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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봤더래도 놀랐을 겁니다 -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

재미야 기본, 한국미 살려 독특한 아름다움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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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은 영화로도 제작되며, 수많은 배우와 연출가가 재해석하고, 새로운 색을 입힌 작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한여름밤의 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10년째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특별하다.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쾌한 사랑이야기 <한여름밤의 꿈>


<한여름밤의 꿈>,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무슨 내용인지도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작품인 걸 보면, 고전이 틀림없다. 해마다 공연 축제에, 아니면 워크샵 작품으로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올려지는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특히나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한여름밤의 꿈>은 유쾌한 사랑이야기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 몰래 야반도주를 하려는 연인, 그들 중 한 사람을 짝사랑해 늘 애가 타는 한 여자. 모든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자를 부러워하는 한 여자. 평생을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하룻밤 새 변심해 다른 여자에게 구애하는 한 남자...... 극 속에 나오는 인물이나 상황이 요즘의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법한 인물들이다.

지금의 우리가 봐도 충분히 공감 갈 만한 상황이 <한여름밤의 꿈> 속에 펼쳐진다. 사랑이 얼마나 변하기 쉬운가?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허약한가? 결국, 사랑의 문제고 마음의 문제다. 동서고금을 넘어 누구나 예외 없는 이 문제를 두고, 셰익스피어는 숲 속의 요정과 사랑의 묘약 등의 신비한 요소를 더해, 사랑과 마음의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풀어놓는다.

<한여름밤의 꿈>은 영화로도 제작되며, 수많은 배우와 연출가가 재해석하고, 새로운 색을 입힌 작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한여름밤의 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10년째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특별하다.


재미야 기본, 한국미 살려 독특한 아름다움 선보여


양정웅 연출가는 극 속의 요정 캐릭터를 도깨비로 바꿨다. 4각 관계에 빠지는 남녀주인공을 항(亢), 벽(壁), 루(婁), 익(翼) 등 우리 별자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전통성까지 살렸다. 대청마루, 한지, 삼베옷 등 한국 고유의 미감이 가득한 미장센, 한국적 음률의 노래와 대사, 사물악기 등으로 한국 고유의 미학이 가득한 무대가 완성됐다. 물론 그저, 외국 작품을 성공적으로 한국화한 점이 훌륭하다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이러저러한 명목이나 의미를 빼고 나더라도, 매우 아름답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어둠 속에서 도깨비불을 흔들며 나타나, 무대 위에서 익살맞게 재주를 넘는 도깨비는 원작의 요정들보다 훨씬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살린다. 극 중에서 바람기 많고 사람들을 골리기도 하는 요정의 왕 오베른보다, 익살맞은 요괴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귀신의 느낌도 가진 도깨비왕 가비가 훨씬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미모의 벽은 아버지의 강요로 정혼자 루 도령에게 시집을 가야 할 판이다. 벽은 항이라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 둘은 몰래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한편 루 도령을 짝사랑하는 익이는 둘이 도망간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루에게 알려준다. 엇갈리는 네 사람의 연심. 이를 지켜보던 도깨비 우두머리 돗은 장난을 좋아하는 도깨비들을 시켜, 엇갈린 사랑을 맞춰주려고 한다.


엇갈린 마음의 문제는 도깨비도 별수 없다는 걸까? 도깨비들의 실수로 네 사람의 사랑은 더욱 어긋나기만 한다. 원작 캐릭터인 허미아(벽)와 라이센더(항), 드미트리어스(벽)와 헬레나(익)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야기 전개나 대사의 흐름은 얼추 비슷하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연되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기념으로 기획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셰익스피어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글로브 극장에서 (역시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공연되기도 했다. 공연 당시 호주의 ‘sunday Mall'은 “지금까지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최고의 희곡들이 새로운 해석으로 공연됐지만, 이번 공연만큼 가장 원작과 신비감을 살린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고 평했다.


한여름밤의 깊은 숲 속으로 초대된다


이번 공연은 한옥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다. 이 공연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극장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무대 뒤쪽으로 연출해둔 울창한 숲이 비밀스럽고 환상적인 공연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눈에 띄는 건 무대 정 중앙에 나열된 네 벌의 악기인데,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들은 번갈아가며 악기 앞에 앉아 다양한 소리를 낸다.

여러 사물악기가 어울려 바람 소리도 내고, 숲 소리도 낸다. 재치있는 효과음은 배우들의 동작이나 이야기의 전개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관객들은 빈 무대 위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한여름밤의 깊은 숲 속으로 초대된다.

개량된 한복을 입은 배우들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절묘하게 섞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두 사람의 엇갈린 마음, 한 사람을 향한 아련한 마음이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보인다. 느릿느릿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한 신체 동작은, 대사 없이도 설렘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반면 도깨비들의 동작은 큼직큼직하고 요란하다. 두 도깨비가 서로에게 매달려 한몸이 된 채 등장하기도 하고, 온갖 묘기를 펼치는데, 이 또한 말 적은 도깨비들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도깨비들은 공연 중에 도깨비불로 쓰이는 야광 팔찌를 객석에 (넉넉하게) 던져대는데, 공연이 다 끝나고 잠깐 불이 꺼질 때, 객석 곳곳에서 퍼져 나오는 야광 팔찌의 불빛도 이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다. 그렇게 팔목에 야광 팔찌를 낀 채, 커튼콜 하는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으니, 이 자리에서 내가 <한여름밤의 꿈>을 실제로 보았구나, 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 실재감은 공연장을 나가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배우들이 재빨리 극장 입구로 나가, 돌아가는 관객들을 일일이 맞아주기 때문이다. 워낙 유쾌한 작품이다 보니, 배우들이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졌고,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익살맞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구와 봐도 즐겁지만, 특히 가족단위의 관객에게 추천할 만한 공연이다.

2001년부터 매년 관객을 만나고 있는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 정말 간밤의 꿈처럼 공연기간이 길지 않다. 8월 31일이면 남산국악당에서 막을 내린다. <한여름밤의 꿈>을 만난 그 날, 올 여름 중 가장 달콤하고 황홀한 꿈을 꾸는 밤을 보내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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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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