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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이 시대는 답이 없다 - 한귀은

인문학이 나의 삶과 마주쳐서 제3의 해석을 하는 것 한귀은『모든 순간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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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말하자면, ‘인문감성파티’의 장이었다. 다양한 10여 명의 독자들이 모였다. 군대 가기 전의 독자도 있고, 서른을 앞둔 언니를 대신해 자리해 참석한 동생도 있다. 직장 생활의 위기에 닥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들이 한귀은과 함께 삶과 일상, 사랑 그리고 인문학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비포 미드나잇>의 이야기가 반가웠다. 한귀은 작가가 꺼낸 이 영화에서 사랑이 왜 인문학일 수 있는지 포착할 수 있다. 18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해가 뜰 때까지’ 함께 밤을 지새운 이십대의 싱그러운 청춘, 제시와 셀린느. 프랑스 파리에서의 9년 전 해후, 비행기 시간을 놓치는 것도 아깝지 않은 30대의 사랑이었다. 그런 그들이 9년 후 결혼까지 한 부부가 되어 그리스 카르다밀리에 머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나잇스탠드를 꾸몄던 그들, 이젠 여느 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싸우며 감정을 해친다. 그런 그들의 사랑을 구원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80대 할머니 셀린느가 40대의 셀린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는 제시, 그런 제시에게 넘어가주는 셀린느. 사랑은 ‘시간’에 마모되지만 ‘인식’에 의해 새살을 돋운다. ‘비포 시리즈’가 각별한 것은 함께 나이 들면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사유를 하게끔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시시콜콜한 사랑이야기에서 무슨 ‘진짜 어른’이냐고? 비포 시리즈, 제시와 셀린느가 사랑을 이어가느냐 마느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방송작가 김세윤의 말마따나 ‘두 사람이 삶과 사랑을 어떻게 함께 바라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두 사람의 사랑(의 흐름) 덕분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며, 일심동체(一心同體) 아닌 이심이체(二心異體)라는 것.

물론 그들이 계속 그러했듯, <비포 미드나잇> 역시 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외려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인문학이 그렇듯 말이다. 인문학 역시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다. 대신 자기중심의 결을 갖도록 한다.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면서 상상하게 만든다.


동굴을 나오면서 쓴 책

한 작가는, 앞선 두 책(『이토록 영화같은 당신』 『이별 리뷰』)이 어려운 일을 거치면서 동굴에서 쓴 책이라면, 이번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동굴을 나오면서 쓴 책이라고 했다. 덕분에 경쾌하고 잘 읽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의 글을 읽은 독자들 또한 그것에 동의했다. 이 책을 내고 있었던 재미난 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책에서 분노도 배워야 한다고 했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고 했잖나. 인문학은 삶에서 실천을 하는 게 중요한데, 얼마 전 부당한 일을 당했다. 처음에는 참다가 마침내 화를 냈다. 잘못한 것에 대해 시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사과하라고. 절로 그렇게 되더라. 인문학을 공부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면서 싸움을 했다. 결국 사과를 받아냈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도 놀랐다. 그 뒤론 사는 게 좀 편해지더라 (웃음).”




집필한 계기와 의도는?

작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Hey Jude)’를 불렀다. 그 전에 원고를 써 놓은 게 있었는데, 다른 출판사와 문제가 생겨서 그냥 놔둔 상태였다. 그런 갑갑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이, 조카와 경주에 가서 개막식을 봤다. 헤이 주드를 듣는데 그게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졌다. 노래하는 폴이 귀여웠고, 그 느낌이 놀라웠다. 그 느낌을 썼는데, 문체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여름방학이어서 빠른 속도로 썼다. 묵혀놓은 원고에서 폴 매카트니의 노래 같은 호흡의 글이 있더라. 특별한 계기나 의도보다 그 순간 느낀 점을 쓰다 보니 계속 쓸 수 있겠구나, 독자와 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펍이 그냥 선술집이 아닌 지성들이 토론도 많이 한 곳이다. 거기서 착안해 ‘인문학 펍’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딱딱한 강연장소가 아닌 펍 같은 데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뭔가를 주는 인문학 펍 문화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펍에서 술 마시면서 지성과 감성을 담은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돈을 좀 벌면 인문학 펍도 만들어볼까(웃음)?

살롱에선 단순히 일방적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듣는 사람과 주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오가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살롱의 여주인이 되고 싶다고?

얼마 전 읽은 책이 『슬픔이여 안녕』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19세 때 쓴 책인데, 주인공이 17~18세 소녀인 세실이다. 세실이 아버지와 안느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느는 마흔 두 살의 침착하고 매력적인 여성이고 미혼이나, 세실의 아버지 레이몽은 바람둥이고 책임감이 없다. 안느가 청혼을 받고 이를 마지막 사랑으로 생각한다고 여겼는데, 이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소설을 읽으며 13세 아들에게 ‘사랑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아들이 죽을 때까지라고 답하더라. ‘어떻게?’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그런 노년의 사랑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더라. ‘그렇구나’ 라고 말하면서 죽을 때까지 몇 명이나 사랑할거냐고 물었다. 1명이라고 답하더라. 뭔가 짠하면서 그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더라. 『슬픔이여 안녕』을 읽으면서 느꼈다. 사랑은 살면서 최고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감정의 상태이고,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일부러 연애 감정에 빠지는 것은 자기기만이지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생각하며 거부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요즘 첫 사랑인 여자친구의 신경질 때문에 힘들다. 고치려니 내 에너지를 너무 뺏기고. 친구일 때는 안 그렇더니, 이제는 내 거라면서 자신만의 기준에 안 맞으면 짜증부터 내고.

첫 사랑이고, 아끼는 마음에서 상대와 섣불리 헤어질 마음을 못 먹는 것 같다. 사랑도 의리라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도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오랜 시간 대화를 해봐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거리를 두고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정하게 건네야한다. 상대가 빈정거리거나 똑같은 반응을 한다면, 그녀에게 에너지를 과하게 소모하는 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여성이 울증이 있을 수도 있고, 한 남자가 여자의 우울증을 고쳐주긴 어렵다. 이 사랑은 다른 사랑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챙겨야 한다. 그냥 놔버리지 말고 객관적으로 접근을 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웃음). 나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연애유희는 사랑과 구분돼야 한다고 본다. 사랑은 상상력이 중요하다. 상상력을 갖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면 주인공 테레사가 짜증을 많이 낸다. 그런데 남자는 테레사가 슬픔을 이야기할 때 함께 슬퍼한다. 짜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인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 마음에 공감이 되는 거지. 사랑을 하면 변연계가 동시에 공감되는 순간이 있다. 그게 안 되면 사랑이 겉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화학작용이다. 여러 면을 봤을 때, 여자친구의 것이 짜증으로만 느껴진다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을 마주치는 순간에 그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안목이다. 안목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외롭다고 안달하는 것보다 삶의 현장에서 고독을 즐기면서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훨씬 낫다. 내가 생각하기에 결혼 제도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것 같다. 섣불리 결혼하면 그런 결혼 제도의 부속품 밖에 안 되고, 그런 결혼을 하면 황폐해진다. 결혼은 사랑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 공유돼야 한다. 사랑이 가장 어렵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가장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능력을 기르고 안목도 기르는 것이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고 과정 자체도 가치가 있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20대는 내가 20대일 때와 상황이 너무 달라 조심스럽다. 꿈을 가지라는 말도 그러지 말라는 것도 위험하나, 장기적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목표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무슨 말이냐면 의사가 되고 싶은 것과 아픈 사람 고쳐주고 싶은 것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지위를 원하는데, 그걸 성취했을 때 얻는 희열은 제한적이다. 학생들에겐 삶의 목표를 가지되 가치를 갖고 성취감이나 희열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럼에도 목표에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고 순간의 진실에 복무하고 말해준다. 내가 해야 할 것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해석, 상상력을 발휘해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며 책, 영화를 많이 보라고 말한다. 지금 이십대는 살기 어렵지만, 예전에 비해 융통성 없는 목표나 지위를 강요하는 것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부자 돼라”는 말도 지금은 망언이고(웃음). 감성을 기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문화자원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상류층이 되기 위해서도 감성이 필요하고, 50~60세가 되면 일을 그만두는데 감성이 없으면 정말 재미없는 노년을 보내게 된다. 감성이 특히 그래서 중요하다.

이 책을 읽은 40~50대 독자도 좋았다는 말을 하더라.

40~50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아직 모르겠다는 분이 많다. 답을 낼 수는 없다. 상황이 워낙 다양하고, 질문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특히 문제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바꿔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산다는 것, 이 시대는 답이 없다. 힘들어하는 건 확실한데 질문을 바꿔보는 것, 남들이 가지 않는 샛길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정말 어려웠고, 그걸 딛고 올라왔다. 내 책을 읽은 어떤 분은 우울, 냉소가 깔려 있다고 하더라. 아무리 과거를 딛고 일어났다 해도 근본적인 우울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게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울감은 상대의 슬픔을 보게 만든다. 무조건 좋으면 자기 행복감에만 도취해 있을 수 있다. 행복해하기만 할 수 없는 시대잖나. 프로작을 거부하고 우울증의 장점을 이용해 의미 있게 잘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슬픔의 정서가 글을 쓰게 하는 주요 에너지가 아닐까? 인문학이 정서나 삶에 변화를 줬나?

이 책을 쓰면서는 의도적으로 쾌활하고자 노력했다. 슬픔과 쾌활이 어우러졌다고나 할까. 인문학이 이 책을 쓰는 추진력으로 기능했다. 내겐 근본적인 것일 수 있다. 삶의 자세이자 태도이기 때문에. 나는 공부한 것을 실천하는 장점이 있다. 아는 걸 그냥 두지 않는다. 행동에 옮긴다. 나름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요즘 인문학 붐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진짜 인문학은 뭔가?

역사적으로 따지면 모든 학문은 귀족의 것이었다. 귀족의 삶을 가르쳐준 것이 인문학이었다. 지금은 계급 사회가 아니고, 인문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해져야 한다고 본다. 쉽고 어려운 문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 인문학이 너무 대중에게 영합한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텃세를 부리는 것이 비인문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엔 사람인(人) 자가 들어간다.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인문학인데, 인문학을 둘러싼 지금의 논쟁은 소모적이다. 자기에게 질문을 해주는 인문학을 찾아가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최근 <비포 미드나잇>을 봤는데, 무척 흥미롭더라.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가 결혼한 것으로 나오는데, 일반적인 중년부부와 같다. 18년 전 그렇게 찬란하고 눈부신 사랑이었는데, 결혼한 지금 그 사랑을 유지시켜주는 건 상상력과 서로를 해석하는 능력이더라. 인문학이 나의 삶과 마주쳐서 제3의 해석을 하는 것, 나는 그것을 글로 쓰고 싶다.

어떤 것 때문에 사나?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 보내고 음악을 튼다. 그리고 책을 읽든지 글을 쓴다. 음악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 미술도 좋아하는데, 미술품 살 수 있는 곳에 가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감당할 수 있는 비용 안에서 산다. 그런 걸 샀을 때 다른 것에 대한 소비 욕망이 줄어든다. 안목도 높아지는 걸 느끼고. 황폐한 소비를 막는 역할을 한다. 나는 직관을 믿는 편인데, 그런 것을 하면서 기쁨을 얻는다. 또 하나 커피가 있다. 동네 카페가 있는데, 로스팅도 잘 돼 있고, 무척 좋다. 그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도 좋고. 간혹 나에게 상을 주듯이, 좋은 술도(웃음)? 내겐 그런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이 축복이다. 그런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어떤 사람은 결핍을 인문학을 채우려고 한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깊이와 내공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평범한 독자들이 인문학을 통해 어떻게 자기 삶을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생활인으로서 인문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력은 충분치 않을 거다. 그러나 삶에서 공부는 필요하다. 서울에 오면서 『적과 흑』을 읽었다. 각 장마다 경구가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책이라는 건 그걸 팔아먹으려는 사기꾼들이 쓴 것이다’였다. 나를 포함해 책 쓰는 사람들에게 자기공명심이 없을 순 없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한편에는 제3의 해석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을 거다. 글을 쓸 목적이 없고, 유명해질 목적이 있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인문학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것도 다양한 스펙트럼 있을 수 있다. 내 경우 석사 과정에 들어갔을 당시 국어교사를 하고 있었다. 대학원은 목적 없이 우연히 들어갔다. 본질적인 목적이 아니면 지위 등을 지향하지 않는 순수한 목적이 그 사람을 발전시킨다. 공명심이라고 표현했지만, 학문의 혜택을 받으면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게 내 책임이며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나는 공부가 즐겁고 알아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람마다 삶에 대한 공부에 들일 수 있는 노력은 제각각이다. 인문학 붐에는 출판계의 상업적인 면도 있겠지만 냉소적 시선에 영향을 받는다면 본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건 진실한 소수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세계는 무작정 오염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진정한 소수도 찾고, 원하는 공부 방향을 찾는 것도 좋겠다.

흔들릴 때 어떻게 자신을 잡았나?

영화책(『이토록 영화같은 당신』)은 나의 치유 과정이었다. 영화 글쓰기를 통해 힐링한 거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양육이다. 아이도 나와 같은 시절을 보내며 상처가 많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 나도 완벽하지 않은 엄마로서 당황하고 화를 낸다. 학생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거리 조정이 안 된다.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양육 실험 일지를 쓴다. 연극적 상상력을 발동해보는 거지. 다른 상황, 다른 시점을 상상해보고 다각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비상구가 생길 수 있다. 자기가 의도한 바를 극적으로, 작위적이 아닌 마음으로 연출해본다. 그러면 아이에게 거리감을 갖게 되더라. 실험정신과 유희정신으로 아이를 대하는 거지. 나름 효과적이다. 사안에 따라 여러 방책이 있겠지만 글쓰기 요법, ‘저널 테라피’라고 할 수 있는데, 글쓰기가 문제를 해소해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마음 가는 대로, 뭔가 안 풀릴 때 긁적이다보면 거기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할 것이다.

한귀은 작가와 만난 순간은 이렇게 맺었다. 일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은 순간이 모여 만들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 순간순간이 생을 구성하고 삶을 완성한다. “사람의 인연은 묘하다. 앞으로 어떻게 연을 맺을지도 모르고, 각자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이 고맙다”는 한 작가의 말이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모든 순간에 인문학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순간이 삶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생의 순간순간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당신이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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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저 | 한빛비즈
이 책은 지적으로 사유하는 힘, 깊이, 감성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나 드라마, 즉 ‘스토리’를 차용한다. 우리가 킬링 타임으로 쓰는 스토리를 통해 인문감성을 채움으로써 일상이 어떻게 의미를 되찾는지 보여준다. 특히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사랑, 이별, 관계, 상처 등 소소하고 사적이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여 우리가 부대꼈던 모든 순간에 인문학적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저자는 깜짝 놀랄 만한 솔직함과 섹시한 지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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