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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 교수, 내 인생의 달리기 성적은 좋은 편

뇌성마비 극복,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최고 교수 인간 승리 정유선 교수, 불굴의 인생 스토리와 만나다 긍정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세뇌하는 세상에 멋진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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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이야기는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체가 건강한 이들도 그럴 진데, 하물며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 할까.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조차도 긍정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며 삶의 마라톤에서 성공적인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유선 교수다.

적어도 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사실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정해진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갈리고, 그 결과는 더욱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대개 성공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은 갈림길을 마주한 순간, 쉽고 예측이 가능한 길보다는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길을 택하곤 한다. 정유선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생후 9일 만에 찾아 온 신생아 황달은 그녀에게 뇌성마비라는 상처를 남겼다. 장애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곁에서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사실 장애가 무서운 점은 그 자체보다 세상의 시선과 그로 인해 당사자에게 암묵적으로 씌워지는 한계에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장애에 직면한 사람들은 사회적인 한계에 굴복해버리고 말지만, 정유선 교수의 경우는 달랐다. 사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1960~70년대 <울릉도 트위스트>로 한 시대를 풍비했던 그룹 ‘이시스터즈’의 멤버 김희선 씨. 딸의 장애를 감지한 순간 어머니는 화려했던 무대를 떠나 자신의 모든 삶을 오롯이 딸을 위해 헌신했다. 정 교수의 아버지와 오빠, 동생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장애라는 가혹한 시련이 삶의 시작부터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가족의 따듯한 관심과 응원이 있었다는 것은 정 교수에게 행운이었다 할 수 있다. 


강단에 선 어머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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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유선 교수는 그간 자신의 삶에서 이뤄냈던 수많은 기적에서 새롭게 하나를 더 했다. 바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최고 교수’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그와 더불어 최근에는 자신의 삶을 담담히 되돌아보며 집필한『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를 한국에 출간했다. 출간을 즈음해 방한한 그녀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에 자극받은 수많은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은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평정을 찾은 듯 미소 짓는 정 교수. 그녀의 곁에는 온화하지만 강인한 인상의 어머니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특수교육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보조공학에 관한 여러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어요. 제 학생들 대부분은 학교 선생님들이에요. 그리고 선생님들 중에 80~90%들은 특수교사들입니다. 제 어머니는 현재 색동회 이사님이시자 동화구연가세요. 색동 어머니회 창립 멤버이자 5대 회장이시기도 하죠.”


뇌성마비로 인한 언어장애는 그녀의 말문을 어눌하게 했고, 지체장애는 몸과 얼굴의 근육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없게 했지만, 마음과 의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덕분에 그녀의 삶은, 적어도 장애를 제외하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에 골인했으며 아들과 딸을 낳고 키우며 공부를 지속해 최고 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이라기보다 꽤나 성공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스스로도 ‘18년차 베테랑 주부’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들이 제 장애를 인식하는 것은 말문을 열 때에요. 평소에 가만히 있으면 잘 모르거든요. 또 한국말은 그런 대로 쓸 만하게 하거든요(웃음). 장애가 있긴 하지만 평상시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대화는 문제가 없어요. 단지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나 전화통화, 지금처럼 강연을 할 때는 얼굴 근육이 심하게 긴장되어 말하기가 좀 힘들어요.”


강단을 가득 채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화면은 장애를 가진 그녀가 오히려 비장애인인 독자들을 배려해 미리 자신의 강연 내용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도 그녀는 학생들을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을 쓰곤 한다. 머릿속의 말이 마음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함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정 교수의 경우, 유학 초기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배우며 느낀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I can't hear you”를 연발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력을 다해 영어 공부에 힘썼고 결국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된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이제 정 교수는 자신의 장애를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제 지체 장애는 아주 많이 좋아진 상태에요. 어린 시절만 해도 잘 걷지도 못했고, 손동작도 많이 불편했죠. 지금도 바늘귀 꿰기나 과일 깎기 같이 정교한 동작은 할 수 없지만, 피아노 정도는 칠 수 있습니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는 피아노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딸의 자랑을 덧붙인다. 


“우리 유선이 피아노 아주 잘 칩니다. 손가락 운동을 위해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신기하게도 한번 들은 곡은 악보가 없어도 곧잘 치더라고요. 유선이가 피아노를 칠 때면 제가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걸 본 남편이 또 색소폰을 들고 나와 가족 음악회가 되기도 했죠.”


어머니의 자랑이 민망한지 살짝 눈치를 주는 정 교수의 말에 독자들은 슬며시 미소 짓는다. 서로를 마주 보는 어머니와 딸의 눈빛에 사랑이 그득하다.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


뇌성마비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일부는 정확한 원인조차 진단되지 않는다. 정 교수의 경우도 신생아 황달의 영향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딸의 장애 사실은 부모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하지만 절망할 수만은 없었다.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적어도 딸의 앞에서 부모는 세상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됐다. 정 교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어머니는 간간히 떨리는 음성을 감추지 못했지만, 말을 끝맺을 때는 항상 웃음을 지어 보였다. 평생 딸과 가족들에게 지어보인 웃음이 그랬을 터였다. 


“두 돌이 되어서도 유선이는 걷지 못했어요. 등이 활처럼 뒤로 휘고 다리는 힘이 없어 넘어지기 일쑤였죠. 처음에는 미신에 의존하기도 하고,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어린 것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을 놓는 걸 지켜보기도 했어요.”


3세부터 5세까지 정 교수는 재활원에서 생활했다. 부모는 주말마다 재활원을 찾아 딸을 데려왔다가 데려다주기를 쉬지 않았다. 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되자 특수학교와 일반학교를 두고 부모의 고민은 또 깊어졌다. 고심 끝의 선택은 일반 학교였다. 딸이 받게 될 상처는 예상됐지만, 언제가 홀로설 수 있도록 해야 했기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입학 첫날 어머니는 현실에 직면하며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아야 했다. 


“입학 첫날 학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더군요. 아이들은 서로 손을 들며 자기소개를 했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런데 유선이가 손을 번쩍 드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유선이는 벌써 넘어지면서도 교단으로 나가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까지 부르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은 유선이 흉내를 내며 웃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순간 돌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 와중에도 유선이는 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소리 내어 울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철없는 아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장애는 비수가 돼 또 한 번 모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정 교수는 그런 아이들의 틈에서 묵묵히 학교생활을 해 나갔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을 맞이한 즈음, 첫 번 째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담임선생님께 유선이의 상황을 설명하려고 찾아뵈었는데,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유선이가 820명 신입생 중 배치고사에서 2등을 했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때 저는 정말 놀라고 감격했어요.”


독자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악바리같이 공부에 몰입했다는 정 교수.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딸을 보며 부모는 그제야 한 시름을 놓게 됐다. 하지만 예민했던 청소년기였고, 그늘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태연한 척 했지만, 마음 속 힘겨움은 존재했던 것이다. 


“한 번은 유선이 방을 청소하다 우연히 일기를 보게 됐는데,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을 텐데,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싫다. 죽고 싶다’고 적혀있더군요. 전 그걸 보고 그대로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어요.”

    

편견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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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에도 정 교수의 노력은 계속 됐다.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일어나기 힘들어 하는 딸을 아버지는 매번 업고 나와 식탁에 앉혔고, 어머니는 김밥을 만들어 입에 넣어주곤 했다. 정 교수의 악바리 같은 기질은 때론 장애를 뛰어넘기도 했다. 공부 뿐 아니라 체력장에서도 만점을 받은 것이다. 물론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정서는 그런 노력으로 만든 실력을 알아보기에 너무나 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선이는 떳떳하게 자기 실력으로 대학에 가겠다며 학력고사를 봤어요. 시험을 보고 나올 때 브이 자를 그리던 유선이의 웃는 얼굴이 아직도 기억나요. 하지만 문제는 장애였죠. 그때만 해도 긴장하면 말문이 터지기 까지 몇 분 정도가 걸렸는데, 어려운 교수 면접이 유선이에게 걸림돌이 된 거에요. 결국 유선이는 대학에 떨어졌어요. 남편은 그 상황을 지켜보며 ‘왜 우리가 유선이를 이렇게 고생시켜야 하냐’는 말을 하더군요.”


좌절을 경험한 정 교수에게 아버지는 유학을 권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떠난 유학 길. 힘겨움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 교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학연수 과정을 거쳐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학사, 코넬 대학에서 석사, 다시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차례대로 받아냈다.


현재 그녀는 최고 교수로서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보조공학은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불편을 개선하는 기기 또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이상묵 교수 등이 이 보조공학을 통해 강연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정 교수 역시도 미리 강의 내용을 타이핑해 컴퓨터를 통해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의사소통보조기기를 통해 원활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녀의 넘치는 긍정의 힘 덕분이다. 


“대학원에서 보통 한 학기에 3과목 정도 강의합니다. 한 과목은 2시간 40분 정도죠. 한 과목 강의 하나를 준비하는데 이틀 정도 걸립니다. 강의해야 할 내용을 모두 미리 타이핑해서 준비해놓아야만 의사소통보조기기가 읽을 수 있기 때문이죠. 준비과정은 힘들지만 일단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으면 말이 잘 안 나올 때 걱정을 좀 덜 수 있어요. 철저한 준비만이 살길이죠(웃음).”


과목 특성상 시시각각 발전하는 테크놀로지 부분이 많아 학기 중간에도 자료 업데이트는 필수다. 가끔 너무 피곤하고 시간이 없을 때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작은 실수는 이해해 줄 테니 리허설을 하지 말고 넘어갈까’하는 유혹에도 시달린다는 정 교수. 하지만 매번 유혹을 물리치는 이유는, 그것이 습관이 되고 사소한 실수를 합리화 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경계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정 교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에서 체득한 교훈을 마지막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건네는 정 교수를 보며, 새삼 육체적 장애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장애임을 깨닫는다. 


“제 인생의 달리기 성적은 좋은 편이에요. 박사도 됐고 교수도 됐고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됐으니까요. 또 넘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누구나 살아가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럴 때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지 한탄하게 되죠. 하지만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는 넘어지면 그 순간에는 울지만 금방 생글거리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저도 살며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마음을 항상 가졌어요. 긍정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능력을 아직 발견 못하셨다면, 여러분보다 조금 더 넘어졌음에도 웃으면서 훌훌 잘 일어서는 저를 믿어주세요.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제가 할 수 있으면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 흘러갑니다. 그 하루하루를 작은 실행들로 채우다보면 언젠가는 여러분이 꿈꾸던 성과를 이룰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평범한 진리만 잊지 마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삶 속에 작은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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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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