의 음반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그레이트 바이올린 콘체르토’라는 이름으로 멘델스존,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등 정경화가 연주했던 주요 협주곡을 2장의 CD에 담은 음반이 있다. 또 하나는 데카에서 ‘레전드 시리즈’로 출시한 음반이다. 멘델스존과 브루흐를 1장의 CD에 수록했다. 어떤 음반이든 좋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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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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