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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쓴 여행기 - 리스트, 순례의 해(Années de Pèlerinage)

‘바람둥이 리스트’ vs ‘성직자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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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을 음악은 <순례의 해>(Annees de Pelerinage)입니다. 1830년대부터 1877년까지 작곡했으니, 리스트는 자그마치 40년 동안 이 음악에 마음을 썼던 셈입니다. 모두 26곡으로 이뤄져 있는, 리스트의 피아노곡집 중에서 가장 거대한 분량의 음악입니다.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명품 피아노는 무엇일까요? 금방 답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유명한 ‘스타인웨이’입니다. 하지만 스타인웨이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명성을 얻은 피아노 제조사입니다. 그 전에는, 그러니까 19세기에는 영국의 브로드우드사(社)가 유명했습니다. 스위스 사람인 브루크하르트 슈디가 1728년 런던에 설립한 회사인데요, 1770년대에 사위인 존 브로드우드가 물려받아 유럽 최강의 피아노 제조사로 키워냅니다. 정식 명칭은 ‘브로드우드 앤드 선즈’(Broadwood & Sons)입니다. 독일계 이민자인 스타이웨이가 미국 뉴욕에서 ‘스타인웨이 앤드 선즈’(Steinway & Sons)를 창업한 것이 19세기 중반의 일이니, 브로드우드사의 연혁은 그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피아노 제조사들은 유명한 음악가들에게 ‘협찬’을 합니다. 물론 마케팅을 위해서겠지요. 브로드우드사도 그랬습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아주 잠깐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설명했던 8월 6일자 칼럼에서입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영국 런던의 피아노 제조업자 브로드우드가 베토벤에게 ‘함머클라비어’, 그러니까 망치로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개량된 피아노를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잠시 등장합니다. 베토벤은 이에 대해 감사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기도 하지요. 베토벤은 1818년에 이 피아노를 선물 받은 이후, 초인적인 창작 작업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던 1827년까지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이 피아노는 적어도 10년간, 당대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의 음악적 분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피아노 없는 베토벤을 상상하기란 참으로 어렵지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37) [출처: 위키피디아]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후, 거장과 마지막 10년을 함께 했던 그 피아노는 마침내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출판업자 카를 안톤 슈피나가 입찰받지요. 그는 한동안 피아노를 자신이 간직하고 있다가 1846년에 한 피아니스트에게 선물하는데요, 그 사람이 바로 프란츠 리스트(1811~1886)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손꼽히고 있는 리스트가 베토벤의 분신과도 같았던 피아노를 물려받았던 것이지요. 그냥 우연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제가 잘 쓰는 말이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된다’는 것인데, 오늘도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떠올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베토벤에서 발원한 낭만(浪漫)이 리스트라는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에 이르러 마침내 정점을 찍었다는 것, 아울러 리스트가 평생토록 베토벤을 존경하면서 9곡의 교향곡을 피아노 솔로로 편곡해 직접 연주하기를 즐겼다는 것 등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리스트는 거의 유럽 전역과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순회 연주’를 펼치곤 했는데, 당시 유럽의 청중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기보다는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 버전으로 들은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리스트의 피아노곡들은 오케스트라적인 하모니와 울림을 갖습니다. 리스트는 그렇게, 열 개의 손가락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스케일을 보여줬던 당대의 피아노 비르투오소였습니다.

리스트가 프랑스 파리 음악계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인 아담 리스트가 세상을 떠난 1827년 이후부터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에 대해서는 <내 인생의 클래식 101> 5월 6일자(//ch.yes24.com/Article/View/22057)를 잠시 클릭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리스트는 1830년대, 막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버지의 간섭을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가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무렵의 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또 하나의 사건은 바이올린 비르투오소였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연주회였습니다. 이 신들린 듯한 바이올리니스트는 1831년 3월과 4월에 걸쳐 파리의 ‘오페라 아카데미 루와얄 드 뮈지크’(지금의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열한 번에 걸쳐 연주회를 열었는데, 그것은 당시 파리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줬던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연주할 수 있냐는 흥분감이 곳곳으로 퍼져가면서 ‘파가니니 신화’가 마침내 탄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당시 스무 살의 리스트도 파가니니의 연주를 물론 봤습니다. 그 초인적인 테크닉에 경탄한 그는 자신도 저렇게 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 14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결국 리스트는 당대 최고의 피아노 비르투오소라는 꿈을 이루고 맙니다.

물론 그것은 리스트 혼자의 욕망과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당대의 욕망’과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지요. 일단, 초상화로 남아 있는 젊은 리스트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아주 잘 생긴 얼굴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미남의 표상이랄 수 있는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 바로 그 아도니스를 연상케 만듭니다. 당연히 연주회장에 모여든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겠지요. 바로 이 여성들, 연주회장과 살롱에 모여든 그들이야말로 리스트의 절대적인 지지 기반이었습니다.

당시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수 있는 무대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콘서트홀이었고 또 하나는 살롱연주회였지요. 유럽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콘서트홀에는 점점 많은 청중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손님을 끌 수 있는, 화려하고 짜릿한 연주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겠지요. 그리고 콘서트홀보다 더 많은 연주회가 열렸던 사교계의 살롱, 오늘날로 치자면 재벌이라고 불릴 만한 큰 부자들의 후원으로 열렸던 살롱연주회의 실질적인 운영자들은 그 부자들의 아내들이었습니다. 리스트는 바로 그런 시기의 사회적 욕망과 딱 맞아떨어졌던 피아니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생긴 외모에 신들린 기교, 무대를 장악하는 쇼맨십 등으로 슈퍼스타를 갈망했던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리스트를 거론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겁니다. 리스트의 음악에는 낭만적 광기와 마음을 파고 드는 시정,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열정, 뿐만 아니라 19세기 나름의 도회적인 세련미 같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베토벤으로부터 이어져온 음악적 유산, 아울러 파가니니로부터 받은 자극과 영감 같은 것들이 한데 녹아 있는 것이지요. 특히 리스트의 음악에는 그 자신의 생애가 그랬던 것처럼, 관능과 경건함과 섞여 있습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그것 때문에 리스트는 오래도록 칭송과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순이었을까요? 적어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바람둥이 리스트’와 훗날 신부가 되는 ‘성직자 리스트’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들을 음악은 <순례의 해>(Annees de Pelerinage)입니다. 1830년대부터 1877년까지 작곡했으니, 리스트는 자그마치 40년 동안 이 음악에 마음을 썼던 셈입니다. 모두 26곡으로 이뤄져 있는, 리스트의 피아노곡집 중에서 가장 거대한 분량의 음악입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작곡하다보니 당연히 음악의 스타일도 다채롭습니다. 그것이 바로 <순례의 해>를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덕분에 리스트의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제가 하루키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하루키의 소설과 결부해 이 음악을 거론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딱히 그래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대신 여러분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꼭 기억하는 것은 <순례의 해>가 ‘음악으로 쓴 여행기’라는 점입니다.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는 모두 3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1권은 ‘첫 번째 해, 스위스’(Premiere annee, Swiss), 2권은 ‘두 번째 해, 이탈리아’(Deuxieme annee, Italie), 3권은 ‘세 번째 해’(Troisieme annee)입니다. 3권에는 나라의 이름이 별도로 붙어 있지 않지만, 대부분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꼈던 인상을 음악으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전곡을 모두 연주하는 시간은 150분이 넘습니다.

그 여행은 일종의 밀월여행이었습니다. 리스트가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 만난 것은 1832년. 리스트는 스물두 살이었고 백작 부인은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이가 있던 마리 다구는 1835년에 리스트를 따라 스위스로 떠납니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1839년까지 스위스와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했는데, <순례의 해>는 바로 그 여행에서 받은 인상들, 때로는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와 단테의 시, 라파엘의 회화,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받은 느낌들을 음악으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선율을 강조하기보다는 색채적인 느낌이 풍성한 곡들이 많지요. 리스트의 피아노곡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격정적인 낭만성에 견주자면, 오히려 잔잔하고 차분한 곡들이 많습니다. 아마 리스트로서는 매우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마리 다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들도 세 명이 태어났는데, 그중 둘째가 바로 훗날 바그너의 아내가 된 코지마입니다.


‘빌헬름 텔 성당’(La chapelle de Guillaume Tell)


‘오베르망의 골짜기’(Vallee d’Obermann)


‘제네바의 종’(Le cloches de Geneve)

한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피아노곡집의 제목이지요. 세상의 일반적 시선으로 보자면, 유부녀와 바람이 나서 떠난 이 여행에 리스트는 ‘순례’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1권의 첫 곡인 ‘빌헬름 텔 성당’(La chapelle de Guillaume Tell)을 비롯해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에서 영향받은 6곡 ‘오베르망의 골짜기’(Vallee d’Obermann)와 9곡 ‘제네바의 종’(Le cloches de Geneve) 같은 곡들이 유난히 그렇습니다. 특히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1867년부터 1877년 사이에 작곡한 3권은 드러내놓고 종교적이지요. 1곡 ‘앙겔루스! 수호천사에의 기도’(Angelus! Priere aux anges gardiens)와 7곡 ‘마음을 고양시킬 것’(Sursum corda)이 대표적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바람 난 여행’은 리스트에게는 종교적 순례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리스트는 스위스로 떠나기 직전, 프랑스 브리타니에 있던 람네 신부, 자신의 정신적 멘토였던 그 신부를 여러 번 찾아가 명상과 금욕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려하고 도발적인 외양 밑에서 언제나 금욕주의를 동경했던 리스트의 이중성이었습니다. 리스트의 다른 피아노곡에 비해 훨씬 잔잔하게 펼쳐지는 회화적인 화성,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는 바로 그래서입니다. <순례의 노래>에서 오리지널한 뉴에이지풍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s.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조르쥬 치프라(Georges Cziffra)가 <순례의 해>를 연주한 음반(EMI)은 지금 매장에서 눈에 띄질 않는군요. 나중에라도 구입해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강렬한 개성과 특유의 낭만성을 지닌 리스트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집시적인 감성과 즉흥성이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라자르 베르만(Lazar Berman)/1977년/DG

그동안 국내 음반매장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이 음반이 다시 수입돼 판매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 덕택인 듯하다.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로 그 연주다. 건반을 무겁게 누르면서 다소 느릿한 템포로 흘러가는 연주다. 굵고 어두운 색채감, 강약의 대비를 충분히 구현하면서 음악의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조르쥬 치프라 이후의 리스트 스페셜리스트로서 손색이 없는 연주. 딱 한 장만을 우선적으로 권한다면 바로 이 음반이다.



호르헤 볼레트(Jorge Bolet)/1983년/Decca

이번 칼럼을 쓰면서 이 음반을 들었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주로 살았던 볼레트(1914~1990, ‘볼레’로도 표기함)는 아쉽게도 <순례의 해> 전곡을 녹음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 데카에서 리스트의 작품 전곡 녹음에 도전했지만 100% 완수하지 못했다. <순례의 해> 중에서 그가 녹음으로 남긴 것은 첫번째 해와 두번째 해까지다. 하지만 그의 리스트 연주는 언제나 안심할 만한 명연이다. 기교적이되 과도하지 않고, 격정적이되 맹목적이지 않다. 오늘 추천하는 음반은 9장의 CD로 이뤄진 전집. 생전의 그가 남긴 리스트 연주를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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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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