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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버지의 눈물이라네 - 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

“단단히 묶어야 한다. 휩쓸려가지 않게, 단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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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입에선 내가 알지 못하는 트롯이 흘러나왔다. 식탁에서 과일을 깎아먹던 어머니와 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음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노래를 끝까지 불러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눈 가는 햇살을 받은 바다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이 내 아버지의 세 번째 눈물이었다.

아빠의 눈물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세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아버지는 그보다 더 많이 우셨겠지만 여느 아버지들처럼 그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물이란 본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아들 앞이라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첫 번째는 12년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시골로 가서 전통 장례를 치렀다. 할머니의 관을 모셔 산으로 오르는 길에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우셨다. 나는 아버지가 목 놓아 우는 모습에 더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는 내가 제대한 즈음이다. 취중으로 귀가한 아버지는 휘청거리다가 창가에 올려둔 화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흙으로 어질러진 거실 바닥에 한참동안 너부러져 있었다.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거실은 깨끗이 걸레질 되어 있었고, 화분은 제 자리에 있었다. 화분 앞 메모장에는 꽃에게 바치는 시가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메모장을 국기 펄럭이듯 흔들며 한참동안 웃었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 저녁 밥상은 다른 때보다 훨씬 근사하였으리라.




바다의 무게

그때까지 우리 가족의 거주지는 영도라는 섬이었다. 어느 순간 가족은 모두 영도를 벗어나게 되었는데, 내가 독립을 선언한 즈음이었다. 학업에 매진한다는 핑계로 학교 앞 자취방을 얻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도 오랫동안 영도를 떠나선, 부산 서구 암남동에 있는 송도라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송도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해수욕장이 있는 아름다운 관광지였다. 바닷가 끝에는 역사만큼 오래된 포구가 자리했고, 그곳에서부터 5Km정도 떨어진 암남공원까지 바윗길로 산책할 수 있는 해안도로가 놓여 있었다. 부모님은 새로운 거주지에 만족했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식을 물으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건이 생기고야 말았다. 아버지의 다리에 마비가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쥐가 난 듯 저리다고 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선 욱신거리는 증상이 찾아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한의원을 다녔고, 약을 다려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증상은 통증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몇 미터만 걸어도 몇 분 동안은 쪼그리고 앉아야만 통증이 가라앉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마비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 악화는 집안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해상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는 현장 직을 겸했기 때문에 누군가 충원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회사로 나가야 했고, 든든한 가장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는 병실과 집을 오가며 충실히 보호자 역할을 했다. 가족 모두가 아버지의 호전을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바다를 당기다

대성호의 선장이기도 한 아버지의 업무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아무런 자격증도 없는 내가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밧줄을 당기거나 드럼통을 굴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은 피부를 녹이듯 온몸에 달라붙었고, 나는 그것에서 10분도 벗어나지 못했다. 유일한 아군은 짙은 구름이었다. 파도는 끝없이 일렁였다. 나는 배에서 내릴 때까지 단 한순간도 파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송도와 영도 사이에 있는 묘박(錨泊)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묘박지란 쉽게 말해 항구에 접안하지 못하는 큰 배들이 모인 주차장이라 할 수 있었다. 큰 배의 선원들은 바다에서 닻을 내려두고 작은 배를 이용해서 항구로 드나들었다. 큰 배들은 밤이 되면 충돌사고를 대비해 불을 밝혀 놓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배는 사라지고 불빛만 가득해 묘박지의 바다는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되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경험한 묘박지는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이었다. 큰 배들은 거대한 공룡처럼 우리 배를 잡아먹을 듯 했고, 배들이 밀어내는 물결로 자칫 잘못하다간 사고를 낼 수 있었다. 안전하게 접안하기 위해서 단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선박 스크루가 이 접점에서 발생하곤 했다. 해마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큰 배에 올라가면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신속히 다른 배로 넘어가야 했다.

간혹 다른 배의 직원들이 아버지의 안부를 묻곤 했다.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지낸 이들에게는 내가 차마 닿지 못하는 연대의식이 있었다. 몇몇 선원들은 젊은 시절 고생한 아버지를 안다는 듯, 이제 바다 일은 그만하게 하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밧줄을 묶고, 푸는 것이었다.

“단단히 묶어야 한다. 휩쓸려가지 않게, 단단히.”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한 과장님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나는 이미 휩쓸려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라는 버팀목이 잠시 누워있을 뿐인데도, 우리 가족은, 나는,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느슨해져 있었다. 나는 무릎과 허리에 힘을 주며 밧줄을 당겼다. 하지만 내 힘은 턱없이 모자랐다.




아버지의 눈물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즈음, 아버지는 허리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의사는 오랫동안 통증을 참아온 것에 대해 의문과도 같은 경의를 표하면서, 다신 참지 말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무엇이 아버지를 그토록 참게 했던 것일까. 바다는 여전히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회복하는 동안 송도를 자주 찾았다. 햇살이 좋은 오후였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팬티바람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송도 바다와 암남 포구,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하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곤 좌우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왼쪽 뒤꿈치와 오른쪽 뒤꿈치가 번갈아 가며 들썩였다. 그것은 마치 군가를 부르는 자세와 비슷했다. 아버지의 입에선 내가 알지 못하는 트롯이 흘러나왔다. 식탁에서 과일을 깎아먹던 어머니와 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음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노래를 끝까지 불러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눈 가는 햇살을 받은 바다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이 내 아버지의 세 번째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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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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