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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닥터, 박시온이 두드리는 세계의 문

당신이 매일 던져야 할 질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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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형아가 그랬습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하고 싶은 건 꼭 해내야 한다고요. 참고 해내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라고요. 저는 사람도 세상도 무섭습니다. 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형아 말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한 의사가 면접관 앞에 섰다. 구부정한 어깨, 물어뜯는 손톱,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한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떨리는 목소리…. 그는 서번트 증후군, 즉 자폐 증세를 가진 의사다. 치료하기보다 치료받는 것이 시급해 보이는 박시온(주원)을 두고 병원 임원진들은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박시온은 ‘병원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성원대학병원 소아외과 레지던트가 된다. 


굿닥터1.png


박시온이 들어간 세계, 그곳엔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켜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로서의 소명을 지키려 하는 김도한(주상욱) 교수,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아이들이 병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도록 지켜 주려는 최윤서(문채원), 돌아가신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군 병원을 지키려는 유채경(김민서)…. 박시온을 의술의 세계로 이끈 멘토 최우석(최호진) 원장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지키고자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바로 최 원장일 것이다. 의사로서의 신념, 독립된 의료 윤리…. 앞으로의 전개를 눈여겨봐야겠지만 현재까지의 그는 자신의 모든 의사 인생을 걸고 박시온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박시온이 편입되며 그들의 세계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소아외과에서 박시온의 행동은 금기에 가깝다. 그는 치료의 근거를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미숙아 아기가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감각에 의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시온은 김도한(주상욱) 교수, 최윤서(문채원)과 끊임없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드라마 전체에서 거듭되는 이성의 영역과 감성의 영역 간 충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의학 드라마인 <굿닥터>를 끌고 가는 힘은 박시온이 가진 감성의 영역에서 나온다.


결국 그들이 치료해야 할 존재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영역에 속한 의사들이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 아이를 치료하려 할 때, 박시온은 그저 아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하늘나라로 간 아빠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가슴 속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법을 알려 주고, 나비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머리맡에 직접 그린 나비 그림을 놓아 준다. 지식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무장한 하얀 거탑은 자폐증 의사가 내는 균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그들은 묻게 된다. 도대체 여태껏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토록 지키려 했는지를. 


박시온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필요를 위해 무언가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명예나 기득권, 소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온에게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꼭 살려야겠다는 의지뿐일 것이다. 어릴 적 토끼와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그에겐 가장 무섭고 힘든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픈 것이 싫어 마치 무조건반사처럼 맹목적으로 치료에 매달린다. 그리고 가장 순수하고 이타적인 행위는 시온을 진짜 의사, ‘굿 닥터’로 성장시키고 있다. 


“옛날에 형아가 그랬습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하고 싶은 건 꼭 해내야 한다고요. 참고 해내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라고요. 저는 사람도 세상도 무섭습니다. 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형아 말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굿닥터> 5회 박시온(주원)의 대사 중에서


정상인의 기준으로 보기에 가장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박시온(주원)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실 각각의 섬처럼 존재했던 것은 시온을 제외한 모두였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고립한 사람들, 시온은 그들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변화는 시작된다. 


굿닥터2.png


“10년 넘게 정신없이 지내느라 잊고 있었는데 새삼 느꼈어요. 지금 전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기술자에 지나지 않아요. 제가 인생을 건 곳은 소아외과지 수술 공장이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와 미래를 주는 게 소아외과 서전이 할 일 같아요.”

-<굿닥터> 5회 최윤서(문채원)의 대사 중에서


그래서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 <굿닥터>의 메시지는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질문과도 같다. 우리는 스스로가 세운 기준만을 옳다고 믿으며 쉽게 무언가를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믿으며, 그 밖의 것에 대해 암묵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이미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질문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고. 


하지만 박시온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아직 늦지 않은 것이다. 

세계의 문은, 그렇게 열린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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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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