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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포, 그 두터운 내러티브의 은유 : 나카타 히데오 <콤플렉스>

<링>의 ‘사다코’ <주온>의 ‘토시오’의 뒤를 잇는 공포 캐릭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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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는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평온하고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한 순간 혐오스러운 공포의 대상이자 악의의 실체가 되어 버리는 순간의 공포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는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메마른 현대사회의 단면을 뒤틀면서, 우리의 무관심하고 건조한 삶 자체가 공포 그 자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낸다.


<링>

눅눅하게 젖은 듯한 몸, 소름이 돋는 관절꺾기, 돌아보면 어느새 나의 공간과 생활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TV 화면, 종일 눈앞을 떠나지 않는 모니터, 누군가로부터 불쑥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나카타 히데오의 1998년 영화 <링>의 공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친숙하게 개인의 생활 속에 있는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 될 때,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된 우리의 일상 속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다 집안의 모든 벽과 TV에서 산발한 사다코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를 선사했다. <링>의 성공적인 드라마는 한국 영화로, 또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각기 다른 문화적 차이가 어떻게 다른 아우라를 만들어내는지 좋은 비교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링> 이후 수많은 영화들은 그것을 모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변종들을 확대 재생산했다. 하지만 사다코의 짝퉁들은 낡은 클리셰로 변이되어 더 이상 무서울 것 없는 이미지들만 반복해서 찍어냈다. 그리고 일본 공포영화의 종언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 <사다코 3D>를 기점으로 2013년 현재, 일본의 공포영화는 몰락이라 불릴 만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솔직히 나카타 히데오는 2007년 <괴담> 이후 공포영화에 관심이 없었고, 시미즈 다카시는 <주온> 이후 할리우드에서 <그루지>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주온>에 견줄 후속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이 틈새시장으로 약진한 것은 태국이었다. 태국은 2004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셔터>를 시작으로 아시아 공포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카타 히데오가 공포영화로 귀환했으니, 공포영화 팬들은 J 호러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담아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일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포스터를 통해 짐작했겠지만 <콤플렉스>의 ‘미노루’는 <링>의 ‘사다코’와 <주온>의 ‘토시오’의 뒤를 이을만한 공포 캐릭터가 되기 위해 애쓴다. 나카타 히데오의 귀환과 미노루 캐릭터의 인상적인 등장에 흥분한 일본은 온라인 게임, 미노루 캐릭터 상품 개발, 프리퀄로 제작된 TV 드라마로 그 세를 확장시키고 있다. 남은 것은 <콤플렉스>가 과연 기대한 만큼일까, 하는 기대와 우려에 대한 답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다.


<링>, J 호러의 시작


<링>


<검은 물 밑에서>

1996년 나카타 히데오의 장편 데뷔작 <여우령>은 원혼이 담긴 필름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드라마로 주목을 받은 영화였다. 그리고 2년 뒤 연출한 <링>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관절이 꺾이는 ‘사타코’는 범 아시아적 공포영화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후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링 2><검은 물 밑에서>를 연이어 연출하면서 장르 영화의 규칙 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지키면서 일명 ‘J 호러’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가 등장하면서 일본 공포영화는 ‘사다코’와 ‘토시오’라는 쌍끌이 캐릭터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혼한 여성이 겪게 되는 근원적인 공포를 호러 장르에 녹여내었던 <검은 물 밑에서>는 슬픔에 깊이 전염되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 나카타 히데오는 ‘공포’의 근원을 설득가능하고 충분한 근거가 있는 탄탄한 드라마 속에서 찾아낸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더욱 강하고 자극적인 공포 영화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그런 심적인 부담감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2007년 <괴담 (怪談)>이다. 로맨스와 공포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는 이야기는 길을 잃었고, 2008년 <데스노트 L>도, 2010년 <챗룸>도 그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그는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3.11 이후를 사는>을 연출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공포장르를 빌어 ‘현실’의 공포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콤플렉스>, 현실의 은유로서의 공포



<콤플렉스>는 기묘하고 극단적이며, 은유적인 나카타 히데오의 작품의 성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 온 아스카. 어둡고 음습한 아파트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그녀는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런 그녀에게 밤마다 옆집에서 들리는 기분 나쁜 소리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소리의 근원지인 옆집을 찾아간 그녀는 홀로 외롭게 죽어 있는 한 노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일상에 적응이 되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나타난 어린 소년 미노루는 아스카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하지만 미노루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구제할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콤플렉스>는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평온하고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한 순간 혐오스러운 공포의 대상이자 악의의 실체가 되어 버리는 순간의 공포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는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메마른 현대사회의 단면을 뒤틀면서, 우리의 무관심하고 건조한 삶 자체가 공포 그 자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낸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층간 소음 문제, 냉정한 이웃, 가족과의 소통의 문제 등이 영화 가득 담겨있다. 그리하여 히데오 감독은 죄책감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천착한다. 음침한 느낌의 음향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이벤트성 공포는 거의 배제한 채,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방법은 나카타 히데오의 명성이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공포감의 강도는 조금 덜한 편이다. 힘준 공포감 보다는 ‘정서’의 전달에 더욱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렬한 반전이나 충격을 원하는 관객에겐 다소 맥이 풀리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제목을 보고 얼핏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겠지만, 제목 ‘콤플렉스’는 복합 아파트 단지를 뜻하는 말이다. 다닥다닥 붙여 모여 사는 것 같지만, 문 하나만 걸어 잠그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리고 마는 공간의 특성이나, 완전 방음이 되지 않아 얼핏 들려오는 옆집의 소리,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 ‘공포’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납득 가능한 원한을 풀어줄 가능성 없이, 악령은 사람들의 죄의식을 자극해 죽음으로 내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해 내밀었던 손을 거둬야한다. 그런 점에서 <콤플렉스>는 공포영화로 보기에 시시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막막한 현실 속 고립, 그 공포를 담아내는 드라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잔인할 만큼 무서운 영화이다. 공을 너무 많이 들여 오히려 효과가 반감된 CG나 드라마를 흩트리는 퇴마술 등 우리가 기대하는 나카타 히데오 월드의 꼭짓점 앞에서 주춤한 듯한 부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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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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