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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인가

우리 모두의 최후의 보루는 가족,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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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을 비워두고 아이들을 닦달하는 이상한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냥 다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위안하며, 혹시 모를 자식의 성공적인 대학 입시를 위해 참아야 하는 걸까요. 집을 다시 가족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그냥 우리가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대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루 일과가 잘 마무리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얼른 집에 가서 다 잊고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열쇠를 꺼내거나 벨을 누른 후, 등 뒤의 세상과 내일 다시 문을 열고 나설 때까지 잠시 이별합니다. 하루의 먼지를 털고, 목욕을 하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의 오락프로를 보고, 가족과 그날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그리고 잠자리에 듭니다.

집이란 결국 가족이 하나의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장소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가족이 시작이며 끝이지요. 그러나 요즘의 집에는 가족이 없습니다.

그냥 집만 혼자 있습니다. 그리고 밤이나 12시 넘어 가족들이 자신의 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옵니다. 현관에 달린 감지등이 인기척을 느끼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살짝 비추어주고 금세 다시 잠에 빠집니다.

뭐랄까, 집이란 링에 오르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심호흡을 하는 복서들의 대기실 같습니다. 집은 그냥 혼자서 비어있는 속을 바라봅니다.

가족이 없는 집, 혹은 가족이 있으나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생각을 하는 현대의 집, 아니 한국의 집. 한국적 특수성이 집에는 그렇게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을 비워두고 아이들을 닦달하는 이상한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냥 다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위안하며, 혹시 모를 자식의 성공적인 대학 입시를 위해 참아야 하는 걸까요. 집을 다시 가족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그냥 우리가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대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의 최후의 보루는 가족입니다.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집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구성이 예전에는 4인 가족이 중심이 되었다면, 요즘은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습니다. 부부와 자녀가 한둘 있는 집일 수도 있고, 부부와 반려동물이 가족인 집일 수도 있습니다. 삼대가 함께 사는 집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장성해서 분가하고 난 후 다시 두 사람이 된 부부가 사는 집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혼자 사는 사람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집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 중에서도 누가 가정의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집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보통 남편 중심의 집은 목공이나 기타 취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손님 접대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 중심의 집이라면 각종 가사활동을 쉽게 할 수 있는 도구와 동선이 필요합니다.

ⓒ 박영채

아이들 중심의 집이라면 아이들의 개성과 독립심을 발달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야 할 것입니다. 일찍부터 독립된 방을 따로 준다든가, 혹은 요즘 흔히들 하는 것처럼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책꽂이와 장난감 수납장을 배치하는 등, 전체 집을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민다든가…….

또한 노인 중심의 집이라면 건강 상태와 직업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왕이면 약점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내가 사는 집인데 나부터 좀 편안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모두의 솔직한 진심일 겁니다. 가족들이 각자 자신의 공간을 충분히 차지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 그때그때 가장 배려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에 따라 집의 공간 구성도 조금씩 바뀌어야겠지요.

아기가 있다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있다거나, 혹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있다면 일상의 풍경은 또 다시 변화합니다. 저로 말하자면 식물로는 선인장도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키우던 개가 갑작스레 죽은 뒤로는 개든 고양이든 살아있는 것들을 돌보는 일에는 영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그런 일을 아주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젊은 부부는, 욕실 안에 편안하게 강아지들을 목욕시킬 수 있는 욕조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진돗개를 키운 적이 있는데, 어릴 때는 욕조에 집어넣고 목욕을 시켰지만 금세 커졌기 때문에 결국 마당에서 전쟁을 치르듯 힘겹게 목욕을 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이 부부가 키우는 개들은 작은 녀석들이라 다용도실에서 쓰는 개수대 정도의 크기면 충분히 목욕을 시킬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집에서도 주방 근처에 개들이 나란히 서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이를테면 강아지 식탁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싱크대의 옆면에 홈을 파고 낮은 선반을 달아서 그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혹은 집에 노약자나 장애가 있는 가족이 있는 경우는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많이 담겨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건축 및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을 무장애(Barrier-free) 설계라고 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난간을 설치하거나 방과 방 사이의 턱을 없애는 것 등이 기본이 되는, 더불어 사는 공간이라면 집뿐만 아니라 건물 안팎의 모든 장소에 적용되어야 하는 설계입니다.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거나, 혹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해보면 그 필요성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무렵 살던 곳이 연립주택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고 경사로도 없는 그 건물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방과 유모차와 아이까지 수습해서 힘겹게 나가보면, 골목길은 보도와 차도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아 수시로 오가는 차들을 눈치껏 피해야 했고, 포장이 고르지 못한 울퉁불퉁한 길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 결국은 외출을 가급적 자제하게 되더군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라면 건축되는 규모가 크고 세대수가 많다보니 그런 무장애 설계에 대한 고려가 잘 반영되어 있는 편이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밀집한 지역은 아무래도 개인의 관심과 의지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우리 집은 나를 위한 집이자, 나와 함께 살아갈 누군가를 위한 집입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불편함은 없고, 비싸지 않아도 함께 나누는 삶이 가능한 그런 집을 꿈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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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공저 | 예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노은주ㆍ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하고,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소나기학교’의 기획을 맡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자들은 집이 가족의 관계를 존중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지, 단열과 환기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과연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은주,임형남 저자의 집 이야기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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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은주,임형남

노은주
1969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월간 플러스, 공간사에서 건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수목건축에서는 건축기획을, 서울포럼에서 웹진기획을 했다. 리빙TV의 「살고 싶은 집」, 교보웹진 「Pencil」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을 했으며,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임형남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삼건축, (주)삼우설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다가 (주)SF도시건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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