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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대한 허기 - <인 더 하우스>

언제나 우리가 가장 굶주리는 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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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적이고 비윤리적인 고교생의 글을 받아낸 선생은, 스승으로서의 책무의식을 느끼고 학생에게 “좀 더 잘 써보라”고 한다. 문장 지도까지 한다. 학생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도 궁금해 한다. 이 학생의 관능적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4주 전에 이 칼럼에도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거짓말이었다. 이 칼럼은 원칙이 없다. 불과 한 달 전의 공언을 이렇게 뒤바꿀 수 있느냐고 따진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앞으로도 종종 경험하게 될 테니, 당황하지 마시길.

 

그나저나 이 칼럼을 읽는다는 한 출판계 지인이 물었다. 
 
“최작가님. 매번 쓰실 때마다 영화 고르시느라 고생이 많죠?” 
 
그럭저럭 “네. 뭐…”라고 얼버무렸는데, 사실 전혀 고생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본 영화를 쓴다. 그게 다다. ‘아니, 이게 뭐냐!’고 따진다면, 죄송합니다. 역시,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 본 영화는 <인 더 하우스>입니다. 당연히, 이번 주 칼럼 소재는 <인 더 하우스>입니다.  

 

자, 일단은 내가 본 영화를 쓴다고 쳐도, 여기에 간과된 슬픈 현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외톨이라는 부인하고 싶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남들에 비해 영화를 꽤 많이 본다. 이번 주에만 세편을 봤는데, 그 중 극장에서 본 영화가 두 편이었다. <월드워 Z>와 <인 더 하우스>인데, 가급적이면 개봉 영화를 쓰는 게 독자에게 낫겠다 싶어 나름 고민을 한 후에 결정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고심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 뭐 이렇게 오락가락하느냐!’고 따진다면, 역시 죄송합니다. 네. 저는 또 이런 사람입니다. 여하튼 <월드워 Z>도 나쁘진 않았는데, 소설가가 “이야. 좀비들이 상당히 빠르더라고. 예쁜 좀비도 있던데! 어디 사는가?”하는 건 좀 가벼워 보인다. 그렇게 썼다간, 금세 여기저기서 청탁이 끊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이유로 <인 더 하우스>가 이 칼럼의 소재로 선정되었다.

 

그럼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 시작. 일단, <인 더 하우스>에는 엉큼한 고교생이 등장한다. 이것만으로 이 영화는 매력을 발산한다. 우리는 손 안대고 코푸는 심정으로 이 엉큼한 고교생이 펼치는 상상과 비밀들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친구는 글도 쓴다. 엉큼한 고교생이니까, 당연히 엉큼한 글을 쓴다. 말하자면, 명작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그 글에는 친구의 엄마가 등장한다. ‘어어, 이거 막장 드라마인가?’ 하고 염려했다면, 너무 걱정 마시길. 영화는 상당히 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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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엄마를 탐하고 싶어 하는 이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매주 한 편의 에세이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욕망의 결과물을 문학선생에게 작문과제로 제출한다. 이 퇴폐적이고 비윤리적인 고교생의 글을 받아낸 선생은, 스승으로서의 책무의식을 느끼고 학생에게 “좀 더 잘 써보라”고 한다. 문장 지도까지 한다. 학생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도 궁금해 한다. 이 학생의 관능적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아니나 다를까, 학생은 매주 친구 엄마와 빚어내는 야릇한 관계가 한 단계씩 상승하며 호기심이 폭발하려는 지점에 이 문장을 쓴다.

 

‘다음 주에 계속’. 아아, 선생은 애가 타고, 나도 애가 탄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다. ‘학생의 과제를 받고 선생이 지도를 하는 영화의 전체 이야기’와, ‘학생의 과제, 즉 영화제목처럼 친구의 <집 안에서 - 인 더 하우스> 일어나는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차츰 소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어느덧 소년의 글 속에 선생이 등장하고, 선생의 부인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무대는 점차 선생의 실생활로까지 확대돼 선생은 물론, 그 부인까지도 소년이 설치한 이야기의 덫에 걸려버린다. 선생이 이번 주에 학생에게 한 말과 행동은 학생의 다음 주 글에 고스란히 이식돼있다.

 

이때부터 선생이 유지해왔던 관찰자로서의 심리선은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학생을 막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이 글을 쓰는 나는 물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약점이다. 그건 바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생은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일상 귀퉁이가 으스러져가고 있지만, 이야기를 훼손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의 일상이 훼손되는 길을 택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해석이지만, 영화는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이야기밖에 없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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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우여곡절 끝에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빌라가 있다. 그 빌라의 유리창 안에서 사람들은 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이 둘은 그들을 관찰하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 저 여자 둘은 뭐하는 걸까?
 - 싸우는 것 같은데요.
 - 음. 그래. 저 둘은 자매라서 유산상속 문제로 다투는 중이야.
 - 아니에요. 저 둘은 레즈비언 커플이라 사랑싸움을 하는 거라고요.
 - 언니가 유산을 양보 안하나봐.
 - 왼쪽 여자가 바람을 핀 거라니까요. 
 
해는 지고, 빌라 안의 창은 켜지고, 일상이 훼손된 이 둘은 벤치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학생도, 선생도, 어쩌면 나와 당신도,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굶주려왔고 가장 원해왔던 것이 바로 ‘이야기’라는 듯 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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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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