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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시집 읽으며 소설의 소재를 떠올린다”

『파과』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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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의 여름의 끝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강연장에서는 『파과』 출간 기념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삶의 정글에서 부서져 사라지는 운명에 대한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라는 책 소개와 함께 문학평론가 이경재의 사회로 진행됐다.



장편 한 권 내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아기 낳는 고통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런 장편을 낸 후 어떻게 지내시나?

일상을 살고 있다. 데뷔년도에 비해 나온 책이 많아서 주변에서는 이제 좀 시간을 두라는 말을 한다(웃음). 너무 달렸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지금 안 달리면 언제 달릴 건가 싶어서 계속 쓰고 있다. 장편 나오고 독자들이 읽고 의견을 나눠주는 일이 내겐 직장인들이 하는 프로젝트와 같다. 프로젝트 하나 끝났다고 직장인들이 푹 쉬진 않잖나(웃음). 소설 쓰는 것이 업이다 보니 회사 다니는 기분으로 쓰고 있다. 진중하게 창작하는 분에 비해 과속(?)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이해가 가지만, 생활방식을 이렇게 택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쓰고 싶다.

작품 많이 쓰는 분 중에는 사실 말리고 싶은 분도 있다. 수준이 담보되지 않은 채 물량을 쏟아내니까. 구 작가는 그렇지는 않아서 더 달리라고 채찍을 가하고 싶다(웃음). 그만큼 양과 질이 다 담보되는 작가다. 지난 작품 중에 애착이 가거나 더 공들였으면 싶은 작품이 있나?

작가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소설을 쓰고 펴낸 뒤에는 잊어버린다. 세상에 작품을 내보낸 뒤, 품에서 떠나보낸 아이까지는 아니지만, 다음 작품에 정신이 가 있다. 그래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기보다, 다 똑같이 보낸 애라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파과』 가 제일 예뻐 보이고, 다음 작품이 나오면 그게 또 예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을 낼 때보다 이번에 낸 것이 예전보다 낫다는 확신이 있다는 건가?

지난번보다 이번이 낫다고 생각한 작품이 딱 하나 있었는데, 읽어본 독자는 알 거다(웃음).

『파과』 , 제목과 표지가 시선을 잡아끈다. 제목이 가지는 의미와 왜 이런 제목을 정했나?

표지는 시안을 처음 보고서 이 표지를 뽑았다. 그런데 좀 선정적인 것 같아서 인터넷서점 메인 화면에 안 걸리면 어쩌지, 걱정도 했다(웃음). 주변에 소설 쓰는 동료 몇 명에게 이번 책 제목이 ‘파과’라고 했을 때, 한 번도 처음에 알아듣는 동료가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 다들 물었다. 언어로 생활하고 언어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웃음).

처음 쓰면서는 부서진 과일, 흠집이 난 과일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는데, 결말 되기 전쯤에 머릿속에 결말을 그렸을 때와 결말에 다가갔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흔히 생각하는 부서진 과일 뿐 아니라 이팔청춘을 가리키는 파과의 의미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에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다. 흠집이 난 과일로서 온전한 시절을 살아내지 못한 여성의, 그럼에도 그 여성의 부서진 과일이 이팔청춘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 밖의 의미는 독자들이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선 작품들 제목을 보니, 최근에는 한자 제목을 많이 다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고, 소설 제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거라면. 순우리말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최근 들어 단편소설의 주제가 심각해지고 소재가 과격해지는 것을 반영하는 것 같다(웃음).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인물 이름도 특이하다. 왜 그렇게 지었는지, 에피소드가 있나?

주인공 이름을 지으면서 가장 신경 써서 지은 작품은 『아가미』였다. 물과 관련한 이름 짓느라고. 이번에는 좀 더 러프하게 지었다. 주인공 ‘조각’은 옥편을 보면 손톱 조(爪), 뿔 각(角)자를 쓴다. 방역업계를 주름잡은 여성의 손톱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이름이면서 끝끝내 부서지지 않는 한 조각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투우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투우가 맞고, 해우는 ‘해우소’에서 온 것이 맞다(웃음). 류나 조는 성(姓)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는데, 쓰다 보니 위화감이 생기는 부분이 있더라. 인물 대다수가 가명을 쓰니까, 조각이라는 인물의 기억 속에서 애칭으로만 남은 것으로 나 혼자 간주했다(웃음).
“한때 정도가 아니라 40대 중반을 넘어서기 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그녀는 업자들 사이에서 가명 대신 기억하기 더 쉬운 손톱으로 불렸고 애당초 가명인 조각부터가 손 실장의 아버지보다도 앞서 있었던 첫 번째 실장이 붙여준 이름이었다.”(p.51)
주인공 여자노인킬러가 강렬하다. 노인, 여자, 킬러의 조합은 거의 처음 접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람을 해하고 싶어서는 아니고(웃음), 주인공 처지를 보면 한창 때를 지나보낸 부서진 과일이면서 사회에서 잘 상대해주지 않는 위치의 사람이다. 타자성을 강조하고 싶은 측면이 있었다. 사회가 나이 든 분들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타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양식이 있잖나. 여성이면서 노년이면 한물갔다고 치부하는 대상이다. 그런 인물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대해 거칠게 응전하는 방식이 킬러라는 직업으로 나타났다.

물론 작품이 작가의 의도대로 구현되는 것만은 아닌데, 어떤 창작의도로 이 작품을 썼나?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소외되고 부서지는 것에 대한 찰나의 시선만 담을 수 있으면 만족하려고 한다. 부서지고 소외되는 것을 봐도 느낌 없는 분들도 있고, 내 아픔처럼 느끼는 분도 있는데, 한 번 더 돌아본다는 시선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스펙트럼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개개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뭘 느껴달라고 강요하면 안 될 것 같다. 한 번 스윽 돌아봐줌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Q&A

어떨 때 작품 소재나 영감이 가장 잘 떠오르나?

어떤 자리에 가도 이런 계통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웃음). 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썼지만, 다른 분에겐 소재가 독특했나 보다. 나중에 기억을 못하는 일이 없기 위해 그때그때 뭔가 떠오르면 메모를 한다. 소재는 시집을 보면서 많이 떠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현대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70~80%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 만큼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데서, 내 식대로 해석하면서 상상력이 증폭된다. 시어 하나만 보고서도 소재가 떠오를 때도 있다. 소설의 옷을 입고 현실화가 되려면 그것과 마주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도 냉장고를 청소하다가 쓰게 됐다. 일상의 소재가 상상력과 마주쳤을 때, 본격적인 소설의 소재가 돼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한때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 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p.334, 작가의 말 중에서)
주인공을 윤여정 선생이라고 읽으면서 읽었다. 특별히 생각한 모델이 있었나?

소설 쓰는 내내 모델을 두고 쓰진 않았다. 주인공 나이가 65세로 돼 있는데, ‘파과’에는 ‘64세의 여성’과 ‘16세의 소년’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70대를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현실적인 액션이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다고 65세가 이런 액션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설적인 허구에 해당하는데 개인적인 희망사항도 반영된 모습이다. 모델은 없지만.
“아이보리 면 모자로 잿빛 머리를 가리고 작은 꽃무늬가 인쇄된 티셔츠에 수수한 카키색 바람막이 점퍼와 검정 일자바지 차림을 하고 짧은 손잡이의 중간 크기 갈색 보스턴백을 팔에 건 이 여성은 실제 65세이나 얼굴 주름 개수와 깊이만으로는 일흔 중반은 넘어 보인다.”(p.10)
영화나 드라마화가 된다면 주인공 배우는 누가 어울릴까?

소설 쓸 때는 소설 생각만 해서 2차 매체는 생각을 못했다. 읽어본 분들이 내용이나 소재가 영화적이라고 말해서, 다시 읽어봤는데,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되는 것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원탑 주인공이고,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이라 투자를 못 받을 것 같다(웃음). 지금 영화화 얘기가 살짝 들어오기는 하나, 개봉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고. 주인공은 십중팔구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쓰진 않고, 젊은 배우가 분장을 해서 등장하지 않을까. <은교>에 박해일이 노인 분장을 한 것처럼. 그래야 투자가...(웃음)

어릴 적 꿈은 뭐였나?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게 열두 살 때였다. 그 이전을 기억하는 건 무리가 있다(웃음). 열두 살 이전부터 쓰고는 있었다. 소설이라기보다 기승전결도 없는 꾸며낸 이야기의 수준이었지만(웃음).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최초 응모한 때는 고3 올라가기 직전이었고, 옛날에 MBC청소년문학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응모해봤었다. 어릴 때 쓴 것은 친구 몇 명이서 돌려봤고, 대학 가서는 교수나 동기, 선후배에게 보여줬는데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서 나중에는 안 보여줬다(웃음).

작품을 안 쓸 때의 생활은 어떤가?

대부분은 애를 보기 때문에 순수하게 작품만 쓰는 물리적 시간은 많지 않다. 제일 부러운 사람이 아침 먹고 저녁 6시까지 일터에 나간 것처럼 시간 정해놓고 쓰는 사람이다. 나는 랜덤이다. 쓸 수 있으면 쓰고, 쓰지 않을 때는 애를 보거나 집안 대소사를 처리한다.

문학에 있어 재능이란 무엇일까?

나는 재능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노력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내게 재능은 노력과 같은 말이다. 한 분야를 제대로 하려면 1만 시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글쓰기도 그와 같은 것이다. 詩는 하늘이 줘야 한다. 시인은 하늘에서 그분이 오셨다고 생각한다.

한국나이로 서른넷에 등단을 했다. 등단하기까지 어땠나?

등단을 늦게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회사생활을 계속 했고, 결혼도 했고, 평범한 생활을 하던 상태였다. 그렇게 생활을 유지하면서 올인 못한 것이 가장 큰 결격사유였던 것 같다. 계속 등단을 못하니 지치고 화도 났다. 공모전에 작품을 낼 때 나이를 적는 것이 있었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단편소설로는 경쟁력이 없는 건가, 신선하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떠올렸던 소재가 청소년 문학에 어울렸고, 그래서 등단을 하게 됐다.

청소년 소설과 성인소설을 넘나든다. 소설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창작할 때 차이점이 있나?

다 같은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기본적인 자세는 그렇지만 받아들이는 분은 그렇지 않더라. 두 개를 대하는 차이는 없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청소년문학을 할 때도 문학을 하고 있다고 원고를 냈는데, 편집하는 분이 말이 어렵다고 바꿔달라는 경우가 있다. 채널을 그때그때 바꾸는 것이 내게도 숙제다.

좋은 의미에서 독자를 괴롭히고 고민하게 하는 작품을 쓰는 것 같다. 독자를 괴롭히게 만드는 이유나 쓰는 방식에서 독특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건에 있어서는 괴롭히는 편이 아니라고 본다. 힘든 이유는 문장을 읽다가 지치는 측면도 있을 테고, 장편소설에서는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는 ‘나’를 쓰지 않은 것 같다. 인칭에 있어서는 깊게 고민 안 하고, 소설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하고 있다. 소설을 읽고 힘든 이유의 7할은 만연체 때문이 아닐까. 만연체를 쓰다 보니 나의 오만가지 오욕칠정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이 인물이 겪는 바닥까지 느끼시는 것 아닐까. 『파과』 는 지금까지 써 온 어떤 책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이 강하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나?

단편을 엮어 내년 하반기쯤 내려고 한다. 장편 두 편 정도 구상중인 게 있다. 청소년문학도 두 편 중에 있고, 지금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조만간 나오지는 않을 테고, 목록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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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저 | 자음과모음(이룸)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조각(爪角)’. 그녀는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의 대모의 위치에 이른 프로페셔널이다.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환갑을 넘긴 나이인 만큼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삐걱거리는 건 예삿일인데, 느닷없이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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