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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의 약성은 생존의 결과물

취재일지① 약초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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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성이 좋은 약일수록 함부로 먹으면 안 됩니다. 특정한 약효는 다른 곳에는 해가 되기도 하거든요. 우리 몸이 자연이라고 생각해서 병이 나면 그 병에 맞는 약초를 먹어야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약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가장 좋지요.”


《동의보감》 공부를 하자면 약초는 건너뛸 수가 없다. 함께 공부하는 한의사들조차 인정한 약초 전문가 최철한 원장(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본초학 전공)을 모셔와 강의를 듣기로 했다. 들쑥날쑥한 일정에도 최 원장은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세 번의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었다. 만화를 그리는 나에게 약초의 쓰임새나 약리를 전문적으로 이해하기란 무리였지만 약초의 생태와 기본 원리라도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하고 싶어 열심히 듣고 메모했다.

최 원장은 강의를 시작하며 “식물은 잎 하나, 가지 하나까지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물이 자연 환경을 무시하고 불필요한 잎이나 가지를 가졌다가는 곧바로 죽는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식물만 그렇겠는가? 사자도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더라도 전력을 기울인다고 하지 않던가? ‘약성’은 자연 앞에 사치를 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생겨난다고 한다.


눈잣나무

설악산 대청봉 1,600m 산등성이에는 ‘눈잣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잣나무가 산다. 거센 바람을 견디기 위해 곧게 자라는 대신 누워서 자라 눈잣나무가 된 것이다. 천리를 기어간다고 해서 천리송(千里松)이라고도 부른다. 눈잣나무가 거센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택한 생존전략은 ‘눕기’다. 그 전략이 그대로 약성이 되어 눈잣나무의 잎과 가지는 바람에 의해 생기는 기침, 천식에 효과가 좋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잣나무를 캐서 바람이 없는 저지대에 심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누워 있던 나무가 똑바로 서버린다. 곧추선 잣나무에서는 기침, 천식에 효과를 나타냈던 약성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같은 종의 약재라도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약의 효과가 달라진다니 거참 신기하다. 우리는 산으로 가서 약초를 살펴보기로 했다.

이번 약초 산행은 최철한 원장의 인솔하에 나와 황인태 원장, 출판사 대표 총 4명이 동행했다. 최 원장은 《약초도감》 한 권만 달랑 가지고 온 반면 우리는 꽤나 험하고 높은 산행이라도 할 것처럼 배낭에 등산화까지 갖추고 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원도 못지않은 생태계를 가진 산이 있다(실제로 가까운 근교임에도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심산유곡이었다. 숨겨놓고 싶은 마음에 위치를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물푸레나무

산 어귀에서부터 최 원장은 풀, 넝쿨, 나무 할 것 없이 보이는 대로 그에 대한 약성을 설명한다. 주변에 널려 있는 질경이, 칡덩굴, 물푸레나무, 며느리밑씻개, 초롱꽃, 생강나무, 앉은부채……. 내가 물었다.

“아니 이것도 약이 되나요?”

최 원장은 특유의 맑은 웃음으로 답했다.

“자연에서 약으로 쓰이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사실 약초의 효능과 약성을 모두 알아내기란 전문가조차 평생을 공부해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유사한 종별로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먼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주변 식물들을 살폈다. 여기에서 독자들도 한번 생각해보시라. 물가에 자라는 식물들에게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기능은 무엇이겠는가? ‘물을 잘 배출하는 능력’이란다. 아∼하. 그래서 물가의 식물을 먹으면 우리 몸속의 배출 능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에 사는 동물, 조개류 역시 이런 효능을 갖는다. 그렇기에 산후에 붓기를 빼기 위해서는 미역국, 붕어, 잉어, 가물치를 먹고, 술기운을 풀어야 할 때는 알코올을 배출시켜주는 조개탕, 미나리, 북어국, 황태국, 다슬기탕, 재첩국을 먹으면 좋다. 소변이 시원찮거나 몸이 부었을 때도 물가에서 나는 식재료나 약재를 쓴다. 그럼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은? 당연히 ‘물을 배출하지 않는 능력’이다. 알로에, 선인장이 피부 건조증이나 변비에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길가에 무성히 자라는 칡덩굴이 보였다. 최 원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약초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최 원장

“칡이 1년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3개월에 얼마나 자라는지 아시나요? 무려 18m를 꾸불꾸불 휘감아 돌면서 자랍니다. 따라서 칡뿌리는 18m 떨어진 지상부 끝까지 꾸불꾸불한 덩굴을 통해 물을 공급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흡입력이 18m를 빨아올릴까요? 그것도 꾸불꾸불 구부러지고 꺾인 통로를 통해서 말이죠! 그래서 칡은 우리 몸이 막혀서 상하로 순환되지 않을 때 효과를 나타냅니다. 술 먹으면 몸이 막혀서 어깨가 뭉치고 몸이 무겁고 찌뿌둥하죠. 이때 칡은 정체된 술독을 강력하게 순환시켜 몰아냅니다.”

칡과 같은 덩굴류의 식물 역시 이와 비슷한 약성을 가진다. 오늘날 서양 의학에 길들여진 우리는 종별로 분류해서 약성을 따지기를 좋아하는데, 식물 역시 과가 같으면 비슷한 약성을 보인다고 한다. 즉 콩과 덩굴 식물은 대부분 순환이 잘 안 되거나 기가 막혀서 울체된 것을 뚫는 데 효과를 보이며 술독을 풀어준다.

국화과에 속하는 더위지기, 쑥, 민들레 종류는 약간 쓴맛을 띄기 때문에 간의 열을 내리는 데 좋고, 더덕, 잔대, 만삼 등 초롱꽃과는 우윳빛 즙액이 있어 폐의 기운과 진액을 보충하며, 파, 부추, 달래, 마늘 등 백합과 파속(allium) 식물들은 하나의 꽃대에 수십, 수백 개의 꽃을 산형화서로 피워내기에 뿌리 자체가 강한 폭발력을 의미하는 매운맛을 띈다.

그런데 분류학적인 종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종이 같더라도 자생 환경이 다르면 약성이 달라지고, 종이 다르더라도 형태나 부위가 유사하면 비슷한 약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약초의 약성을 제대로 알려면 형태, 색깔, 기운, 맛, 성질, 채취 시기, 산지, 약용 부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물가를 따라 한참 오르다 우리는 산등성 쪽으로 길을 바꾸었다. 이렇게 약초 산행에서 우리는 먼저 식물의 종류에 따른 약성을 배우고, 이어서 각 종류의 생태 환경에 따라 어떤 특성으로 발달했는지를 살피고, 이후 그 식물의 색깔과 맛을 살펴 약초의 효능을 추척해나갔다.

이쯤 되자 산행 전 강의 때 들었던 것과 오버랩되면서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맛에 따라 약성이 다른가요?”

그러자 최 원장이 말했다.


괭이밥

“예. 한의학에서는 산고감신함(酸苦甘辛鹹)을 오미(五味)라고 합니다. 오미의 각각에는 약하고 강한 것이 있습니다. 약간 시큼한 맛은 수렴해요. 오미자나 괭이밥을 먹으면 새큼한 맛에 몸이 수축하면서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따라서 기운이 떨어져서 설사하거나 땀이 많으면 오미자나 묽은 매실, 괭이밥 등을 먹는 거죠. 강하게 시큼한 맛은 강산처럼 녹여버립니다. 그래서 체하면 매실 엑기스, 산사를 먹는 것이고, 연탄 중독에 의식을 잃으면 식초나 쉰 김치 국물을 써서 정신이 막힌 것을 뚫는 겁니다.

약간 쓴맛은 기운을 끌어올리고 식욕을 돋우며 몸을 가볍게 합니다. 따라서 춘곤증으로 식욕이 없고 몸이 무겁고 기운 없을 때는 약간 쓴 봄나물을 먹는 겁니다. 단, 강한 쓴맛은 설사를 유발해서 거의 약초로만 쓰입니다. 단맛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밥을 오래 씹으면 나는 은은한 단맛과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은 몸을 가볍게 하고 몸의 원기를 근본적으로 보충해줍니다. 소변도 잘 보게 하고요. 하지만 초콜릿 등의 강한 단맛은 살을 찌웁니다. 뚱뚱이로 만들죠. 그리고 잘 느껴보면 초콜릿은 끝 맛이 쓰거나 텁텁합니다. 이런 맛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퉁퉁마디

약간 매운 맛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개념이 좀 다른데요. 고추나 생무, 생마늘, 생양파 같은 것입니다. 이걸 먹으면 눈물이 나고 땀이 나며 열이 나죠. 찬 기운이 침범했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타 먹으라는 말이 이겁니다. 보약을 먹을 때 생파, 생마늘, 생무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보약 기운을 다 흩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매운맛은 육계(肉桂), 회향(茴香), 군마늘, 포건강 같은 것인데요. 먹고 나면 그다지 맵지는 않지만 난로를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훈훈해집니다. 자궁, 생식기, 대장을 데워주죠. 약간 짠맛은 죽염, 퉁퉁마디 등의 해조류입니다. 이 맛은 대변을 잘 보게 하며 몸을 정화하고 몸의 열을 내리기 때문에 성인병에 좋습니다. 하지만 강한 짠맛은 오히려 혈압을 높이며 머리로 열이 솟구치게 합니다.”


6월 말의 햇볕이 따갑다. 부실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자를 썼더니 땀이 배어난다. 약초 채취가 목적이 아닌 약초의 약성이 환경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공부하기 위한 산행이라 다행히 더 높이 올라가지 않고 내려왔다. 하산하여 마무리할 줄 알았더니 최 원장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널따란 평지로 우리를 데려가서 그곳에 사는 익모초, 민들레에 대한 설명을 마저 했다. 말미에 약초 전문 한의사다운 말로 마무리한다.


“약성이 좋은 약일수록 함부로 먹으면 안 됩니다. 특정한 약효는 다른 곳에는 해가 되기도 하거든요. 우리 몸이 자연이라고 생각해서 병이 나면 그 병에 맞는 약초를 먹어야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약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가장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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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의 손끝에서 만화로 새롭게 태어난 『동의보감』. 1613년 허준이 쓴 『동의보감』은 18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며 시공간을 초월해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탄생 400년을 맞이하여 전문 의학서의 베일을 벗고 만화로서 우리 앞에 다시 선다. 허영만 화백은 동의보감을 단순히 글에서 그림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내용도 현재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데 누구라도 쉽게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고 재미있게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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